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야 Jul 20. 2022

남부러울 것 없는 육아휴직자 이야기

휴직자의 집안일

육아휴직자 이야기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얼마 전, 나의 휴직 경력(?)은 교육현장에 있었던 경력을 뛰어넘었다. 휴직 중이지만 학기 단위로 복직을 할 수 있어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닌 후부터 복직을 고민해오던 나였기에 휴직 년수가 재직 경력을 뛰어넘었을 때,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곧 돌아가게 될 직장에 적응하기 전, 이미 적응해버린 나의 휴직기를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 1. 휴직자의 집안일

  내 생각에 엄마는 전업맘, 직장맘, 휴직맘으로 나뉜다. 휴직한 엄마는 전업맘과 직장맘 사이의 경계에 서 있다. 언젠가 직장에 돌아가야 하므로 아이가 더 애틋할 수도 있고, 언젠가 돌아가야 하므로 '내'가 더 애틋할 때도 있다. 언제 직장에 돌아갈지 모르므로 집안일에 전념해야 할 것만 같다가도, 언제 돌아갈지 모르기에 집안일과 육아가 모두 독박이 될까 봐 거리를 두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집안에서도 뭔가 전문적이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안일에 소질이 없음을 빨리 알아차린 나는 신혼 때부터 기계의 힘을 빌리려 노력했다. 세탁기는 빨래를 돌리고, 식기세척기는 설거지를 하고, 로봇청소기는 바닥을 청소하며, 내 몸은 소파에 앉아 이 움직임과 소리를 감상한다. 나는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전능한 마법사가 된 느낌을 받는다. 이런 마법사가 되는 경험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계를 마련할 재원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완성도가 떨어져도 그것에 만족하는 마음가짐이.

[출처. 픽사베이]

 예를 들어, 로봇청소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머리카락과 부스러기가 남아있다. 그러나 나는 '로봇이 움직이며 먼지를 조금이라도 먹었으니 안 한 것보다 낫겠지?' 하며 못 본 척한다. [단언컨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식기세척기에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접시들을 싱크대에 모두 모아야 한다.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눈에 거슬릴지라도 참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건조기에 빨래들을 말리려면 어느 정도 구겨짐을 감수해야 한다. 건조기 동작이 마치자마자 빨래를 갤 부지런함이 내게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건조기가 종료되는 시간에 빨래를 개는 일정을 맞추기가 참 어렵다.]

렇게 생각해보니 나는 집안일에 유능해지기보다 보여지는 흠들을 덜 보려는 노력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것이 여전히 기계의 도움을 받으며 집안을 꾸려가는 비결인 듯하다.  


아이를 낳고 보니 기계의 도움을 벗어난 집안일들이 생겼다. 집안일은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꾸준함은 내 삶에서 가장 어려운 덕목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교과서에서 본 것만 같은 완벽한 살림이 아니라도 어찌어찌 살아가졌다. 나는 거기에서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를 찾는다.


 내게 요리는 이벤트 같은 것이다. 인터넷이나 요리책에서 근사한 사진 컷을 보면 도전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도전하고, 완성하여 뿌듯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지치고, 그 요리는 '이제 안녕'이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 걸 보면 신기하다고 친정엄마는 말씀하신다. 나도 동의한다. 매 끼니마다 어찌어찌 넘어가진 것 같다.

 청소는 보이는 것만 치운다. 잠시 복직했을 때, 친정엄마가 살림을 도와주셨는데 그 시절, 우리집이 가장 깨끗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게으름도 한몫하지만, 복직 후에도 깔끔함을 계속 유지하고 살 자신이 없기에 깔끔함에 덜 적응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도 있다.

 내게 빨래는 정말 하기 싫은 노동 중 하나다. 그래서 날을 잡아서 한다. 어느 브런치 글에서 건조기에서 빨래를 바로 꺼내 입는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신혼 때 우리집은 줄곧 그래 왔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빨래는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 모든 집안일들을 얼렁뚱땅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휴직 사유가 '가사'가 아니라 '육아'기 때문이다. 집안일과 육아는 다른 것이다. 나의 경우, 휴직기간 동안 삶의 우선순위는 '아이'였다.


 육아는 오롯이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다. 매일의 수많은 사건에 아이와 함께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색깔을 칠해간다. 겉으로 보기에 아이는 저절로 크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의 요란스러움이 견뎌진다. 

매일의 이야기들이 우리 사이에서 새겨지고, 쌓여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기분 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