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남쪽으로 약 975km 떨어진 곳,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고려극장”이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의 극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곳을 둘러싼 히든 스토리를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립극장으로,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리는 공연을
카자흐어와 러시아, 한국어로 진행합니다.
2016년에는 한국 전통 문화를 보존·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아카데미 극장’이라는 칭호도 받았죠.
이는 카자흐스탄에서 극장의 전문성과 위상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입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고려극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다민족 국가로,
카자흐스탄 내 다양한 민족들은
서로 교류하고 배우며
카자흐스탄인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각 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고려극장과 같은 문화 기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누르갈리 아르스타노프,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
올해로 창립 93주년을 맞은 고려극장,
그런데 이 극장은 어떻게 중앙아시아 한복판,
카자흐스탄 땅에 세워지게 되었을까요?
고려극장의 뿌리는 “고려인”에 있습니다.
고려인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후손으로,
그 역사는 1860년대,
함경도에 살던 농민과 독립 운동가들이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며
형성된 공동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어 학교를 세우고,
한글 신문과 잡지를 발간했으며,
연예부와 극단 등 다양한 예술 집단도 운영했죠.
그리고 1932년,
이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원동변강조선극장”을 설립하게 됩니다.
이 극장이 바로 오늘날 고려극장의 전신입니다.
고려인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한국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 극장은
단순히 유흥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죠.
한국의 문화와 언어, 예술을 지키고
전승하고자 하는 목적 또한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고려극장이 창설될 당시,
무대에서 반드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상연해야 한다는 원칙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려극장의 첫 정식 상연은
1934년에 시작되었으며,
첫 공연은 연성용의 작품
「장평동의 횃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일본의 지배에 맞선
한국인의 투쟁을 다룬 내용이죠.
같은 해, 「춘향전」도 공연되었습니다.
이후 「춘향전」은 고려극장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게 되죠."
- 니 류보피 고려극장 예술감독
하지만...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게 됩니다.
연해주에 살던 약 17만 2천 명의 고려인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이동했야 했죠.
열차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1937년 8월, 스탈린은 연해주 일대에 살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식적인 이유는, 일본의 밀정들이
고려인 사회에 들어와
암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스파이가 고려인 사회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고,
고려인들 역시 일본의 스파이가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죠.
당시 2차 세계대전을 앞둔 상황에서,
전쟁에 대비한 조치를 세우는 것은
소련 당국의 긴급한 과제였습니다.
연해주 지역에서는 일본인과 고려인을
외형으로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소련 당국은 이들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켜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1937년 말까지,
약 3개월 만에 연해주 일대에 살던
20만 명 가까운 고려인이
한 명도 남김없이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당시 소련 당국이 정한 이주 지역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었습니다."
- 홍웅호,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
고려인 연구자
새로운 땅에 도착한 이후에도,
고려인들은 한국 문화를 잊지 않았습니다.
크즐오르다로 이주한 고려극장은
이곳에서 다시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첫 공연은 1938년 5월 20일,
한 공원에서 펼쳐쳤고,
고려극장 단원들은 이곳에서
한국 전통 노래인 ‘꾀꾀꼴’, ‘화초단가’,
‘사랑가’ 등을 선보였습니다.
고려인 뿐 아니라 러시아인, 카자흐인 등
다양한 민족이 모여
고려극장의 공연을 함께 감상했다고 해요.
고려극장은 전국의 고려인 공동체를 찾아다니며
“순회 공연”도 펼쳤죠.
이를 통해 고려극장은
고려인 공동체를 연결하고,
떨어져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는
한인 공동체의 메신저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고려극장은 지역마다 순회 공연을 많이 다녔어요.
보통 3개월은 연습을 하고,
나머지 3개월은 공연을 다니는 식이었죠.
단원들이 여러 지역을 돌며 공연을 하다 보니,
한 지역의 소식을 다른 지역으로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도 했습니다.
가족이 떨어져 있거나 안타까운 사정이 있을 때는
고려극장 단원들이 그들을 가족처럼 돌봐주었고,
“저 지역에 가보니 너희 가족이 잘 지내고 있더라” 와 같은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죠.
또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도와주기도 했고요.
이렇게 고려극장은 민족애를 실천한
전문 예술 집단이었습니다."
- 김보희 무돌국제한국학연구소 부소장,
고려극장 연구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대한 독립 운동가
홍범도 장군 역시
고려극장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크즐오르다로 강제 이주 당한 후,
홍 장군은 고려극장 단원들의 요청으로
극장에서 함께 일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극장의 연출가 태장춘과
배우 이함덕은 홍 장군을 인터뷰해,
그의 구술을 ‘홍범도 일지’로 기록하기도 했죠.
이후 이를 바탕으로, 홍범도 장군을 다룬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바로 세우고,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면
온 백성들을 꿈에서 깨어 일어나게 해
함께 항일 투쟁에 나서야 하오."
- <사령관 홍범도> 중
"사는 곳과 상관없이 모든 한국인이
공통으로 우러르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모두 그 영웅들을 존경하고 공경합니다.
왜일까요?
바로 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독립은 어느 민족에게나 매우 중요한 일이죠.
그래서 홍범도 장군은,
어디에 살든 모든 한국인의 영웅으로 여겨집니다."
- 니 류보피 고려극장 예술감독
이처럼 고려인들에게 고려극장은
문화적 구심점이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중요한 장소로서의 기능도 수행했습니다.
니 류보피 고려극장 예술감독은,
고려극장이 단순히 고려인에게만
의미 있는 곳이 아니라
전 세계 한국인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한국에게도 고려극장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
고려극장은 고향을 떠나 9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차분히 발전하며, 차분히 자기 문화를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 고려인들의 조국이 된
카자흐스탄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이것은 한국과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지표가 됩니다.
한국 문화와 예술이 얼마나 강하고,
다채롭고, 픙부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되죠.
한국 본토 밖에 있더라도,
한국의 민족 예술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성공적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에서도 한국에서도
문화의 불가분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변형된 모습으로 발전하더라도,
한국적 근본을 지켜 나가는
하나의 가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 또한 하나의 중요한 문화적 현상입니다.”
- 니 류보피 고려극장 예술감독
“카자흐스탄은 다언어, 다민족 사회이며,
우리의 힘은 바로 이 다양성에서 나옵니다.
한인, 카자흐인, 그리고 다른 여러 민족이
모두 하나의 집, 즉, 카자흐스탄의 구성원입니다.
우리는 이 집을 함께 만들어 가고, 서로를 도우며,
경제를 함께 발전시켜 나갑니다.
특히 고려인은
한국과 카자흐스탄 두 나라를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다리”로,
이들을 통해 앞으로
양국 관계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누르갈리 아르스타노프,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
오늘날 고려극장은
한국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여전히 활발히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먼 이국 땅에서도 한국의 전통을 지키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고려극장의 이야기는
한국 문화의 힘과 생명력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