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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Nov 07. 2021

결혼에 '동안'이 컴플렉스가 되다

이상하게 그 말이 듣기가 싫다

"어머, 정말 어려보여요!"

"그 나이로 안 보이는데..."

"젊어보이는데..."


이런 말을 자주 듣는 입장이라면, 기분이 으쓱(?)할 법도 한데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꾸 움츠러든다. 그저 별 뜻 없는 지나가는 말을 나는 집에와서 곱씹는다. 속 좁고 못나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저 그 말의 속뜻이 무엇인지 가려내고 싶어진다. 정답은 그들만이 아는 건데.


결혼을 하고 보니, '젊어보인다'는 말은 더이상 전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외모 때문에 결혼 전 부터도 늘 어려보인다는 소리를 듣곤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말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결혼 전에는 그런 말에 단순한 기쁨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 '그 나이로 안 보인다'는 말 속에는 나를 향한 호감이 담겨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남녀 불문, 말투나 눈빛만 봐도 나를 끌어당기려는건 쉽게 알 수 있다.


"어머, 그 나이 대로 안 보여요...젊어 보이는데...(또는 어려 보이는데...)"


이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나를 유심히 살펴보며 조용히 말 끝을 흐린다. 눈빛에는 의아함도 비친다. 필시 내게는 일찍 결혼하게 된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면서도 예의상 섣불리 더 궁금해하기를 주저하는 그런 모습들이다.


유튜브를 구경하다 보면 가끔 살림 유튜버들이 알고리즘으로 추천되어 나오는데, 영상 속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나이가 많든 적든 부럽게 바라보게되는 젊은 모습이다.


전업주부이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고, 그들의 살림솜씨는 우리 어머니 세대들도 배우고 싶다고 할 정도로 창의적이고, 똑소리가 난다. 거실이 훤한 넓은 집에 살면서, 그 집의 작은 부분까지도 관심을 갖고 예쁘게 꾸미고, 혼자 있을 때도 시간을 들여 직접 요리해서 점심을 챙겨 먹는다. 살림을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아이템들도 어디서 그렇게 알아내는지 주방용품도 예사롭지 않다. 젊지만 특유의 조급함이 없고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젊은 기혼자라는 것 하나만 놓고 보면 입장은 비슷하다. 하지만 감히 짐작해 보건데, 살림 유튜버 같은 삶을 사는 젊은 기혼자들에게는 굳이 "어머, 젊어보이는데..."와 같은 이야기나 의외라는 반응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들에게 그런 삶은 나이와 상관없이 이미 너무 잘 어울리니 말이다.


집 안에서 어떻게 살든지간에, 생각해보니 나는 겉으로 보기에 그다지 결혼한 여자처럼 보이지 않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하기 십상이다. '애기가 애기를 낳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 지경까지 가지 않으려면 어느정도는 겉모습에 신경을 쓸 필요도 있지 않았었나 싶기도 하다.


옷차림을 떠나서,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나는 남편과 맞춘 결혼 반지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서른 중반이 넘고 보니 지금 내 결혼 반지가 왜 이렇게 밋밋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는데, 나를 맡은 디자이너가 내년 3월에 결혼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녀의 손가락에 눈길이 갔는데 결혼한지 10년 된 나보다 더 도톰하고 화려한 웨딩 밴드를 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10년 동안 살면서 남들이 무슨 결혼 반지를 끼고 다니는지 관심도 없던 나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게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에 남편 친구 결혼식장에 동행했을 때도 잘 세탁한 깔끔한 원피스에 브랜드 없는 기저귀 가방을 들고 결혼식장에 갔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참 어지간히 남 시선에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새삼 느낀다.


그때 결혼식장에서 만난 남편 친구의 여자친구가 나를 보고 했던 첫 마디가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어릴 때 결혼했다구요? 정말 어려보인다...(위아래로 훑어보기)" 이거였다. 그 후, 그녀는 예식장에서 줄곧 내게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반말을 찍찍 해댔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하게 존대를 하였다. 나중에 듣기로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다고 한다.


멋진 결혼 반지도, 남들 다 알아보는 명품 아이템도 없이, 거실이 훤하지도 않은 집에서 10년간 결혼 생활 하면서 손은 폭삭 늙었지만 이상하게 얼굴은 동안으로 남아있다. 아마 남들 시선에 무관심하고, 남편이랑 애들 둘이랑 별 것도 아닌 일에 자꾸 웃으면서 살다보니 그럴지도 모른다며 다독여본다.


