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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Oct 28. 2021

순대 먹는 남자

제발 순대 먹는 사람과 결혼하게 해주세요!

순대. 떡볶이. 튀김.


국민 3개 간식이자 주식이 되기도 하는 이 맛난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식당이 불결하면 밥맛이 떨어진다고 인상을 쓰며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않는 사람, 우리 아빠다.


호기심 많아 새로운 건 알아봐야하고, 처음 본 음식은 먹어봐야하는 사람이 있다. 나다. 하지만 부모님이 먹지말라고 하셨던 음식이라 친구네 집에서 순대를 보고도 처음엔 손을 대지 않았다. 문제는 친구네는 3대 간식을 너무나 자주 사먹었기에, 호기심 많은 나는 결국 순대에 손을 대고 말았다는 것!


우리집에서는 금지된 음식. 그러나 친구집에서는 늘 먹을 수 있는 맛난 요리. 하. 그 간극이란!


깔끔한 걸 좋아하는 엄마와 냄새와 맛에 더욱 까칠한 동생까지 합세하여 순대는 절대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칫. 그래서 중학생 때까지는 안 먹고 지냈다. 친구네 집에서 멀리 이사를 왔기에 가능하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순대를 맘놓고 먹어보고픈 아이가 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고, 야간 자율학습을 위해 저녁도 학교에서 해결해야 해서 학생들은 아주 가끔 분식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옆 자리 앉은 짝이 순대볶음을 파는 가게를 개발했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이게 몇 년만! 순대만 먹어도 너무 좋은데, 볶음이라니! 당장 가자고 했다! 분식집에서 만난 순대볶음은 놀라운 음식이었다! 야채와 순대에 고르게 스며든 빠알갛고 매콤한 양념! 설익은 양파와 당근, 매운내 나는 파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음식! 분식집에서 파는 요리라고 하기엔 너무 황홀한 그 음식을 만나고 말았다! 이후로 2주에 1회는 꼭 그 집에 내려가서 저녁을 해결했고, 그 때마다 짜릿한 일탈을 맛보았다.


대학에 가서 방황을 하며 살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진 아이들은 대부분 나처럼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이었다.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좋고, 수업 듣는 것 보다 창 밖 세상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런 아이들 중 하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우리 둘은 식성이 비슷한데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서 정말 통통해질 때까지 먹어댔다. 특별히 우리가 밤 12시만 되면 먹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후라이드 치킨과 순대였다! 얼마나 자주 먹었는지 나중에는 눈빛만 봐도 서로가 둘 중에 무엇을 먹고 싶은지 알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졸업 후 다시 순대 거부자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나의 순대 맛 기행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직장 회식 메뉴로도 순대나 순대 국밥은 거의 선택되지 않았으므로 거의 5년 이상 순대를 먹지 못했다.


가끔 떡볶이 사러 갔다가 우겨서 순대를 한 봉지씩 사오긴 했지만, 엄마와 동생은 그걸 어떻게 먹냐며 냄새 난다고 저리 치우라고 했다. 으악!!! 나도 순대를 맘껏 먹고 싶다고!! 얼마나 맛난데!!


야들야들하고 쫄깃쫄깃해서 입 안에서 탱글탱들 춤추는 그 녀석들을 어떻게 잊어! 따뜻할 때 먹으면 그 식감은 더 환상적이다. 마치 내 모든 세포가 순대가 되는 그 기분! 한없이 설레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입 안에 가득히 차오르면 내 마음도 둥둥 뜬다. 그걸 어떻게 잊어! 어떻게 안 먹고 산단 말인가!


그래서 내 이상형은 순대를 먹는 남자였다. 나이가 점차 들어가면 이상형의 조건들이 하나씩 없어진다. 외모라거나 집안의 경제적 배경, 직업 등과 같은 외적인 것들은 대부분 제거되고 없었다. 그렇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조건은 바로! 순대를 먹을 줄 아는 남자, 순대 국밥도 같이 먹어 줄 남자! 순대를 좋아하고 먹고 싶어하는 내가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질 그런 남자!! 순대 먹으러 가자고 말하면 2초도 안 되서 '그래, 가자!'라고 해줄 남자!!!! 


오늘 점심은 순대 국밥. 지금 사는 지역이 결혼 전에 남편과 내가 살던 곳의 딱 중간 지점이어서 데이트할 때도 자주 왔던 그 식당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언지 물어보았던 남편이 순대를 좋아한다는 내 말을 기억해서 손수 검색해서 데려와 준 곳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정말 순대 먹는 남자랑 결혼해서 살고 있구나!! 정말 너무 감사하다. 봉인이 해제된 기분이다. 순대 거부자들 틈에서 늘 이상한 사람 취급 받던 게 미운 오리 새끼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 곁에서 지낼 수 있음이 경이롭다!


순대를 좋아하는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어 감동이 넘치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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