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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Sep 02. 2021

현자의 돌을 찾아

[신나는 글쓰기 6기] 9일 차: 첫 문장에서 마지막 문장으로

"빨리 뛰게. 그렇게 뛰어서 어디 도망가겠는가."

"나도 알아, 헨리! 이 손이나 좀 잡아줘!"


허여멀건 피부에 깡마른 체형, 182cm나 되는 키를 하고 숨을 헐떡이며 마차 옆에서 겨우겨우 뛰고 있는 이 남자, 휴 애든버러다. 마차 위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날리며 건들대는 헨리는 그의 오래된 친구이자 유모의 아들. 방금 둘은 현자의 돌을 구하러 캔터베리 대성당에 몰래 들어갔다 나오던 길.


"그것 보게. 내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쯧쯧."

"이봐, 헨리!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찾을지 자네도 좀 고민을 해보라고!"

"휴, 자네야 말로 참 어리석네. 현자의 돌을 찾는다고 해도 말이야. 그게 자네에게 무얼 줄 수 있겠나?"

"찾기만 한다면 현자의 돌은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거라고!"

"알았네, 알았어. 그렇겠지, 자네 말은 뭐든 다 맞겠지. 틀릴 리가 있겠는가?"

"헨리,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걸세."

"여부가 있겠습니까, 애든버러 나으리. 아무렴요."


휴는 찡그린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보다 한숨을 픽 내쉬고 마차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상상은 저 멀리 아이였던 시간으로 휴를 잡아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생각을 비집고 들어와 똬리를 튼다. 눈을 감아 떨어보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괴로움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킬 뿐, 소용이 없다.


이윽고, 이힝 소리와 함께 마차가 멈춘다. 마부가 조용히 마차 문을 열어준다. 마차 밖은 짙은 안개로 사방이 흐리고 초겨울의 한기가 옷을 비집는다. 비용을 치른 헨리가 마차 옆에 서 있던 휴에게 다가온다.

"이제 어디로 가볼 텐가?"

"벨기에로 가보려고."

"지금 배를 타겠다고? 이 시간에 누가 배를 띄우겠나? 이렇게 짙은 안갯속에?"

"현자의 돌이 이베리아 반도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네. 벨기에로 건너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들어갈 거야."

"결국 스페인으로 갈 거면 맑은 날 바로 스페인으로 가는 게 어떤가?"

"아버지께서 미행을 붙인 걸 벌써 잊었는가? 올해 안으로 이 모든 일을 끝내야 하네."

"자네도 참, 고집은 공작님과 똑같구먼!"

"이번에는 같이 가기 힘들겠군."

"결혼 준비에 좀 더 신경 써 달라고 마거릿이 심통을 부리고 있다네. 자네와 다니다가 평생 공처가로 살까 두렵네, 그려."

"허허, 재미있는 소리를 다 하는 군. 암튼 벨기에로 건너갈 배를 마련해 주게. 그 후로는 혼자 다니겠네."


휴 애든버러. 애든버러 계 유일무이한 후계자로 애든버러 공작의 외아들이다. 어릴 적 어머님을 사고로 잃은 충격으로 방황을 시작했다. 사교계의 반항아로 등극할 정도로 자기 멋대로 굴다가, 때로는 자기 방을 쓰레기산 같은 연구실로 꾸며놓기도 했다. 뭔가 하나에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리고 내달리는 휴를 그나마 제지하며 돌볼 수 있는 건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헨리뿐이었다. 휴는 2년 전, 연금술에 빠져 현자의 돌을 찾아 나섰다. 현자의 돌이 가진 신비는 납을 금으로 만드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현자의 돌은 물질의 속성을 바꾸기도 하고, 다른 마법식과 함께 시간축을 변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이 나돌았다.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믿고 있는 휴가 현자의 돌이 가진 시간 변형 능력에 대해 듣자 말자 그것을 찾아 나선 건 너무나 필연적이었다. 어머니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 그의 죽음으로 인해 빼앗긴 자기 안의 빛을 찾으려는 의지가 불타는 듯 일어났다. 그렇게 영국 온 지역과 유럽을 뒤지다 현재 캔터베리까지 와있었다.


헨리가 마련해 준 배에 승선하여 벨기에로 넘어간 휴는 수중에 남은 재산과 물품들을 팔아 평민들의 복장으로 변신했다. 휴의 위장에 속은 공작의 하수인들은 미행에 실패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몇 개월 후, 영국의 헨리에게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헨리에게

잘 지내고 있는가? 나는 현재 스페인의 어느 한 성에 와 있네. 드디어 그것을 찾는 데 성공했지.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맸던 모든 것이 허무하게 해결되었던 그 순간을 자네와 깊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만, 방금 손에 들어온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자 짧게 편지를 마치려 하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일 년쯤 전, 박물관에서 나와서 자네에게 했던 말을 수정하겠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었지, 아마. 이제 돌아보니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 바로 인생인 듯 하이.

나의 실수를 뒤집어보기 위해 돌을 얻고자 했으나, 그 과정에서도 실수는 되풀이되었다네. 그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으이.

P.S. - 자네와 마거릿의 결혼이 있을 3개월 후까지는 런던에 도착할 예정일세. 그때까지 내가 이것을 찾았다고 하는 것은 비밀로 해주게.
(이것=그것=ㄷofㅈㅎ)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오늘의 미션은 글 마지막 부분을 먼저 보고 나서 떠오르는 것을 잡아 그 앞부분을 소설로 써 보는 것입니다.


제시된 상자 속 이야기를 읽어보니 '마지막'이라는 부분에서 화자가 어딘가로 떠나는 느낌이 들었고,   1년 전에 어떤 말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탐구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살아가면서 탐구하겠다고 바꾼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주인공이 무엇인가 연구하고 알아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수가 되풀이된다는 것을 볼 때, 실수를 없애고 꼭 성공하고자 했던 무언가가 있다는 것도 상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의 대상이 인생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볼 때, 사실은 인생이 아닌 허무맹랑한 것을 잡으려다 실패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15세기쯤 영국이 떠오릅니다. 셜록 특별편 영화 <유령 신부>의 배경이 되는 시대나 <신비한 동물 사전>의 거리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젊음의 치기에 사로잡혀 밝혀내기 어려운 연구에 빠져있는 고지식하고 외골수적인 어떤 사람이 주인공이 될 것 같아요.


여기까지 생각하고 쓰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마무리 짓고 나니 뭔가 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을 미리 계획하고 쓰니 정말 소설가가 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영화 같은데 보면 초반부에 작가가 던지는 벌어지면 안 될 것 같은 환란? 대참사? 이런 건 꼭 일어나니까요! 미리 던지고 떡밥을 회수하는 경험 말이예요^^



사진출처 : Pixabay (by thefairy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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