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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Jan 31. 2022

한 번쯤은 세상이 오빠를 위해 맞춰줄 수 있잖아요

비장애형제 '지나'의 이야기① by 은아, 혜연

나의 삶을 지키면서 장애형제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한 장애형제와의 미래. 
나 혼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 텐데.
다른 비장애형제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 나가고 있을까?
비장애형제모임 나는(It's about me!)에서는 
다른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2022년 1월, 새해의 첫 인터뷰는 지나 님(42)과 함께 했습니다. 


지나 님에게는 이란성쌍둥이인 동갑내기 오빠가 있고, 오빠는 중증 발달장애(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오빠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지나 님은 8년 전에 원 가정에서 독립했습니다. 


서로를 위해 그리고 비장애형제 자신을 위해 원 가정에서 독립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는 지나 님은, 독립했지만 매주 본가에 가고 있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보호자이지만 제3자인 비장애형제


(지나) 6년 전에 오빠가 망막박리가 와서 눈 수술을 했거든요. 지금은 한쪽은 실명되었고, 다른 한쪽은 정확히 얼마큼 보이는지 몰라요. 오빠 말로는 잘 보인대요. 그런데 눈을 자세히 못 보게 해요. 손도 못 대게 하고. 그래서 그냥 계속 옆에서 관찰해보는 거죠. 어쨌든 오빠의 수술 이후로는 본가에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가고 있어요. 


(은아) 오빠의 수술로 인해 가족 내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지나) 오빠의 수술을 계기로 제가 집안에서 보호자 입장이 되었어요.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니까 병원에서 간단한 일 처리 정도도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제가 뭔가 주도를 해야 하는 보호자인데 형제자매는 서류 상으로는 제3자나 마찬가지예요. 서류 처리를 할 때 굉장히 불편해요. 내 자식이나 부모가 아닌 이상은 그냥 서류 상에서 남인 거죠. 그런 불편함이 많아요.


지금 제일 큰 문제는 부모님이 나이를 드신다는 거예요. 오빠랑 둘이 남는 것도 언제나 가능성이 있지만, 그전에 부모님의 노환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부모님이나 오빠가 때 되면 알아서 곱게 나보다 먼저 죽을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오십 대가 되기 전에 가족과 가까운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본가로 들어가서 제가 모든 걸 맡을 생각은 없지만요.


(은아) 미래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결심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떠신가요?


(지나) 지금은 마음이 많이 정리가 됐어요. 예전에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면 답답하고 막막했거든요. 사실 '부모님이 늙고 아프면 어떻게 할지'는 장애인 형제자매가 없다고 하더라도 제 또래들의 화두 중 하나예요. 특히 결혼 안 한 딸이 있으면 딸의 몫이 되는 측면도 있단 말이죠. 맡겨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러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아프면 어떡하지? 경제적인 건 어떻게 해결하지? 언젠가 오빠랑 둘이 남을 텐데 그땐 어떻게 살아가지?' 이런 고민들에 휩싸여 있었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사십 대가 되니까 생각이 좀 달라지더라고요. 이제는 하고 싶은 것도 웬만큼 다 한 것 같고, 본가와 떨어져 살아서 애틋해서 일수도 있어요. 또 오빠의 수술을 겪으면서 가족에 대한 마음이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은아) 오빠가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고, 회복하도록 돕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네요. 가족에 대한 마음이 어떻게 정리가 되었나요?


(지나) 오빠가 6개월에 걸쳐서 1, 2차 수술을 받았거든요. 반년 간 이어진 고난과 고비를 엄마와 제가 함께 헤쳐나갔어요. 수술 이후에도 관리가 무척 중요한데 안약을 넣는 간단한 일도, 망막박리 수술 후에 취해야 하는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도 전쟁 같았어요.


아버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오빠를 힘으로 누르려고 하는 아버지였거든요. 오빠가 눈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오빠에게 두 번 다시 손대지 말라."라고 얘기했어요. 제 입으로 아버지에게 그 말을 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더라고요.


또 기억이 나는 건 오빠가 중복장애를 갖게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으니 그 당시의 저는 항상 머리 한구석에서 심한 압박감을 받고 있는 상태였어요. 그때 엄마가 처음으로 “네가 안쓰럽고 불쌍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저도 가족에 대한 일말의 미움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엄마가 어머니이기 이전에 내 전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세상에서 오빠를 제일 잘 알고 제일 잘 대처하면서도 나한테 힘이 될 수 있는 건 나한테 엄마밖에 없어요. 그런 엄마가 나보다 먼저 죽을 거라는 게 문제예요.


(은아) 어머니의 "네가 안쓰럽고 불쌍하다."라는 말로 아마도 그동안 지나 님 마음 안에 있었던 가족 안에서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너무 공감이 돼요. 그럼 지나 님이 그리고 있는 미래에 대해 가족들과 이야기 나눠본 적 있으신가요?


