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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Feb 28. 2022

취향은 엄마를 살린다

산후우울증-우울증의 테크트리에서 나를 살려준 '이것'


 마치 거대한 바다 속에 가라앉는 것 같았다. 힘껏 발버둥 쳐 위로 올라가려 해도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이내 더 깊이 가라앉았다. 이십 대 후반의 내 친구들은 육지에서 걷고 뛰고 날아 다닌다. 그런데 나만 폭폭한 감정의 바다에 푹 잠겨있다. 때로 수면 위로 오르기도 했지만 잠깐 뿐이다. 육지로 발을 내딛기엔 역부족이다. 그렇게 표류하며 지낸 시간이 자그마치 6년. 서른을 넘기고서야 육지를 밟을 수 있었다. 산후우울증이었다.


'육지를 밟는다'는 건 사실 별 거 없다. 소소한 취향이 있고, 취미를 즐기고, 좋아하는 음식엔 군침 흘리고, 나름의 루틴이 있고, 밤엔 잠 자고, 낮엔 산책 하러 나가는 데 큰 각오가 필요치 않은 것. 그게 바로 내가 느끼는 단단하고 안정된 삶, 육지다.


어떻게 산후우울증 때문에 취향이며 취미며 식욕이며 일상생활 그 모든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지나친 과장이라고 하고 싶지만 삶은 그런 끔찍한 면들을 살살 숨기고 있다가 때가 되면 예고도 없이 툭 꺼내보이고 만다. 나는 그런 일을 겪을 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라고 얼버무리는 편이다. 미주알고주알 설명해봤자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모를테니 말하는 입장에서도 그게 나은 것 같아서다.


친구에게는 '어쩌다보니'라는 말이 더 나을때가 많지만 여기서는 그러지 않기로 한다. 편하게 말 못할 것을 더 쓰기로 맘 먹었으니까.


아기를 키우는 데는 직장 경력이나 지성, 그러니까 전공 지식이니 이성적인 대화 기술, 교양이니 하는 건 무쓸모다. 그러니 여기부터가 나를 잊는 출발선, 리셋이다.


아기는 거의 말 안 통하는 원시인이나 다름없다. 엄마가 되면 그런 원시인과 소통해야 한다. 말이 안 통해도 생존에 꼭 필요한 일은 서로 직감으로 알아챌 수 있다. 다른 말로 눈치라고도 하지 아마. 울기만 하는 아기의 뜻을 민감하게 해석하려면 부지런한 관찰과 눈치만 있으면 된다.


울음만 듣고도 적절한 타이밍에 기저귀를 갈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최고의 엄마다. 둔한 엄마라면 그동안 케케묵혀둔 동물적 직감을 깨우기 위해 여기서부터 고군분투하게 될지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원시인을 위해 살면서부터 사회인으로서의 지위가 옅어지기 시작할거다.


체력도 이전보다 더 좋아야 한다. 낮이고 밤이고 울어대는 아기를 잠 설쳐가며 몇 달을 상대하다보면 체력은 금방 고갈된다. 그러다 몸살 나서 아프기라도 하면 '엄마가 강해야지' 같은 소리까지 듣는다. 누구는 위로라고 하는 말인데 알고보면 꽤 서러운 말이다. 맘 편히 아플 수도 없으니까. 그러다보면 점점 취향을 만족할 수 있는 활동보다는 겨우 끼니 챙기기나 잠을 선택하는 등 당장의 피로를 해소하는 것이 이로운 삶이 펼쳐진다. 취향은 쥐뿔, 개인 사정도 맘 편히 보기 힘들다.


시간이 지나면 부처님 급의 멘탈 에너지도 필요해진다. 아기 입장에 빙의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감 능력, 이유식을 손으로 조물딱거리거나 얼굴에 끈적한 음식을 떡칠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웃으면서 지켜봐줄 수 있는 인내심까지 갖추고 있다면 훌륭하다. 하지 말라는 짓을 아이가 계속 하더라도 수백번 같은 훈계를 반복해 줄 수 있는 인내심이 점점 더 높은 레벨로 요구된다.


나의 그 소중한 아기는 틴케이스에 든 꾸덕한 립밤(극강의 보습력을 자랑하는)을 손톱으로 파서 머리에 떡칠한 적이 있다. 립밤의 촉감을 좋아했을 아기의 입장에 최대한 공감하며, 비록 내 눈은 웃지 않았지만 입이라도 웃음짓는 가상한 노력을 하며 목욕시켰다.


