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엄마는 누가 결정하나요
손가락질받는 엄마는 어떤 사람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한 번도 이런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가.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꽤 부러울 것 같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부터, 나는 하지 않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외출할 때마다 '엄마다운 엄마'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육아책을 끼고 사는 건 기본이고, 원래 꾸미는 걸 좋아했지만 화장도 수수하게 하거나 거의 하지 않았고, 옷도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 펑퍼짐한 것을 주로 입었다.
일찍 결혼한 탓이었을까, 사람들은 아기띠를 메고 다니는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힐끗힐끗 쳐다보거나 가는 데마다 나에게 왜 이렇게 일찍 결혼했냐고 물었다. 그때는 그런 시선들이 너무 싫었고,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 옛날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니 그들이 그때 왜 그렇게 쳐다봤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사진 속의 나는 정말 젊었다. 어렸다. 애가 애를 품고 있는 것처럼 그저 여리여리했다.
첫 아이가 돌이 막 지나서 한창 외출을 하던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베이커리 카페에 갔고 친구는 그런 나를 예쁘게도 사진 속에 남겨주었다. 파마기 없는 중단발을 하나로 질끈 묶고, 앞머리는 길어서 한쪽은 귀 옆에 걸쳐져 있었다. 포슬포슬한 회색 니트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하늘색 아기띠를 메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 아기 엄마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지만 '아주' 젊은 아기 엄마가 사진에 그대로 박제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젊은 엄마를 신기해할 뿐, 그렇다고 손가락질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다른 엄마들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엄마들 사이에서도 젊은 엄마는 별종(?) 비스무리한 그런 존재였다.
아이가 네 살이 되고부터 본격적으로 나도 별종(?)의 삶을 보고 듣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셔틀을 태우러 나가면 같은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들이 늘 너 다섯 명 있었다. 아이 나이도 같으니 쉽게 친해질 거라고 기대했지만 한 학기가 다 차도록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와 동갑인 사람이 그 무리 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나이를 알자마자 그녀와 나는 빠르게 친해졌다. 금방 서로의 집을 오가며 아이를 놀게 하고 저녁까지 먹고 헤어지는 날도 많았다. 내가 상한 음식을 먹고 밖에서 심하게 배탈이 났던 날, 우리 집보다 그녀의 집이 더 가까워서 연락도 없이 급하게 뛰어 들어가 화장실을 써도 서로 놀리지도 흉보지도 않는 사이였다.
셔틀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홀짝였다. 그렇게 재미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나이 차이가 좀 있는 엄마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한 학기가 다 차갈 무렵에는 다른 엄마들도 우리와 꽤 잘 어울리게 됐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의 집에서 놀고 있었다. 거실에 앉아서 엄마들끼리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석진 방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녀의 일곱 살짜리 큰 아이가 내 아들의 고추를 사정없이 잡아 뜯어 꼬집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는 다른 엄마들도 전부 놀러 와 있던 상황이라 그 일을 모두가 알게 됐다. 어떤 엄마는 작게 혼잣말로 나와 눈을 맞추며 '이거, 성추행 아니야?'라고 은밀히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녀와의 사이가 살짝 어색해졌다. 친분이 아무리 두터웠더라도 자식 문제가 사이에 끼니 별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서로 여전히 놀고 싶어 해서 그녀의 집에 놀러 가기보다는 놀이터에서 노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사이 다른 엄마들은 그녀의 집 대신 우리 집으로 놀자고 몰려들었다. 우리 집에 놀러 왔다는 엄마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점점 소외되고 있었다.
"그 엄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아니, 지 아들이 그런 짓을 했으면 사과라도 제대로 하든가, 뭐라도 조치를 해야지. 왜 저렇게 태연해? 아니 oo엄마(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뭐라고 하든가 해야지. 애한테 제대로 사과라도 하라고 해. 나 그날 완전 깜짝 놀랐잖아... 일곱 살짜리가 벌써부터 발랑 까져가지고. 변태 아니야 변태. 쟤 저렇게 놔두면 안 돼... 어디 가서 또 저런 짓 할 거라고. 어린이집도 같이 다니는데 찝찝해 죽겠네... 내년에 학교 들어갈 텐데 학교 들어가면 저 짓거리 더 심해지면 그때 가서 어떡하려고 참..." 그리고 뒤에 덧붙인 한 마디.
