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장애인 학대는 어디에나 있다 - by. 은아
2021년 9월 초. 토요일 오후 8시.
언니와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자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집 안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이제 집에는 나와 정아 단 둘 뿐.
정아가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옷을 갈아 입힌 뒤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정아는 복잡한 내 머릿속도 모르고 한결 기분이 나아졌는지 웃음을 지었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고, 아빠도 엄마랑 같이 있을 거야’라는 얘기에도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곁에 있던 엄마를 바꿔주었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기운이 없는 듯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다다른 대화의 주제는 결국 정아였다.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도 엄마는 정아가 잘 지내는지, 당분간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를 걱정했다.
엄마는 입원 중. 아빠는 그런 엄마 곁을 떠날 수 없다. 근처에 사는 언니는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다. 나는 내일 저녁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서울로 돌아가면 당장 정아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은 시간은 24시간.
24시간 안에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병원에 있는 엄마와 집에 있는 나는 전화기 너머로 열띤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간병인을 구해 엄마를 간호하도록 하고, 아빠가 집으로 돌아와 정아와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역 내의 모든 업체에 연락을 하고 예약을 해두었지만 간병인을 언제 구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내일까지 간병인이 구해지지 않을 확률이 높아 다른 방법을 준비해야 했다.
언니가 매일 저녁 집으로 와서 다음날 아침까지 정아랑 지내고, 정아를 주간보호센터에 보내주며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언니가 여러모로 힘들겠지만 며칠만 고생하면… 간병인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정아가 다니는 주간보호센터가 코로나19로 인해 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가 점차 격상하면서 정아가 다니고 있던 주간보호센터는 일주일에 2일만 등원하도록 했고, 심지어 오전 9시에 등원해 오전 11시 30분에 하원을 시켰다. 즉 당장 월요일이 되면 정아는 갈 곳이 없고, 화요일에는 센터에 가더라도 낮 12시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었다.
주간보호센터가 일주일에 이틀,
그것도 오전 두세 시간만 서비스를 제공한다니.
그럼 가족들이 돌볼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무책임한 운영 행태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주간보호센터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꼭 필요한, 필수적인 시설이 아닌가? 심지어 정아를 비롯해 센터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우선적으로 백신 접종을 실시해 대부분 백신 접종을 완료한 상태였다.
전화기에 대고 분통을 터트리는 나에게 엄마는 자신도 센터의 운영 방식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다닐 수 있는 데가 많지 않으니 어떻게 하겠니.”
가족들이 돌보는 것도 어렵고, 주간보호센터도 이용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지역 내 장애인부모회에서 운영하는 긴급돌봄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긴급돌봄지원 서비스는 보호자의 입원과 같은 긴급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최대 15일간 주간 및 야간 동안의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일요일 저녁에 정아를 서비스 기관으로 데려다주면 그곳의 담당자들이 며칠간 정아를 보살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큰 난관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였다.
엄마는 다른 사람의 손에 정아를 맡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정아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두려운 것은
정아가 학대를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정아가 이전에 다니던 주간보호센터에서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한 적이 있다.
언어 표현이 불가능한 중증 발달장애인이기에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자주 멍이 들어왔던 일, 센터의 선생님들이 정아가 힘들게 한다며 불평을 늘어놓던 일, 정아가 자주 울며 센터를 가기 싫어했던 일들로 의심을 할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센터로 옮기고 나서 정아가 우는 일은 없어졌다.
그렇기에 엄마의 기관에 대한 불신과 정아에 대한 염려는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나도 정아가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단기적으로도 가족과 떨어져 살기 어렵다면,
나중에 정말로 부모님이 안 계시면 어떻게 하려는 거지?
나 아니면 언니가 정아를 돌보는 일에 매달려야 하나?
덜컥 겁이 나 일부러 강한 목소리를 냈다.
“엄마, 정아도 다 큰 성인이야. 가족들이랑 떨어져서 독립적인 생활을 해보는 것도 경험해 봐야지. 나도 휴가 내기 어렵고, 언니는 아기들까지 있는데 정아도 돌보라고 할 거야? 언니는 무슨 죄야. 그리고 정아가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분들이 전문가들이니 잘 대처를 하겠지. 그게 그분들이 해야 하는 일이고.”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 기관에 있는 분들이 정말 전문가들인지, 정아가 그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불쑥 올라오는 걱정에 하루 더 휴가를 내고 정아랑 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다.
이번 한 번이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부모님이 없는 상황은 더 빈번히 일어날 것이고, 정아의 돌봄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엄마, 아빠가 언제까지나 우리 형제들을 의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언니도 언니만의 삶이 있고, 나도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 정아의 행복을 바라지만,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나’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장애형제를 돌보는 비장애 형제’
라는 정체성이 전부인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강하게 엄마에게 얘기했다.
“기관에 맡기는 게 최선이야. 내일 연락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짧은 정적이 흐르고, 망설이는 엄마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다쳐서 입원한 상태에서도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해야 하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다.
일단 푹 쉬시라고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2020년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재가 발달장애인은 22만 명(2017년 기준),
시설 거주 발달장애인은 2.3만 명으로,
전체 발달장애인의 90%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장애인의 주 돌봄자인 가족이 장애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될 뿐, 국가에서 관리하는 통계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저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찾고 싶습니다.
비장애형제 여러분이 가진 고민을 나는(It's about me!)에게 들려주세요.
- nanun.future@gmail.com
Written by. 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