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을 넘어

<그래서 썼다>

by 난새
나는 아팠고, 그래서 썼다.

이 짧은 문장은 내 고통의 순간이었지만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시작이다. 예상치 못한 병이 내 몸에 찾아왔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처음에는 외부에서 찾으려 애썼다. 억울했다.


이건 내가 운전을 잘못해서 발생한 교통사고도, 며칠 동안 연거푸 술을 마셔서 나의 간이 망가진 것도, 줄곧 담배를 피워서 나의 폐가 손상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부주의로 생긴 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최근에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면서 일하셨나요" "음, 요즘 같은 시대에 영양실조는 아니실 테고요"

나는 회사원이라는 답 외에, 연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장 입원하시죠" 이렇게 말씀하시며, 모니터에 알 수 없는 기록을 작성하셨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물어볼 수 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스트레스.

그렇지만 이 원인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저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냥 주변 사람들에게 동의와 허락을 구하며, 이 고통이 나의 탓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던 것만 같았다.


불길 같은 통증, 삶을 되돌아보았다.

피부가 붉게 물들고, 그 위에 크고 작은 수포들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니 셀 수가 없었다. 마치 불길이 살을 태우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점점 더 넓은 범위로 퍼져나갔다. '통증의 왕'이라 불리는 이 병의 위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필력이 부족한 나는 이 극심한 고통을 온전히 글로 담아낼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사를 맞고 소독해야 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이상하게도 나의 마음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어가듯, 나의 내면 또한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나는 결국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로 돌리며 '내가 약했구나' 하고 자책하고 있었다. 약해진 건 분명 나 자신이었는데, 나는 자꾸만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외부와 나를 차단하려고만 했다. 그저 외부의 시선과 판단으로부터 나를 숨기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경험은 나에게 분명한 다짐을 안겨주었다. 나의 상처를 보며 우울해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술자리 안줏거리처럼 내 고통을 과장하며, 이것도 이겨냈다고 자랑처럼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불쌍한 사람'으로 치부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이 경험이 삶의 변화를 위한 강력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내 마음을 쓰기로 했다.


고통 끝에 찾아온 깨달음, 그리고 새로운 시작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나는 밖으로 나가면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퇴사를 하든, 이직을 하든, 운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했다. 무언가를 내려놓으면, 반드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썼다.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서 처음으로 브런치에서 '작가'가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고, 나의 고통을 쓰는 과정은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냥 단순히 나의 아픔만 기록한 게 아니다. 고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나약했던 내면을 직면하며, 결국은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나의 글쓰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변화를 위한 용기를 줄 수 있기를 작게나마 바란다. 우리가 마주하는 어려움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 그냥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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