(지나) 엄마 입장에서 이제는 제가 보호자라는 생각이 드셨나 봐요. 얼마 전에 “내가 죽고 나서도 시설에는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사람을 써라.”는 말을 처음으로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왜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냐.'라고 했더니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냥 지금 미리 얘기를 해놓는대요.


그 당시에 구체적으로 얘기하기에는 복잡한 감정이 이만큼 올라와서 그냥 그러고 말았어요. 그 이후에도 아직 그런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고요. 저 혼자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만 하고 있죠.




장애인연금을 1년째 신청하지 못하고 있어요


(은아) 미래에 지나 님과 오빠가 함께 할 상황을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지나) 예전에 참여했던 나는(It's about me!) 모임에서 장애인연금 이야기가 나와서 확인해 보니 저희 오빠가 연금을 못 받고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제가 잘 모르기도 했고 오빠가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으니까, 연금을 못 받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부모님에게 집이 있어도 장애인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해요. 그걸 알고 신청하려고 작년 일 년간 애를 썼는데 아직도 신청을 못하고 있어요.


(은아) 신청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지나) 장애인 연금을 신청하려면 장애 등급을 재판정받아야 되는데, 지적 장애의 경우에는 임상심리평가 보고서를 토대로 진단서를 쓰고, 그걸 바탕으로 장애 등급을 판단해요. 그 과정이 문제예요. 임상심리평가는 병원에서 최소 두세 시간의 검사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 동안 오빠가 병원에 있을 수가 없어요. 


오빠가 눈 수술 이후로 병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거든요. 병원 가는 것도 너무 싫어하고, 2차 수술할 때는 병원에 대한 거부가 극심해서 계속 진정제를 놓을 정도였어요. 그 이후로 눈 정기검진도 못하고 있어요. 진단서를 받을 수 없으니 장애 등급을 재판정받을 수도 없고, 그래서 연금 관련 서류를 제출도 못 하고 있죠.


오빠한테 얘기도 많이 해봤어요. 국가에서 뭘 준대, 하면서 어르고 달래보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 오빠도 어린애가 아니잖아요. 병원에 힘으로 끌고 갈 수도 없고요. 오빠는 그냥 자기는 이대로 죽겠대요. 이대로 살다 죽겠대.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온 건지.(웃음)


(은아)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다니까요.(웃음) 장애 등급을 꼭 재판정받아야 하는 걸까요? 발달장애가 나이가 든다고 해서 크게 변화가 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지나) 예전에 받은 장애 등급은 인정이 안 된대요. 장애 등급 재판정이 제외되는 기준(주 1)이 몇 가지 있어요. 그런데 지적장애는 그 기준에 해당이 안 되더라고요. 거기서도 약간 좀 화가 났죠. 이 사람들은 지적장애나 발달장애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싶어서요. 좀 무신경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오빠가 옛날보다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사회적 시선으로 따지면 여전히 중증 장애인이거든요. 발달장애는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질 수 있는 병도 아니고, 수술이든 뭐든 해서 상태가 나아질 수도 있는 게 아닌데. 다시 등급을 받는 게 필요한 일인가 싶어요. 


어쨌든 장애 등급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해서 제가 작년에 주민센터국민연금공단에 엄청 문의를 했어요. 주민센터에 '예전 판정으로 안 되냐'라고 물어봤더니 안 된대요. 그래서 공단 홈페이지에 오빠의 상태와 이런 사정에 대해 글을 썼죠. 공단 지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사정을 얘기를 했더니 그럼 의사한테 환자가 거부해서 심리평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진단서를 받아오래요.


그래서 또 병원에 갔죠. 열심히 사정을 설명했지만 환자도 안 보고 의사가 진단서를 써줄 리가 없잖아요. 다시 원점이 된 거죠. 다른 동네 병원도 알아봤어요. 기존에 다니던 대학병원이 아니라 동네 병원이면 그냥 산책 가듯 나와서 잠깐 가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병원에 세 번을 방문해야 된다는 거예요. 맨 처음에 환자가 와서 의사가 보고, 두 번째에 검사를 하고, 세 번째에 결과를 듣고. 그래서 "첫 번째 두 번째를 합쳐줄 수 없느냐,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 번 데리고 오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랬더니 안 된대요. 


항상 애가 닳는 건 나지. 그 사람들은 안 된다고만 하면 그만이죠. 오빠랑 관련된 일을 할 때 무엇이든 바로 탁탁 진행이 되지 않아요. 감정 소모가 많고 힘이 들어요. 작년 내내 그러고 있었던 거예요. 




안 된다, 모른다, 다른 데 가서 알아봐라


(은아)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지나 님. 진단서를 받을 수 없어서 공단에 문의를 한 상황인데 다시 그 상황에 대한 진단서를 받아오라고 하는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네요.