알다시피, 유아용 샴푸 바스는 세정력이 강하지 않다. 골 때리는 그 와중에 아기 피부 상할까봐 차마 비누도 쓰지 못한 여린 에미다. 피부 상하는 것보다 떡진 머리가 낫다는 엄마의 판단하에 유아용 샴푸바스에만 의존하며 아기는 삼일을 떡진 머리로 살았다. 마트에서 마주친 처음보는 어떤 계산원은 '애기 머리가 왜 이래요?' 물어보곤 목욕도 제대로 안 씻기는 엄마라며 뒤에서 수군거렸다. 인내 또 인내만이 살 길이리라.


부처의 마음은 엄마가 되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라도 어떻게든 버티든 배우든 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에겐 오은영 박사님이 계시니까. 그 분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조금만 봐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무릎을 탁 치게되며 자연스레 노력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분을 티비로 자주 만날 수 있는 이 시대에 엄마가 된 것이 그나마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사실 아이들이 떼쓰기 시작하는 때가 가장 힘든 단계가 아닐까 싶다. 오은영 박사님의 솔루션을 참고서 삼아서 엄마의 성격도 개조할 필요성이 생겨난다. 이 단계에서 개성이고 나발이고 자아가 남아날 수 있을까. 내 기준에서 버럭! 할 일이더라도 올바른 훈육이 아니라면 일단 주춤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아기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동네 엄마들로 인간 관계마저 한정짓다 보면 어느새 탈탈 털려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는 말이 진리 같아도, 엄마가 된 여자에겐 예외 같다. 몸과 마음이 대대적인 스케일로 갈아 엎어지는 것도 엄마라는 직책 앞에서는 예사로 넘어간다. 진리를 거스르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일 테니 산후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도 그러고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이 지경에 처한 엄마들을 우울증이 모른체 비껴가는 게 더 놀랄 일 아닌가. 차라리 이참에 '우울증 어서오시게' 하며 속 끓인 일들 대차게 풀어놓고 가족들 도움 좀 받아도 좋으련만.


하지만 나는 산후우울증에 낯을 심하게 가렸다. 산후우울증 탓을 하면 될 일을 내 성격과 자질 탓을 하며 자책했고 더 잘 하려고 애썼다. 하루 빡세게 잘하고 이틀 앓아 눕는 식이었다. 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싶어하는 모든 행동이 더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것은 뻔하다.


그 무렵, 친한 친구가 나의 결혼 전 모습을 늘어놓으며 지금도 그때처럼 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진찍고 찍히는 걸 좋아하고, 여행 다니고, 잘 꾸미고, 글을 쓰고, 공부도 하고. 친구가 나의 여러가지 과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딱 하나. 처한 환경이 어찌됐든 취향만큼은 살아있는 나 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그 친구는 나의 많은 취향들을 공유했던 소중한 사람이다. 아마 아이를 키우면서 기진맥진하느라 너무나 비어버린 내 모습이 그 누구보다도 마음이 쓰였을지 모른다.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에는 더이상 좋아하는 음악이라든지, 가고싶은 전시회라든지, 여행지, 사진 촬영 구도 라든지, 최근에 본 책이나 영화, 쓴 글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같이 하고 싶은 공부에 대한 주제가 사라졌다. 오로지 아이만 있었다.


당시에 나는 친구의 그런 말을 듣고 씁쓸함 밖에 느끼지 못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가 생겨서 나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 것에 대한 씁쓸함이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더라"는 말은 아무런 설명도 변명도 되지 않았지만 편리한 방어책이었다. 때론, 아무 소용 없는 성의없는 말을 함으로써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을 때가 있다.


사실 그맘 때 쯤 친구들 SNS를 보면 각자의 취향이 넘쳐나고 있었다. 매일 봐도 어쩜 그렇게 매일 다른 사진과 글들이 올라오는지. 나이는 같아도, 우리 중에 결혼한 사람은 나뿐이라 삶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나에겐 나의 사랑하는 아기 사진으로 도배된 SNS였지만 친구들 눈엔 어쩐지 짠한 모습이었다. 이전에 개성넘치던 나였던지라 더 극명하게 대조되었던 것 같다.


그 무렵 즈음 해서, 산후 우울증에 관한 의학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연애 기간이 짧을수록, 신혼 기간이 짧을수록, 나이가 젊을수록 산후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논문이 발표된 것이다. 완전 내 이야기구나. 나는 연애도 짧고 신혼은 더 짧고 나이도 젊었다. 딱 그 연구에 필요한 표본집단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친구들이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여행을 다니고, 진로에 열정을 불태울  나는 집에서 옆에는 사랑스러운(때론 밉기도 한) 아기를 끼고 앉아서 사진을 구경할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쑥 불쑥 아까운 마음이 들곤 했다. 나도 어쩌면 저렇게 살았겠구나 싶었던  같다.


