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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미 May 11. 2020

나도 작가다

시작의 계기

어릴 적부터 엄마께서는 몹시 아프셨다. 어린 마음에 아픈 엄마가 참 미웠다. 그래도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쪽에는 자리 잡혀 있었기에 착한 딸이 되어야 했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잘하는 딸이었다. 어느 날에는 정말 힘든 하루가 있었는데 아픈 엄마에게 눈물을 들키기 싫어 감정을 숨겼다.

아픈 엄마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나를 향해 돌아왔다. 엄마가 아프니까 잘해야 한다며 말이다. 자주 듣다 보니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했다. 더 잘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익숙해진 감정을 버티다가 결국 터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집안의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엄마는 골다공증으로 허리가 두 마디 정도 무너지시고 어깨가 골절되었다. 심지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실패를 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많은 일이 한꺼번에 내게 찾아왔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고 미워하기 시작하니 번 아웃 증후군이 왔다.

두 달 정도 입원하신 후 집으로 돌아와 재활해야 했다. 엄마의 퇴원으로 인한 모든 것이 변했다. 새벽에 일어나 엄마를 씻겨드려야 했고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드려야 했다. 다시 그때를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너무 힘들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던 내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엄마께서는 어릴 적부터 자주 쓰러지셨기에 119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을 자주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잠시 집에 왔는데 화장실 앞에 엄마께서 쓰러져계셨다. 옷은 흥건하게 젖어있었고 집에 놀러 왔던 친구가 그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나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엄마에게 큰소리를 지르며 목소리 들리냐고 여쭤보았다. 친구에게 119에 전화해달라고 말했고 젖은 옷을 갈아입혔다. 어찌 보면 병원은 내게 친숙한 장소이기도 하다. 병원 로비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프신 분들도 마음이 아프시고 지켜보는 가족도 마음이 참 아프다. 성인이 되고 난 뒤 아니나 다를까 응급실을 또 가게 되었다. 그날따라 응급실 대기실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아버지께서 앞 의자에 앉아계셨는데 여학생의 표정이 익숙한 듯 무덤덤했다. 내가 혼자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주 있는 일인 듯 보였다. 여학생의 아버지께서는 딸에게 다가와 힘들지는 않냐며 자신이 느끼는 아픈 감정을 삼키신 채 나긋나긋 이야기하셨다. 심지어 아버지께서는 다리 한쪽 어딘가가 불편해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멈추기 힘들어 잠시 응급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릴 적 다짐했던 것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집으로 다시 돌아와 종일 왜 울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는 찾게 되었는데 어떻게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유명하신 작가님의 인스타를 찾아보기도 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책을 써서 이야기를 전달하겠다고 공부를 하기로 했다. 공부를 막상 시작하다 보니 책만 읽는다고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특강을 하는 곳을 찾아가게 되었고 이야기 끝에 제대로 된 시작을 하려니 심장이 쿵쿵 뛰며 두렵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잘할 수 있겠냐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고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세 번째는 두 가지를 반대하는 마음인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다녔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시작은 너무 어려웠다. 새벽 시간을 활용하여 꾸준히 하루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투자하며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6개월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초고가 완성되어도 끝이 아니기에 여전히 공부하며 퇴고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전달을 하고 소통을 할 수 있을지를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작가라는 직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안 좋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돈 못 버는 예술가이지 않은가?”, “아 그래?”라며 미적지근하게 무심한 듯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반론할 수 있다. “돈을 못 버는 예술가이면 어떤가”라며 말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주변의 시선을 때로는 물 흐르듯 넘어가는 연습도 필요하다. 나는 여전히 어제보다 더 나은 작가가 되기 위해 스스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으므로 하는 일을 끊임없이 사랑할 것이다. 아직 부족하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성장형 작가이지만 초심을 잃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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