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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an 19. 2023

위대한 사람

고전 7: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초등학교 때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위인전'이다. 당시에 가정마다 위인전기 한 세트씩 다 구비해 놓을 정도로 대유행이었다. 다른 책들도 참 좋아했지만 이름 있는 분들의 인생에 대해 읽다 보면 마음속에 열정이 샘솟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사회, 문화적 시선을 넘어서는 업적을 남기는 스토리들이 참 좋았다.


그러나! 만 43세의 나에게 그 위인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들의 삶이 대단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게 '위대한 사람'이 된 인물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인의 상사이다. 그와 나는 접점이 없다. 그런데 그가 일하는 방식과 성품에 대해 듣는 순간 내 안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그로 인해 스트레스받으면서 1년 내내 아팠다.


치아가 흔들리고 이명이 생기고, 얼굴에 모낭염 뾰루지가 순식간에 20개나 넘게 튀어나왔다. 배가 아파서 건강검진 갔더니 위 안에 핏줄이 튀어나와 있고 헬리코박터균에도 감염이 되어 있었다. 대장에는 용종이 2개나 있었고 갑상선기능저하증이라는 결과도 들었다.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괴로울 수 있다니! 스스로에게 정말 놀랐다. 스트레스는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에 대한 비판과 정죄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 그를 볼 때, 그가 대단히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가 운영하는 조직이 잘못될까 크게 우려했다. 또한 그의 밑에서 일하는 지인이 너무 불쌍해서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것 같다. 그때부터 몸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삶 자체에는 큰 문제 없는데 '그 사람'을 의식하는 것만으로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받은 것이다.


1년 동안 그 사람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의 주변의 많은 이들이 그의 단점과 개선할 사항을 아무리 지적해도 속상해하기만 할 뿐, 1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내면에 숨은 부정적 사고를 찾아내 균형을 살려주는 상담을 받으며 한쪽으로 기울어진 생각을 바로 잡으려 노력했다. 처음엔 그가 문제라서 그만 달라지면 된다고 믿었지만, 그의 변함없음이 조직의 변화를 가져오는 걸 보며 놀랐다. 그로 인해 이제껏 섬겼던 관리자들과 부모님에 대한 시각이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내 맘에 들지 않아도 그들 나름 최선을 다했을 거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들로 인해 괴로운 일이 많아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이를 갈던 교직 생활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으로 볼 마음이 생겼다. 그를 너무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불일 듯하는데, 절대 가르칠 수 없음에 한탄하다 문득 내 안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욕망'을 발견한 것이다! 고통 밖에 없다 여겼던 시기가 '교육자로 살 수 있었던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깨닫자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났다.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이 없어졌다. 그는 나에게나 그의 직장에서 특별히 잘한 것도, 아주 심각하게 못한 것도 없다. 부르신 그곳에 그냥 '존재'하기만 했는데 그를 보는 내 안에 있던 강력한 바윗덩어리가 산산조각이 나고, 삐딱하던 시선이 균형감 있게 교정되었다.


선망이 대상이 될 정도로 유명하거나 큰 업적을 남기는 사람들도 대단하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를 새롭게 하는 말도 안 되는 '그'는 더 위대하다. 이제는 안다. 그가 틀렸다고 생각해 가르치려던 것은 나의 부르심에 맞지 않다. 그를 지인의 상사로 불러주셔서 작년과 다른 내가 되게 하시고, 나의 부르심에 합당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됨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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