아이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다. 내가 살아봤음직한 가지 않은 길을 바라보는 마음을 억누를 길은 없었다. 의학 논문은 툭하면 연구 결과가 바뀐다지만 그런 내 생활의 단편적인 부분만 놓고 봐도 그 연구는 지당한 결과를 냈다. 젊은만큼 그 가능성이 참으로 아까운 것이었다.


아무튼 산후 우울증은 신기한 증상을 갖고 있다. 아기를 사랑하게 되는건 좋지만, 너무 조심스러워진 나머지 적정선을 지킬 줄도 모르고  없이 자책하거나 맹목적으로 아기만을 위해서 나를 비워내는 데에만 집착하게 된다. 적당한 균형이 필요해진다. 그러니 이런 대책없는 증상을 고치려면 어지간한 사람의 의지력만으로는 안된다.


나는 다음 날이 오는 것이 두려워져서 밤에 잠이 안 오고, 아침에는 두 아이와 하루 24시간을 버틸 것이 막막해서 일어날 힘조차 내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먹이고 씻기고 웃어주고 놀아줄 힘이 났었는데,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모른척 하고 아이들만 바라보며 버티다보니 그 힘마저 동이나서 병원을 찾았다. 적어도 반찬은 내 손으로 해 먹여야 하지 않겠나. 침대에 누워서 밥도 못 할 지경으로 심각해졌다.


병원에서 초기에는 가벼운 산후 우울증으로 시작된 것 같지만 방치되어서 만성 우울증으로 진행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치료 기간이 그래서 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심했구나. 그러고보면 나는 자는 시간 외에는 재충전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던 엄마였다. 결국 약을 먹으며 치료에 매달렸다.


1 3개월간  시간의 터널을 지나서 현재는 내가 알던 그 단단한 육지에서 살고 있다. 하루  선호하는 루틴이 있고, 취미를 되찾았다. 밤에 잠을  자고 밖에 나가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에는 자격증 공부도 시작해서 토익, 토익스피킹, 컴퓨터활용능력1 자격증도 땄다. 이것까지는 기대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치료를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지나자 첫 번째 변화는 약물 도움 없이도 오전 루틴이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등교/등원을 시키고 한가한 시간이 찾아오면 말끔하게 샤워 후에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침대 정리를 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이 가벼운 활동들이 그동안 그렇게 힘들고 버거웠다. 끙끙대면서 겨우 해왔던 일들이 사실은 별거 아닌 가벼운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취미를 그리워 하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다. 악보책 외에 따로 모은 악보집만 클리어 화일로 3개다. 화일 하나당 40 정도 되니까 120 장에 빼곡하게 담긴 악보를 나는 주말마다 두시간 세시간  쳐댔다. 전공자도 아니면서  정도 열정을 보였던 취미였는데 신기하게도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치료한지 1 정도 되자 다시 피아노가 미치게 그리워졌다. 그동안 그립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하루는 피아노를 너무 치고 싶은데, 피아노를 사지 않아서 집에는 아직 피아노가 없었다. 육아용품에 자리를 양보하느라 피아노를  엄두를 못내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치고 싶은 생각이 앞서니 책상 앞에 앉아서 나도 모르게 유튜브로 음악을 켜놓고 들으면서 손으로 조용히 건반 치는 시늉을 냈다.  일이 있은 후로 피아노 하나만큼은 나를 위해서 집에 둬야겠다 싶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집에는 전자 피아노가 생겼다. 육아용품은 조금 처분했다.


참지 않아도  것마저 미련하게 았다. 병은 그럴수록 달려온다.  돈이면 아이 학원비,  시간이면    읽어줄 시간  이런 나만의 여러가지 계산법은 나의 재충전을 가로막았다. 정작 아기는 나에게 그렇게까지 하라고 강요하지 았는데. 아기는 내가 웃으면 같이 웃고 내가 울면 같이  뿐이었다.


나는 아기 앞에서 티비조차  발달에 해가 될까봐 무서워서 틀지 못하는 엄마였다. 무해한 엄마이고 싶어서 세상 모든 것에 너무 긴장하고 조심한 나머지 행복을 깔아뭉갰다.


처음에는 하루의 패턴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다 나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의사는 아직 시간이 걸린단다. 뭐가 문제길래 아직도 치료를 한다는거지 싶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무섭지 않고, 밤에 자야할 때 내일이 두렵지 않으며 집안일을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게 해내고 아이들에게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좋아하던 취미인 피아노를 그리워하면서부터 알았다. 내가  답다고 생각하는 잃어버린 모습들을 하나 둘씩 되찾고 었다. 그 시작은 아기 외의 세상의 다른 것들에도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부터였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에는 그런 차이가 있다.


