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주 Jan 08. 2021

열 아들 안 부러운 딸

열 한 아들과 경쟁하다

"엄마는 왜 나를 낳았어?"

"엄마, 왜 나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야?"

단 두 문장으로 사춘기 내내 엄마를 괴롭혔다.  




늘 유치하게 구시는 할아버지로 인해 할머니는 결혼생활 중 깊은 외로움을 느끼셨고, 딸만 둘 내리 낳았다고 구박하시는 시어머니로 인해 심히 괴로우셨다. 간절함으로 얻은 아들이 바로 아빠다. 남편보다 소통이 잘되고 기특했던 아이를, 그는 아들 삼아 서방 삼아 많이 의지하셨다.


"맏집에는 아들이 있어야제."

"둘째는 아들 낳아야 될 낀데..."

"또 딸이면 아들 낳을 때까지 낳으면 되제."

할머니는 늘상 아들아들 하셨다. 계속 듣다 보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해졌고, 여자인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었다. 겨우 네 살 된 꼬마 주제에 '엄마 뱃속에 있는 동생이 꼭 남자였음 좋겠다'라고 얼마나 바랬던가.


그러나! 동생은 여자였다. 어떡하지. 엄마한테 동생을 하나 더 낳으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큰일이 생겼다. 숙모가 아기를 낳으셨는데 남자였던 것이다.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이 누려야 할 맏집의 권세를, 갓난쟁이 사촌한테 빼앗기는 게 그렇게도 싫었다. 그래서인지 걔랑은 만날 때마다 다퉜다. 사사건건 하는 짓이 어쩜 그렇게 미워보이던지.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남자아이가 아닐 리 없다.'라고 믿으셨다. 이유는 없다. 배 모양 때문도, 태몽 때문도 아니다. 그저 원했을 뿐.


엄마는 남자아이가 아닌 나를 싫어하진 않으셨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다른 말이 나를 괴롭혀 왔다.

"엄마는 네가 뱃속에 있을 때, 아들이 아닐 리 없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낳아보니 너는 딸이었고, 이제부터 너를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로 키울 거야."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남자아이는 될 수 없어도 공부는 할 수 있으니까. 열심히 했다. 그리고 꼭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되뇌었다.


학교에서 남자애들과 가끔 다투었다. '내 말이 맞네, 네 말이 틀리네' 하면서. 여자 우습게 보는 애들은 꼭 혼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지고 들어간 전쟁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니까. 남자로 태어나 드렸을 기쁨을 드리지 못했고, 그들이 누리게 될 영광을 나는 누릴 수 없을 거라서. 이러한 열등감, 투쟁의식에서 발생한 뾰족한 기류를 남자아이들은 잘도 알아챘다. 중 3 때, 교회에서 같은 반 학생끼리 롤링페이퍼를 한 적이 있다. 녀석들은 대부분 이렇게 써 놨다.

"너는 너무 주장이 강해."라거나 "너무 따지고 들어."또는 "남자애 같애."라고.


아빠는 대부분의 경상도 남자들과 좀 달랐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출산하게 하시려던 할머니의 뜻을 꺾으시고 딱 둘만 낳으셨다. 나중에 내가 혼자라서 외로울까 봐.


아빠는 나를 무척 인격적으로 대해주셨다. 혼자 앉을 수 있을 때부터 아빠 앞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셨단다. 아빠이자 멘토 같은 존재와 하루도 빠짐없이 토론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또래에 비해 잘 알았고,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가장 괴로웠던 사실은 그런 아빠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늘 '우리 철이, 우리 철이'하시면서 아빠를 지독하게 애정 하셨다. 그러면서 내게도 아빠를 요구하셨다.

어른들을 공경할 줄 아는 우리 철이,

어른들께 반항하지 않는 우리 철이,

부모 힘들다고 시내로 중학교 가지 않는 우리 철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우리 철이.

우리 철이처럼 되거라. 우리 철이처럼.




누구인지 모를 10명의 아들을 남몰래 부러워하며, 아빠와 경쟁해야 했던 딸은 따져 묻고 싶었나 보다.

남자아이였다면 총애를 받으며 자랐을 거고, 동생이 여자든, 사촌이 남자든 상관이 없었을텐데,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왜 엄마는 여자인 나를 낳았을까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사는 개 이름, 견이라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