"애 엄마가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애 생각은 조금도 안 해."
부끄러운 소리지만 그때 나는 동조했었다. 나도 똑같은 어린 엄마였으면서 마치 나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자못 끄덕였다. 내 속상함을 누군가 시원하게 대신 욕해주는 듯한 심정이었다. 그건 잘못이었다. 그때 나는 짐작했어야 했다. 나도 삐끗하면 언제든지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왜 그땐 몰랐을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아이가 유치원에 갈 때가 됐다. 그렇게 똘똘 뭉치던 어린이집 엄마들은 조용히 흩어졌다. 나는 유치원 추첨에 성공해서 새로운 곳으로 아이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는 학습을 강조하는 유치원에 적응하느라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틀에 한번 꼴로 친구를 때렸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전화 통화를 해야만 했다.
그때 아이는 유치원 친구들은 자기 친구가 아니라며 어린이집 친구들만이 '진짜 친구'라고 울먹였다. 정든 친구를 마음에서 아직 놓지도 못했는데 낯선 친구들, 어린이집보다 훨씬 엄격한 선생님들 틈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친구를 때리다니.
가정에서 훈육을 하고 타일러 보고 공감도 해주고 별 수를 다 써도 안됐다. 한 달 넘도록 아이가 조금만 스트레스받는다 싶으면 친구를 때렸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2주 차부터 심리 상담 센터를 알아봤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했던 한 달이 지나갔다. 그 사이 소문은 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점점 더 넓게 퍼져나갔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나쁜 소문이 빠르게 내달려 사람 하나를 보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 후 어느 날, 아이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길이었다. 같은 동에 살아서 그냥 알던 엄마가 뒤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어머~ㅇㅇ엄마! 오랜만이야~ ㅇㅇ이 유치원 다닌다며? 애는 유치원 잘 다녀? 안 힘들어해?"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안 그래도 숨을 돌리고 있던 터였다.
"처음엔 힘들어하더니 이제는 조금씩 적응해서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래? 그렇구나... 잘 됐네. 그런데 24층 엄마 알지? 그 엄마가 그러는데 ㅇㅇ이가 유치원에서 어떤 누나 때렸다고 하던데. ㅇㅇ이 순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안 그렇더라면서 나한테 막 이야기하더라. 그 엄마 ㅇㅇ이랑 같은 ㅁㅁ유치원 보내잖아. 알고는 있어? 혹시 모르고 있었으면 알고만 있어. 그 엄마 조심해. 내가 이야기해 줬다고는 하지 말고." 그리고 그녀는 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버렸다.
내 발걸음은 충격에 휩싸여 더 느려졌다.
'뭐지? 저 엄마가 어떻게 알고...? 나를 위해서 이야기해준 건가? 아니면 그냥 나를 멕이려고...? 아니 근데 왜 내 주변 엄마들은 하나같이 다 나한테 반말이야.'
그때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소문은 나와 아이를 가만히 두고만 보지 않았다. 동네에서 우리 아이는 문제 아이가 되어 있었고, 나는 속수무책으로 애 하나 잡지 못하는 문제 엄마였다. 유치원과 아무 상관도 없고, 친하지도 않은 엄마가 내게 그런 이야기를 전해준 것이다.
그 엄마들은 그래도 나한테 대놓고 "어려서 애를 잘 못 키운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딱히 서로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고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걸 피했다. 그러다 어쩌다 나에게 할 말이 떠오르면 이런 식이었다.
"어이구~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아침에 세수 안 하고 나왔어? 애 아침도 못 먹였겠네? 늦잠 잤어?"
지금 그때를 회상하며 들었던 말을 쓰고 보니 신기하다. 나랑 눈 맞춤도 인사도 피했던 사람들이 말은 어쩜 이렇게 했을까.
