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by 우희경

어릴 때는 누가 공부를 잘하고, 누가 더 이쁘고 잘생긴지가 비교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공부 잘하고 이쁜 소위 엄친 딸은 거의 만인의 적이었으니까.

공부를 잘하고 이쁜 것은 양반이라는 건, 성인이 되고야 알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많은 잣대로 남과 나를 비교하기를 권했다. 어른이 되면서 시작된 “누가 취업을 잘했나요?”에서 시작된 경쟁심리는 “누가 시집을 잘 갔나요?”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남의 삶과 나의 삶에 대한 비교는 끝없는 펼쳐지는 사막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남과 비교를 잘 하는 구나라는 느낀 건, 결혼을 준비하면서 부터였다. 아니 그 전부터구나. 일단 ’남자친구가 있어요‘라는 말을 하면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을 퍼 부었다.

“남자친구 뭐 하시는 분이야?”

“남자친구 차 뭐야?”

“남자친구 부모님 뭐 하신대?”

’남자친구 뭐 하시는 분이에요?‘라는 질문은 왜 처음 타는 택시 운전사분에게도 들어야 하는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탓일까. 아직도 그게 의문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관심을 더욱 폭발했다.

“예식장은 어디야? 호텔이야?”

“집은 자가니? 전세야?”

“신혼 여행은 어디가? 유럽이야? 동남아야?”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지쳐갈 무렵, 왜 사람들은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비교의 문화 때문이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출발 선상의 사람이었다. 적어도 결혼 전까지는. 비슷한 월급을 받는 직장이었고, 비슷한 처지의 동지이자 친구였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것은 이런 동지의식을 갈라놓았다.

소위 결혼을 잘 한 친구들은 결혼이라는 한방(?)에 좋은 호텔에서 우아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대중교통 대신 좋은 차를 매일 탈 수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원룸에서 자가(自家)로 급격한 신분상승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비교의 사회에서 결혼은 엄청난 대격변이었다.

그래서 일까.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을 할 때 였다. 신랑의 오랜 지인 누나라는 분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어머 희경씨. 땡 잡으셨네요!”

아마 겉으로 보이는 모든 조건들이 남편은 내가 잡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나 보다. 그런데 어쩌나, 땡 잡았다라고는 표현을 들어야 할 만큼 호텔 결혼식도 안했고, 좋은 차로 업그레이드된다거나 원룸에서 큰 집으로로 신분상승이 되지도 않았는걸,

아마도 그 선배 누나는 나보다 남편이 꽤나 많이 아까웠나 보다. 내가 당신보다 시집을 잘 가게 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모든 상황을 남과 비교를 하는 걸까? 비교는 끝이 없다. 그럼 내가 청담동으로 시집 잘 간 친구를 질투하고, 타워 펠리스에 산다는 친구와 나를 비교해야 되는 걸까?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사회에 보여지는 가치들. 그러니까 좋은 직업, 부의 가치 등으로 경계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은 그 경계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만든 담일지 모른다. 안 그러면 내가 타워 팰리스에 산다는 시집 잘 간 친구와 계속 연락을 하면 살지 못할 테니까. 그 경계에 벽을 넘지 못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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