감각이 깨워지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잃어버렸는지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으리라. 의사도 그걸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도 힘들지 않게 씩씩하게  버텼어요'라고 이야기하는 환자보다는 '좋아하는 일이 생겨서 너무 행복했어요'라고 말하는 환자가   안심일테니.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일일까? 단계적으로 점점 좋아지고 있다면 다음에  좋아질 일은 뭐가 남아있을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런 기대가 이어지는 상태에서 치료는 종료되었다. 단단한 땅에 다시 발 딛고 살게  것이다.


 후로  좋아진 일은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자격증을 따고 사회로 나가기 위해 준비할 힘이 생겼다는 .


 중요한 것은 남편을 예전보다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힘들   무게만큼 남편이 짊어진 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부턴가 남편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힘든 사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힘들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헤아릴  있다는 것도 크나큰 변화였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들의 균형이 맞아가고 있었다.


마치 엄마가 되기 위해서 차근차근 나를 개조해 나갔던 순서를 또 다시 역행하는 것만 같다.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충격으로 다가왔던 일은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피아노를 잊은채 6년이나 살았다는 것이다. 그게 꽤 충격이었고 다시 그 기쁨을 되찾았을 때는 세상에 색깔이 다시 칠해진 것처럼 활기가 돌았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나의 취향이나 취미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 아기가 태어나고 낯선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니 가장 빨리 조정하고 버리기 쉬운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가 나에게 결혼  모습을 상기시켜주며 그때처럼 살아보라고 이야기  때도 인생에서 취향이 가지는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피아노가 다시 좋아지면서 알게됐다. 취향이라는건  사람의 감각을 살려주고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는 요즘 말은 괜한 우스갯 소리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개인의 취향이란 살아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살아야 하니까 사는 삶보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사는 게 진짜라고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삶의 꽤 진지한 요소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육아의 최대 고비 '백일의 기적'을 많은 엄마들이 기다린다. 먹고 자는 것만도 지치는 시기다. 그 고난의 기간 동안 취향을 잃지 말라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러나, 사소하게나마 지킬 수 있는 취향이 있다면 진지한 태도로 사수해보길 바란다.


혹시 산후조리원이 너무 더운데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 취향이라면,  냉수라도   마셔야 겠다면  취향을 고집하길. 그것마저도 작지 않은 소중한 당신의 취향이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주변의 입바른 소리들이 모두 맞는 말인양 들을 필요 없다. 일단 나는 산후조리원, 거기서부터 시작인 것만 같다. 훌륭한 모성상이나 지나치게 조심하느라 모든 기대에 부응하려 애쓸 필요 없다.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동네 엄마들이 고집하는 취향이 느껴질 때면 안심이 된다. 이제는 취향을 너무 많이 참는 엄마가 계시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말아 보길 바라게 된다. 시간이든 돈이든 그냥   번만 질러 보시기를. 질러도 질러도 엄마들에겐 여전히 뒤로 미뤄 놓은 취향이 많으니 말이다.


아, 최근에는 또 나만의 취향을 발견했다.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가 너무 좋았던 날이었는데 이유는 소소하다. 거기 내가 좋아하는 잡지가 쫙 깔려있었다.


도서관에 잡지 많은건 당연하지만 그동안은  아동열람실만 들락날락 해왔다. 그런데 지난 주에 처음으로 순전히  호기심에 이끌려 문헌정보실에 들어갔다가  신세계를 오랜만에 접한 것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앞에 펼쳐진걸 보는 것은 확실히 르다. 좋은 기분이 든다.


이십대 때 한창 좋아하던 영어교재 EBS입트영과 비슷한 귀트영만 봐도 좋아서 얼른 아이패드를 들고 그때 기분을 느껴보면서 필기도 해봤다고. 다른 잡지들도 많아서 한참 보다가 나왔다고 그랬더니 친구가 말했다.


넌 참 대단하다. 나는 그런거 안 좋아해. 근데 그래서 또 너 다워.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일이니? 밖에 나가 돌아다니고, 새로운거 구경하고, 사람들 이야기 듣는거 좋아하고, 글 쓰는거, 일 하는거 좋아하는 니가. 예전처럼 나다니며 글 쓰는 일 해야 할 애가 얌전한 집고양이마냥 있으려니 얼마나 아쉽겠냐고.


이것만 봐도 나도 여전히 참는 게 많은 엄마인가보다.


그래서 말했다.


그러니 잡지라도 실컷 봐야겠다고. 오전에 청소기 돌리는 거 포기하더라도 도서관에 이제 자주 가겠다고. 또 내가 뭐 좋아하나 계속 찾아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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