"아니요. 늦잠 안 잤어요. 애 아침도 먹이고 나왔어요. 세수는 했지만 머리를 못 감아서 그런 거예요"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그때의 나는 너무 움츠러들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 대꾸도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땅을 쳐다보며 "네, 그냥 좀 피곤하네요... 안녕히 가세요..^^"하고 말하곤 집으로 도망치듯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한 번 잡힌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아이는 이후로 너무 멀쩡하게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지만 한 번 어색해진 엄마들 무리 속에 나는 계속 그런 별종 같은 존재였다.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매일 그 엄마들을 마주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나마 가깝게 지내던 다른 동네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놔 봤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좀 조심스러운데... 아무래도... 네가 처음부터 대처를 잘 못했나 보다. 애가 그럴 때 따끔하게 혼을 냈어야 하는데 안 그랬지? 너는 뭔가 말투부터 너무 상냥하고 힘이 없어. 내가 볼 때 너는 애한테 화도 안 낼 것 같은데 안 그래? 네가 나이가 어리니까 아무래도 애랑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좋긴 하겠지. 그래도 가끔은 좀 더 엄마답게 훈육할 땐 하고 그래. 요즘 엄마들은 때리는 애들 얼마나 싫어하고 민감한데. 그 엄마들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는 해봤어? 네가 먼저 찾아갔어야지."
고민을 털어놓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의 말을 들고나니 상처가 선명해졌다.
아이는 언제든 문제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엄마가 젊다면 아무래도 한 마디 더 따라붙는 소리가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어려서 애가 그렇다'는 말 말이다. 정말 그럴까?
그땐 너무 아프게 들리던 말이지만 이제는 덤덤해졌다. 그럴 수 있게 된 힘은 우습게도 내가 2회 차 엄마로 살면서부터 생겨났다. 첫째 아이로 치면 나는 어딜 가나 어린 엄마였지만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이제야 평범한 엄마가 됐다. 서른 중반에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꽤 흔하지 않은가. 나는 그래서 둘째를 키우면서 제법 엄마로서 존중받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꽤 제멋대로 굴 때가 있는데도 아무도 내게 엄마가 어려서 그렇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첫째를 키우며 받았던 눈총도 받은 적이 없다.
최근에 만난 둘째 아이 친구 엄마와 어린이집 앞에서 나눴던 대화가 인상 깊었다. 그 엄마도 나와 비슷한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첫째를 키울 때는 엄마들이랑 가깝게 지내기가 어려웠어요. 아무리 제가 다가간다고 하더라도 그분들께서 저를 일단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어딜 가나 제가 제일 어렸어요. 얼마나 제가 어려웠으면 그분들끼리는 막 반말하고 편한데 저한테만 유독 존댓말을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둘째를 키우면서 만나는 엄마들과는 훨씬 편하게 이야기가 나와요. 나이도 제법 또래 엄마들이라서 이제 좀 연배가 맞는 것 같아요. ㅇㅇ엄마도 그래요?" 그 엄마는 내 속을 꿰뚫어 본 듯 내 생각과 비슷한 이야길 건넸다.
"어머, 저는 주변 엄마들이 초면에 다들 반말부터 해서 불편했었는데 반대 경우였네요. 네, 저도 둘째 키우면서부터 만나는 엄마들은 저랑 얼추 연배가 비슷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좀 더 편하게 다가가고 이야기도 더 편하게 나누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요. 너무 반가워요."
"그럼,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일찍 결혼한 거 후회한다? 안 한다?" (갑자기 시작된 미니 토크쇼)
수다는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첫째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오은영 박사의 초창기 육아 프로그램이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애가 100일도 안 됐을 무렵부터 매회 필기를 하며 봤다. 그 흔적은 나의 오랜 네이버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요즘도 오은영 박사님은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포맷이 바뀐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다. 난 첫째 때보다 티비에서 오은영 박사님을 훨씬 덜 만난다. 그래도 아무도 내게 못 미더운 말을 하지 않는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엄마들 세계에서 나이는 그렇게 위대한 게 아닐까.
참고로, '어리다'는 말은 중세 국어 '어리석다'라는 뜻에서 비롯되어 나중에 '나이가 적다'는 뜻으로 변화한 것이다. 어린이도 어리석은 자를 일컬어 부르는 말이었다고 한다. 이런 뜻을 알기 전부터도 나는 어린 엄마라는 표현이 달갑지 않았다. '엄마가 어려서 그렇지'라는 말을 자꾸 듣다 보면 결국은 어린 엄마가 어리석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혹시나 나중에 어린 엄마의 못 미더운 모습을 보게 된다면 '엄마가 어려서 그렇다'는 말은 자제해 주시길. '엄마가 처음이라 그렇지'라는 말만으로도 어린 엄마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