우리 곁의 무심한 언어들 1
... 10대 남성이 2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얼굴을 크게 다친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았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 서울의 한 학원에서 20대 여성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남성이 경찰이 붙잡혔고 피해자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 자신을 스토킹한다는 착각에 빠져 사회복지시설 입소자에게 흉기를 휘두른 30대 여성이 검찰에 넘겨졌고 피해자는 좌측 허벅지 부위를 크게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
사회면 뉴스를 듣다 보면 꼭 한 번씩은 듣게 되는 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은 언젠가부터 안도감보다는 회의감을 불러온다. 안도감은 희미하고, 회의감은 더욱 짙어 간다.
살아있음의 다행스러움과 살아내야 함의 처절함이 동시에 전해지는, 얼마쯤은 위안이 되고 얼마쯤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그 말.
보도 언어 특유의 건조한 어투 때문에 그 뒤에 감추어진 피해자의 고통에 적당한 거리감을 두며 나 자신의 얄팍한 선량함만을 확인하게 되는 말.
어쩌면 더 깊어야 할 관심을, 더 무거워야 할 책임감을, 더 굳건해야 할 연대의식을 가로막는 말.
중요한 것은 그 이후를 살아내야 하는 당사자의 고통이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닿은 것은 한 보도를 접한 이후부터다. 고속도로 운전 중 앞차의 철제 빔이 차 앞 유리를 관통하고 뒷차 운전자의 어깨에 박혔다. 그렇지만 그 사건 속 운전자에 대한 앵커의 멘트 한 줄 역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였다.
정말?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어쩌면 그 운전자는 수년 째 결론 없는 치료를 반복해야 할지도, 돌이킬 수 없는 장애와 트라우마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가해자인 앞차 운전자 또한 피해자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이유로 아주 소소한 처벌로 이 사건을 마무리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한쪽 어깨가 날아갈 뻔한 피해자에게, 목숨이 붙어 있으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가. 우리는 그렇게만 안도하고 결론 지어도 되는 것인가.
생명이란 어디까지인가
이름만 아는 사이의 선생님 한 분이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졸업생에게 칼부림을 당했다. 놀라움과 두려움, 혼란을 뒤로하고 선생님의 생존을 서둘러 확인하는 말들이 주변을 통해 두서없이 오고 갔다.
‘수술은 잘 끝났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 말에 얼마나 안도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흐릿한 선의로 온전한 생존의 부채감을 지우려는 차가운 타인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타인의 고통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습관적 언어로 소비되며 아픔을 가볍게 만드는 그 순간에 나는 이의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이후 소식을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듣게 된 선생님 소식에 2년 전 부채감이 다시 떠올랐다. 2년 넘게 지난 시간 속에서도 그는 아직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찢긴 살은 붙었을 것이나 아직 치유되지 못한 무엇이 있다. 그럼에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걸까. 여기서 생명이란 어디까지인가.
무심함을 넘어 언뜻 잔혹하게도 느껴지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 그 뒤를 궁금해하고 묻고 보듬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역시 얄팍하다 못해 텅 빈 선의에 불과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