(지나) 답답하죠. 그런 일들을 겪고 반년만에 다시 공단 지사에 연락을 했어요. "아직도 안 냈냐"라고 하면서 저를 기억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공단에서 직접 나오시면 안 되겠냐" 물어봤어요. 부정수급자 관련 문제도 있다는 건 알겠으니 공단에서 나와서 직접 보시면 안 되냐고. 그런데 직접 나와서 보는 것도 몇 가지 조건이 있고, 거기에 또 지적장애는 해당되지 않는대요.


그러면 '개인으로 알아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 혹시 가정에 방문해서 심리 평가를 해주는 곳을 아시는 데가 있냐'라고 물어봤어요. 모른대요. 동네 병원에도 물어봤는데 '정신건강센터에 물어보라'는 거예요. 그런데 또 거기서도 안 된대요.


얼마 전에는 국민신문고까지 갔어요. 보건복지부 쪽으로 문의를 했죠. 지금까지의 상황을 구구절절 적어서 병원에 가지 못할 때 방문 심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지난주에 답이 왔는데 예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어요. 


국민신문고 처리결과(답변 내용)

○ 불편함이 있으시겠지만 국고로 지원하는 급여를 장애정도에 맞게 꼭 필요한 분께 지원하기 위한 절차이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장애정도 재심사는 관할 국민연금공단에서 진행하며, 상세 사항은 해당 국민연금공단에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나) 다 모른대요.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 대체 어떡하지? 그놈의 연금 기껏해야 한 달에 20만 원일 텐데. 기분도 상하고 할 만큼 다했으니 그만하자는 생각이 들다가도, 제가 오빠를 위해서 20만 원 적금을 든다는 건 또 큰 금액인 거잖아요. 


그리고 얼마가 됐든 뭐가 됐든 간에 오빠 이름으로 이 사회가 주는 뭔가를 받도록 해주고 싶은 거예요. 그게 이렇게 힘이 들어야만 하는 일일까요? 


남들은 제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아니, 남들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외삼촌이 엄마랑 이야기하더니 저한테 전화를 했는데요. “요즘 장애 등급 때문에 힘들다며? 오빠를 잘 달래서 데려가 봐.” 이러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냐고요. 그게 그렇게 쉽게 됐으면 내가 이 모든 일들을 하고 있었겠냐고요. 


(은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지나 님. 너무 답답한 상황이네요.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애인 연금이 신청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장애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하고요. 특히 관련 기관이라면 다양한 장애 특성을 고려한 방법들을 함께 고민해야 할 텐데 '모른다, 안된다, 다른 곳에 문의해라.'는 답변만 하고 있다니 참 씁쓸하네요.


(지나) 이렇게 동분서주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늘 세상에 맞춰 왔던 것 같아요. 늘 이해해 왔어요. 제도든, 사회든, 우리 가족을 이해하는 사람이든 이해 못 하는 사람이든, 늘 이해했죠. 제가 친구에게 이렇게 장애인연금 관련해서 고생한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가 화를 내는 거예요. 막상 저는 화가 안 나더라고요. 무슨 일이든 항상 받아들여 와서 그런 것 같아요. 항상. 죄인도 아닌데. 


그런데 왜 난 항상 이해할 준비, 고개 숙일 준비가 되어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항상 남들한테 폐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아등바등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폐 좀 끼치면 안 돼? 사람이 어떻게 완벽해. 보통 사람들도 별의별 진상을 다 떨면서 살던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번쯤은 세상이 오빠를 위해서 맞춰줄 수 있잖아요. 우리 오빠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그걸 요구하는 게 나쁜 게 아니잖아요. 늘 소수자의 인권과 권리는 나중으로 밀리는데, 나중에 언제요? 나중은 오지 않더라고요. 나 죽은 다음에 올 수 있겠죠. 그런데 나 죽은 다음에 오면 무슨 소용이에요. 우리 오빠는 지금 살고 있는데. 





오빠의 이름으로
장애인연금을 받는 것,
그게 이렇게 힘든 일이어야만 할까요?

오빠의 수술이라는 고비를 겪으며 비장애형제이자 보호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나님. 오빠를 위해 장애인연금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장애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장애인연금제도로 인해 지난 일 년간을 거절과 좌절 속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전히 다양한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장애 정책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까? 지나님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더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 다음 화에 계속 됩니다.



Written by 은아, 혜연


※ 비장애형제들의 새로운 미래찾기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세요!

<인터뷰 참여 신청> https://forms.gle/jTc5XUc8L8WF3zME9


(주1) 장애등급 재심사 면제 기준
- 2007년 4월 이후 국민연금공단에서 장애 정도 심사를 받아 현재 장애 정도를 받은 경우
- 만 65세 이상
- 국민연금공단에서 와상상태임을 확인 받은 경우
  (뇌병변 또는 지체장애인으로 두 팔과 두 다리가 모두 마비된 경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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