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생 Nov 06. 2021

네.결혼은 힘들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시대의 노처녀일지도 몰라

결혼이 부담스럽고, 아이는 더더욱 낳기 싫은 세상에서 나는 둘 다 해버렸다. 고작 스물 다섯에 스타트를 끊은 것이다. 그래서 결혼 후부터 내가 만난 사람들은 거의 모두 나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젊어 보이는데…결혼했다구요?

 네? 아이가 두 명이라고요? 왜 그렇게 빨리 하셨어요...?”


누군가와 처음 인사를 나누고 자기 소개를 할 일이 있는 날이면, 저 말은 거의 무조건 들었던 것 같다. 때때로 그들의 얼굴은 놀라움을 넘어서서 경악스러워보이기까지 했다.


아마 예전에는 나이 서른 중반의 여자가 결혼을 ‘안’했다고 한다면 이런 말을 흔하게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 결혼 안 했어요?

 아이고...어쩌나...이제 결혼하면 애는 언제 낳아요...?"


시대를 '과거'로, 청자를 '노처녀'로 생각해서 조금만 바꿔보면 내가 결혼하고부터 자주 듣는 말과 묘하게 맥락이 비슷하다.


어쩌면 내가 일찍 결혼했고, 행색이 그리 풍족해 보이지 않아서 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해도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소리를 하니, 이제는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기준이 너무 확고하고, 조금 무례하다는 생각도 든다.


옛날 세대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고독’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서로 끈끈하게 무리지어 살기 위해 결혼은 필수였고, 좀 없이 살아도 부부가 같이 근면 성실하게 알뜰하게 살면서 자식을 낳는 일은 당연했다. 오히려 노처녀, 노총각들은 개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든지, 결혼을 못하면 어딘가 미숙한 취급을 받았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를 봤다. 그녀는 약사로 일하다가 현재 은퇴했다. 할머니는 젊었을 적, 결혼하기 싫어서 '남편 없어도 내 능력으로 충분하니 혼자 살게 해달라'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쫓기며 몽둥이로 두드려 맞았다고 말했다. 그 때 그 노처녀는 현재 멋지고 자유로운 싱글 노년의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사람들은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며 그녀에게 환호를 보냈다.


혼자 산다는 사실은 더이상 남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릴 주제가 못 된다. 이제 우리 세대는 예측할 수 없는 삶에 대한 해답으로 '결혼'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느 정도 희생이 강요되는 결혼에 매몰되느니 오히려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오히려 결혼은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을 속박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안 맞는 사람과 불행하게 함께 사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다는 당당한 돌싱족도 많아졌다. 허리띠 졸라 매며 사는 부모님을 보면서, 낳아서 고생시킬 바에야 자식도 차라리 안 낳는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점점 떨어지는 출산률이 그 증거다. 인류도 점점 진화한다더니 우리가 벌써 이만큼이나 온 것이다. 날이 갈수록 더욱 현명해지고 있는게 분명하다.


갈수록 결혼은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안정된 집과 오랜 커리어를 쌓은 상태에서 시작될 것이며, 아이에게 풍족한 지원이 가능할 때 자녀도 더 낳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훨씬 더 편리하고 아름다워지고 풍족해지겠지. 싱글은 싱글대로 자유롭고 행복할 것이고, 기혼자들은 나름의 풍족하며 안정된 가정을 누릴 것이다. 세상살이는 앞으로 그렇게 나아져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결혼을 하던 당시에 안정된 집도, 커리어도 없었다. 고작 2년 남짓한 직장생활이 커리어의 끝이었다. 그런데도 싱글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은게 죄라면 죄일 수 있겠다. 사람들은 마음껏 자유롭지도, 풍족하지도 않은 불안정한 지대에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게 여기는 듯 하다. 그동안 나를 만났던 사람들이 무엇을 걱정했는지 이해는 된다. 어려보이는 외모 너머로 그들은 대책없는 결혼을 보았을 수도 있다.


나는 처음 결혼을 결심하면서 남편과 함께 고생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 호강시켜주겠다 잘 해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는 기간동안 사랑이라는 감정 너머로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힘든 일이든지 같이 헤쳐나갈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 같은게 생겼다. 그동안 없던 에너지였다. 우리는 공교롭게도(?) 서로 같은 에너지를 느꼈고, 그런 모습을 보고 결혼을 하게 됐다.


남편은 결혼 하자마자 시도때도 없이 밤샘근무를 하는 직장에 입사해서 5년을 버텼다. 남편이 일 때문에 출장을 가면 주말마다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나는 아기와 함께 꿋꿋이 생활했다. 어차피 고생하기로 각오하고 한 결혼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했고 5년 후 남편은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했다. 집도 생겼다. 차도 생겼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도 직장에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많이 바쁘고 해야 할 일과 책임질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결혼은 힘든게 맞다. 그러나 누구나 바쁘게 살며 책임질 것이 있는 삶이 가치있는 삶이라고 믿는다. 결혼을 하든 안하든. 삶이 가져다 주는 예측하기 힘든 불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한 가지 좋은건 그 불안을 함께 이겨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결혼해서 힘들겠어요.' 라고 측은하게 이야기를 건넨다면 나는 미리서부터 자백한다.


"네, 역시 결혼 생활은 힘들어요. 일찍 결혼해서 젊어서부터 고생을 빨리 시작했네요"


대답은 그렇게 하더라도, 나는 이 자유롭지 못하고 고생스런 결혼 생활을 사랑한다. 이런 삶이 시작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 이유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힘들다고만 이야기하고 말 뿐이다. (아마 내가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라 그럴수도 있다)


그 시절 골드미스를 지금은 알고 그때는 몰랐듯이, 그저 이 시절의 젊은 유부녀를 마치 그 시절 노처녀인 듯 너무 안타깝게 보지 말아 주시기만 바랄 뿐. 싱글과 기혼을 구분지을 필요 없이 각자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삶이 건강한 삶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