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초라해 보이는 걸까?

by 우희경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훈이라는 부자 집 남자 아이가 있었다. 훈이는 우리 동네에서 큰 나무들로 뒤 덮여 있는 정원이 있는 2층집에 살고 있었다. 부자집 도련님답게 훈이는 항상 체크남방에 깔끔한 니트 조끼를 입고 다녔다. 얼굴은 부티가 났고, 공부도 잘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그였다.

그에 비해 나는 어릴 적 그리 부유하게 자라지 못했다. 자식 네 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다. 그래서 제때 끼니를 챙겨 먹지 못했다. 우리 집 물 부엌에는 곤로(난로의 종류)가 있었다. 성냥불로 심지에 불을 붙여야 불을 킬 수 있는 조리 기구였다.

부모님은 먹고 살기에 바빴다. 일을 하다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 많았다. 때문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배가 너무 고파 곤로에 성냥불로 불을 켜서 항상 계란 후라이를 해서 배를 채웠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때는 그것이 위험한 지도 몰랐고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두 살 위인 언니와 밥통에 밥과 간장을 넣어 계란 후라이를 넣어 밥을 비벼 먹곤 했다. 한 창 잘 먹고 커야 될 나이에 잘 먹지 못해 키가 생각보다 안 큰 건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쉽다.

훈이와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항상 좋은 차를 타고 학교에 내리고 하교 후 바이올린을 들고 교습을 가는 훈이는 항상 부러운 존재였다.

‘아 나도 훈이처럼 부자집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왜 우리 부모님은 가난한데 자식은 이렇게 많이 나서 고생할까?’

부잣집 도련님 훈이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정원 있는 그의 집이 부러웠고, 바이올린을 켜는 하얀 손이 부러웠다. 학교에 부모님이 오시는 날이면, 곱게 화장을 하고 잘 차려 입고 오는 훈이의 엄마마저 부러웠다. 팍팍한 살림에 자신을 꾸미는 여유조차 없었던 엄마가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가 부러울수록 가난한 부모님이 싫어지기까지 했다. 어떻게 하든 열심히 살아보려는 부모님이 존경스럽다기 보다는 가난한 형편에 자식을 많이 낳은 부모님이 참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집에 잘못 태어났고, 훈이와 비교해서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30년쯤 흘렀을까? 우연히 친정엄마와 함께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들렀다. 훈이가 살던 집은 게스트 하우스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 여기 훈이네 집 아니였어?”

“맞아. 훈이네 아빠 사업 망했잖니. 그 충격으로 아버지 일찍 돌아가셨고. 잘 나갈 때 돈을 흥청망청 써서 지금은 집도 팔고 어렵게 살고 있다더라”

동네에서 가장 부자였던 훈이네는 훈이가 성인이 된 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부도가 났다고 했다. 그렇게 부러웠던 훈이는 잘 살고 있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어릴 적 그렇게 부러워했던 훈이.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런 그가 상처를 받지는 않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참 삶이라는 게 우습다. 상황은 늘 변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니 말이다. 항상 남이 나보다 더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내가 남보다 더 가진 것은 보지 못한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 이지만 훈이는 우리집 4남매가 북적북적 되는 것이 부러웠다고 한다. 나는 자식 두 명만 낳아 남 부러운거 없이 다하며 사는 훈이가 부러웠지만 훈이는 4남매인 내가 부러웠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 하다.

내가 가진 것에만 집중하면 더 행복했을 텐데.... 내가 만약 그때 부자집의 훈이보다 가난해도 알콩달콩 살던 우리 집도 괜찮아라고 생각했더라면 유년시절을 더 행복하게 보내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 가난했지만 곤로 불에 달걀 후라이를 해 먹던 그때 그 시절이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