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사업과 연구를 구분하는 글을 작성하였다. 이전 글을 업데이트하는 동시에, 데이터 중심 사고의 관점에서 사업과 장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스타트업에서 3년간 일해 오면서 가장 큰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사업과 연구와 예술을 명확히 구분하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사업은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기반으로 된 활동을 말한다. 맥도날드는 우리에게 맛있는 햄버거를 제공하여 식욕을 충족시켜주고, 세스코는 집안에 숨어들어 있는 골칫더어리 들을 해결해준다.
연구는 '호기심을 해결하는 것'이 기반으로 된 활동을 말한다. 나사는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서 호기심을 해결하며, 고고학자들은 공룡의 뼈를 발굴하여 과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아낸다.
예술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기반으로 된 활동을 말한다. 멋지게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가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표현하기도 하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행위예술을 통해 뭔가를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사업과 연구와 예술은 완전 독립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행동이 사업이자 연구이자 예술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가령, 애플의 제품은 사람들이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는 동시에 디자인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예술적이며, 좋은 성능의 제품을 위해 많은 기술 연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이 기반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애플은 명백히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기반으로 둔 채로 연구와 예술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은 소비자에 기반하고 있다. 이와 같이 무엇이 우선순위에 있는지를 보게 되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쉽다.
이해를 위해, 내가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겪었던 실수에 대해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이전에 나는 고객들과 소통하지 않고 내가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었다. 기술만 탄탄하면 누군가는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만든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1명이다.(1명은 바로 나다) 물론 내가 좋은 기술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프로그램들이 원활히 작동할 만큼의 기술은 충분히 있었다.(곧이어 놀라운 점을 보았는데, 나조차도 그 프로그램을 며칠 사용해보다가 안 쓰게 되었다.) 이 때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소비자를 기반으로 한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었으니 사업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나 예술활동에 가까웠다.
더 이상 아무도 쓰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비자가 정말 사용할 만한 걸 만들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당시에 퇴사하고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팔리고 많이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여러 아이템을 컨셉만 잡고 제품을 만들지 않은 채로 소비자 반응을 테스트해보았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아래 글에 정리해두었으니 궁금하면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magazine/startupssul
그렇게 소비자 반응을 여러 차례 테스트하고 많은 소비자가 반응하는 아이템만 추려서 하나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나는 사업을 통해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었다.
위와 같이 사업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만드는 것이며,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메타인지가 나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 사업가도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스포츠카 한 대를 뽑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는 내가 필요해서 만든 프로그램을 며칠 써보니 필요 없는 프로그램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이처럼 나는 실험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여러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내 눈에 띈 책이 있었다. 바로 <실험의 힘 - 마이클 루카, 맥스 베이저만> 책이었다.
데이터 중심적인 사고를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거나 실천해 본 적이 없다면 이 책에 많은 사례가 담겨있으니 읽어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책 곳곳에 있는 사례들이 처음에는 재밌었지만 워낙 익숙한 내용들이라 차츰 재미없어졌다. 그리고 큰 맥락은 모두 같아서 많은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고 디테일하게 봐야 하는 부분만 주의 깊게 봤다.
한편,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사업과 장사의 차이점을 문뜩 떠올릴 수 있었다. 끝부분에서는 실험 윤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자신이 실험당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실험은 공공선 상에서 공개하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투명하게 실험 내용들을 공개하고 왜 이런 실험을 했는지 소비자가 불쾌하지 않도록 알리라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어떤 실험이 불쾌하지 않고 모두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유쾌한 실험이란 무엇일까? 저마다 가치 기준이 다른데 세상에 불쾌하지 않는 실험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러저러한 고민을 하며 사업과 장사를 구분하게 되었다.
사업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행위'이다. 반면 장사는 '물건/서비스를 판매하는 행위'이다.(장사는 물건만 잘 팔면 되기 때문에 시스템이나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어떻게든 물건을 많이 팔면 된다. 하지만 사업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시스템과 좋은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람들은 '실험'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하는 사람들의 실험'이 싫은 것이다. 사업은 소비자의 이익이 있어야만 사업의 이윤도 발생된다. 반면 장사는 판매자의 이윤이 존재해야만 소비자가 존재할 수 있다. (즉 장사는 win 전략이고 사업은 win-win 전략이다.) 그래서 장사꾼의 실험은 피실험자(소비자)의 이익이 우선시되지 않고 장사꾼의 이윤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불쾌한 것이다. 반면 사업가의 실험은 소비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불쾌함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그 사업의 가치관을 이미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실험도 납득하기가 쉽다.
물론 사업과 장사도 독립적인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힘들다. 사업, 예술, 연구를 구분하는 것보다 사업과 장사를 구분하기가 더욱더 힘든 것 같다. 그러나 위와 같은 생각들을 통해 손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 실험에 소비자가 불쾌해하는가'이다. 다수가 불쾌해하거든 내가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다수가 납득하거든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혹시라도 사업을 하는데 나의 실험을 다수가 싫어한다면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업을 하던 장사를 하던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장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사업하고 있다고 속이지 않고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던,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인지하는 것으로도 큰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득 든 생각을 두서 없이, 깊은 고민없이 이렇게 메모했다. 더 고민해보고 좋은 인사이트를 얻으면 또 다시 업데이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