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페루] 페루의 배구 영웅, 박만복을 아시나요?

by 나누리

페루…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1만 6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 곳…

반세기 전, 한 한국인이 이 먼 나라로 향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 만난 이들에게 배구를 가르쳤고,

결국 두 나라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었죠.

그의 이름은 박만복,

페루 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고 박만복 감독 (사진 제공: 김완중)


1936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박만복 감독은

속초중학교 재학 때부터 배구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인창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현 경희대학교 약학 대학의 전신인

동양의학대 약학과에 진학하죠.

하지만 그의 진짜 열정은 체육관에 있었습니다.

졸업 후 삼정약국을 개업해 약사의 길도

잠시 걷게 되지만

결국 배구 지도자의 길로 다시 방향을 틀게 되죠.


국세청, 대한항공, 선경합성, 한양대에서

감독 활동을 하게 된 박만복 감독은

이후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감독을 맡아

1973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회 여자배구월드컵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박만복 감독을

눈여겨 본 페루배구협회장에 의해

1974년, 페루 여자 배구 대표팀 감독으로

스카우트됩니다.

그렇게 1974년,

박만복 감독은 한국 정 반대에 위치한

페루라는 나라로 떠나게 되죠.


당시 페루 여자 배구 대표팀은

아키라 카토 감독의 지도 아래,

좋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만복 감독이 부임한 이후,

페루 여자 국가 대표팀은

훨씬 더 눈에 띄는 성적 향상을 보여주기 시작하죠.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이들이 그의 훈련 방식을

“규율”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합니다 .


당시 그의 밑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선수들은

박만복 감독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88년 서울 올림픽 배구 은메달리스트, 나탈리아 말라가


“한 번은 저희가 원정 훈련을 나가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어요.

박 감독님이 갑자기 “방 검사”라며

우리 방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저희는 "뭘 검사한다는 거지?"라고 생각했죠.

그 때 우리 방은 엉망이었어요.

선수들의 옷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신발은 저 쪽에, 옷가방은 열려 있고,

호텔 수건은 곳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걸 본 감독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왜 정리 정돈을 하지 않니?

머릿속이 이렇게 어지러우면

생각도 정리가 안 되는 거야.

질서 있게 살아야 해.”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이셨어요.

“너희는 그냥 개인이 아니야.

네 등에 ‘나탈리아 말라가’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니잖아.

세상은 나탈리아 말라가를 몰라.

너희의 유니폼엔 ‘페루’라고 적혀 있어.

네가 하는 모든 행동은 페루를 대표하는 거야

훈련된 사람답게 행동해야 한다.”


- 전 페루 여자 배구 국가 대표,

88년 서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나탈리아 말라가


88년 서울 올림픽 배구 은메달리스트 가비 페레즈


“박 감독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철저한 규율, 꾸준함, 그리고 노력을 가르쳐주셨죠.

그는 항상 우리에게 100% 이상을 요구하셨어요.

우리는 100% 이상으로 살았지만,

감독님은 결코 만족하지 않으셨죠.”


-전 페루 여자 배구 국가 대표,

88년 서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가비 페레즈


페루 여자 배구가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페루 대표팀의 놀라운 약진 뒤엔

늘 박만복 감독의 이름이 있었죠.


고 박만복 감독 (사진 제공: 김완중)


지금도 페루 국립 경기장에는

박만복 감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벽이 있고

88 서울 올림픽 배구 결승전이 펼쳐졌던

한양대 체육관에는 박만복 감독을 기리는

동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2016년, 박만복 감독은

또 다른 영예를 안게 됩니다.

한국인 최초로 배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이죠.

배구의 발상지인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1978년에 설립한 배구 명예의 전당은

2025년까지

누적 185명의 배구인만 선정됐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영예로운 타이틀입니다.


박만복 감독 (사진 제공: 김완중)


“1973년 제1회 여자 배구 월드컵 때

우루과이에서 시합을 했는데

그 때 우리가 한국팀이 3위를 했습니다.

그 때 페루의 배구협회회장이

우리팀 시합하는 걸 보고서

그 다음 해에 저를 초청을 했습니다.

그것이 1974년서부터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많은 세월을 배구를 했는데

배구가 끝이 안보입니다.

어디까지 이 끝인지 아직도 찾지를 못하고

나이가 80이 된

지금도 한 반 정도 걸어오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박만복 감독,

배구 ‘명예의 전당’ 헌액 소감 중 일부


박만복 감독은 2019년 83세를 일기로

페루 리마에서 별세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죠.


박만복 감독의 사위인

김완중 전 호주 대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김완중 전 호주 대사, 박만복 감독의 사위


“제가 감동했던 것은,

페루의 모든 언론이 거의 24시간 내내

장인의 별세 소식을 방송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장인이 나중에는

페루에서 기술 총감독 직을 맡으면서

국가대표팀도 대표팀이지만

청소년들을 모아서 강의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당시 학생들이

매일 수천 명씩 와서 줄을 서서

조문하고 애도하고 또 기도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장인이 페루에서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돌아가셨지만 외롭지는 않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박만복 감독의 사위, 김완중 전 호주 대사


그리고 파울 두클로스 주한 페루 대사는

박만복 감독이 페루에서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파울 두클로스, 주한 페루 대사


"페루에서 박 감독은 깊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박만복 감독과 페루 여자 배구 대표팀이

서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그 경기는

여전히 페루인들에게,

그리고 그 경기를 직접 보지 못한 세대들의

기억 속에도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페루 여자 배구 대표팀이

세계 대회에서 거둔 가장 큰 성취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박만복 감독이

바로 그 성취의 한가운데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만복 감독은 한국과 페루가 함께 쌓아온

신뢰와 우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60년이 넘는 두 나라의 관계가

앞으로 맞이할 희망찬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죠."


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은메달을 목에 건 페루 여자 배구 대표팀


하나의 공이, 한국과 페루,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고 박만복 감독이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느끼고, 또 꿈꾸게 됩니다.

페루와 한국, 두 나라에서

그는 단순한 배구 감독을 넘어,

연결과 열정, 가능성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박만복 감독과 당시 페루 여자 배구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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