아무리 그래도 이 훈장같은 동안 외모 때문에 알게모르게 상처받는 일이 자꾸 생기니 큰일이다. 결혼했다는 것만 밝히면 사람들이 그렇게들 "왜 그리 일찍 결혼했냐, 어려보인다, 남편은 무슨 일하냐, 어디 사냐" 같은 것들을 물어보는지. 심지어는 남편 월급에서 빠지는 '건강보험료가 얼마냐'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그걸 알면 소득 수준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준비 없이 한 결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내게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걸 직접적으로 물어볼 용기를 가진 사람은 몇 없었다.


요즘은 집 한 채는 있어야 결혼을 하니까, 나는 준비 없이 결혼한게 맞다. 그러나 그것이 내 결혼 생활이 명예롭지 못하다는 뜻을 가지게 할 수는 없다. 그런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요즘에는, 일찍 결혼했어도 어려움은 없이 사는 여자 처럼 보이도록 위장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애정하는 유튜브에 '웨딩 밴드 추천'이라고만 검색해도 기깔나는 반지들이 넘쳐나는데 그 중에 하나만 새로 맞춰 달라고 해볼까? 그런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내 성미에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주말 오후, 녹차 한 잔을 우리며 영어 스피킹 시험을 준비하려고 MP3 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블루투스 이어폰이 방전이 되면서 공부가 중단됐다.


"앗!! 모야!! 갑자기 꺼졌어!!" 하고 당황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아, 그 싸구려 이어폰 못쓰겠다. 당신 혹시 아이팟 안 써볼래? 내가 사주면 써볼거지?"


"뭐? 그런건 아이패드에 자동으로 연결되고 바로바로 충전되나? 아... 그럴 돈 있으면 우리 차라리 저축을 더 하자... 집에 블루투스 이어폰 있는데 뭘 또 사? 어차피 나 노트북에 연결해서 쓰면 방전 될 일 없어. 오히려 더 편해"


"당신, 지금 돈 아깝다고 그래? 당신 같은 사람한테는 아까운게 어딨어? 내가 보기에 당신한테는 아이팟이 더 잘 어울려. 난 마음 정했으니까 그냥 아이팟 하나 사자"


"나 아이팟 진짜 필요 없어. 쓸데없는 데 돈 쓰지마. 당신 쓰고싶은거면 그냥 사서 당신 써"


"헐... 30만원이나 하네"


"여보 그럴  있으면  (?) 보태서 차라리 반지를 하나 사주라. 아니  이제 서른 중반넘어가잖아.  결혼반지…이제 보니 이 나이에 좀 얇은 것 같기도 하고…  크고 두껍고 그런거 있잖아 …딱 봐도 큰거"


"여보 우리 결혼반지 다른거 있잖아. 다이아몬드 있는거 그거 껴 그럼"


"여보, 그건 프로포즈 링이야, 프러포즈 링. 남자가 여자한테 좋은 식당 가서 결혼해달라고 할 때 반지 케이스 뚜껑 열고 놀래켜주면서 짜잔~하는 그거 있지? 당신이 말한 반지는 디자인이 딱 그래... 그리고 그건 위로 툭 튀어나와있어서 그거 끼고 살림 절대 불가야. 그런거 말고 웨딩 밴드라고 해서 .... (웨딩 밴드 인기 브랜드 및 디자인 설명....)...유튜브에 웨딩밴드 추천이라고 검색하면...(웨딩밴드 지식 주입)"


"아...나 지금 30만원짜리 아이팟 가격보고 놀랐는데, 갑자기 300만원 400만원짜리 반지 알아볼려니까 숨이 더 안 쉬어지네..."


"그래? 숨 쉬어. 숨 쉬어. 그냥 침대에 누워있어."


결혼한지 10년이 되어서도 프러포즈 링이며, 웨딩 밴드며...하는 디테일과 인기 브랜드, 최신 디자인들을 알고는 있지만 절대 사지는 않는 절제력 가진 나란 여자. 여자 마음 1 모르는 센스 없는 남편을 절대 타박하지 않고 쉬게 해주는 나란 여자. 절대 어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놈에 '준비된 결혼', '준비된 결혼'. 나는 이상하게  말이 듣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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