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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Apr 18. 2019

워킹맘이 더 힘든 이유

40대 대기업 워킹맘이 말하는 직장생활



이런 줄 몰랐다.



남들이 워킹맘이 힘들다고 할 때 그 업무 강도가 얼마나 심한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페이스북에 다니는 셰릴 샌드버그가 '린인'을 왜 썼는지도 '82년생 김지영'이 왜 그렇게 이슈였는지 관심 없었다. 아기 엄마들이 회사에서 왜 이렇게 정신이 없고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애가 없었기 때문이다. 37살에 결혼하고 5년 동안 난임으로 고생하다 42살에 첫아이를 기적처럼 얻은 늦은 출산 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21개월 딸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어리석게도 자신이 겪지 않으면 절대로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철저한 경험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워킹맘이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점점 갈수록 나이 든 여자들은 싱글 이외에는 회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인지 이해가 된다.



살아남자고 결심했다. 매일 매시간 매초 고민하고 고민하게 되지만 그래도 버티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적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매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맨탈이 흔들리고, 육아/출산으로 진급이 밀릴 때마다 속상해하고, 늘 정신없이 바쁜데도 할 일이 쌓여서 번아웃 되기에 딱인 워킹맘들에게 위로하면서 동시에 물러서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니 그 누구에게 보다 더 나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적었다.




직장 생활은 원래 힘들어..



직장 생활은 기본적으로 힘들다. 자기 계발 서적을 좋아하는데 직장생활 관련 제목을 보면 눈이 커진다. 회사 생활에서 인간관계로 힘들 때, 상사와 관계가 어려울 때, 대화하기 힘들 때, 쫓겨날 뻔했을 때마다 서점에 달려갔다. 뻔한 이야기지만 읽고 위로를 받았다.


내가 가진 책들을 본다.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보이게 일하라', '직장 언어 탐구생활' 등등 잘하라고 격려하는 책들이 있다. 반면에 '퇴사하겠습니다', '퇴사 학교', '퇴사 준비생의 도쿄' 등 회사 이후의 삶에 대한 책들도 많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그 치열함 속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지난주부터 KBS에서 '회사 가기 싫어'라는 드라마가 시작했다. 넷플릭스에서도 워킹맘 다이어리가 시즌별로 하고 있다. 직장의 신, 김 과장, 미생 등 직장인이 애환을 담은 드라마는 대부분 히트다. 이유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이다.


잡코리아를 검색해서 내가 속한 회사의 성별 비율을 찾아보았다. 남성 85%이다. 매일 다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우르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업무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다(젊은 직원들이 많은 곳은 분위기가 다르지만…). 그들도 업무 성과를 어떻게 내야 할지,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자기계발을 통해 어떻게 승진을 하고 몸값을 올릴지 등등 다양한 정치적, 업무적 역학관계에 따라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들에겐 이곳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이며 버텨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고, 아니어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남자들은 직장만 다녀도 힘들다고 난리인데, 워킹맘들은 가사, 육아에 직장생활이 더해진다. 저글링 공이 3개다. 아니다 3개라고 하면 너무 많다. 가사는 포기하자. 직장과 육아 둘만 해도 할 말이 많다.


워킹맘은 더 힘들어...


몰랐다. 결혼을 늦게 해서, 애를 늦게 낳아서, 그녀들의 어려움을 몰랐다. 워킹맘들이 휴식시간에 풀어내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어려움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상상 속의 어려움이었다. 난 내가 겪어봐야  아는 경험주의자이다.  왜 '린 인'이란 책이, 왜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이 그렇게 회자되는지 관심도 없었다.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있게 되어 이제서야 책을 펴본다.


'린 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완벽주의는 공공의 적이다.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풀타임 직업을 두 개 가진 사람은 없다. 완벽한 자녀를 둔 사람은 없다. 동틀 때까지 오르가즘이 여러 번 오는 사람은 없다"


읽고 위로를 받았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 운영책임자인 그녀조차도 이렇게 말할 정도로, 워킹맘은 풀타임을 두 개 뛰는 노동자이다.


워킹맘이 힘든 이유를 3가지 생각해보았다. 아니 내가 왜 이렇게 힘든가 생각해보았다.  


1. 일이 끊임없다.



워킹맘들은 항상 바쁘다. 어딜 가나 바쁘다.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바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바로 곯아떨어지지 않고 생각할 시간이 잠시라도 주어지는 행운을 누린다면) 바쁘게는 지냈는데 도대체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워킹맘들은 주어진 일들을 목록에서 빨리 지우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Task를 To Do 혹은 Doing이 아닌 Done 상태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바쁘다.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우선순위가 높아진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자. 일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일은 해치울 수 없다. 화수분 같다(돈이나 이랬으면 좋겠다).


내가 할 일이 하나도 없는 순간은 죽기 전이나 아파 누워있을 때가 아닐까?


'타임 푸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린 항상 바쁜 상태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여가를 누리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

"바쁘게 산다는 건 난 이런 사람이야, 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이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죠"


2. 파편화된 시간만 존재한다.


워킹맘의 하루는 너무나 바쁘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씻고, 아이를 챙기고, 밥도 먹이고, 어린이집, 학교 등 준비물을 챙기고 허둥지둥 가서 아이를 맡긴다. 우는 아이를 모질게 외면하고 자리에 앉아서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체크하고, 회의 갔다, 일했다, 자료 만들었다가 정신없이 보내면 퇴근 시간. 아이를 데리러 가서 집에 와서 씻기고 먹이고, 재우면 밤 9시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길 체력이 남아 있으면 뭐라도 하지만, 대부분 애 재우다가 같이 잠든다. 기본 근무 시간은 잠자는 시간 6시간 외. 18시간. (위 그림에 편안하게 웃는 얼굴이 기분 나쁘다. 진짜 웃고 있는거냐...아님 모든걸 초월한거냐..)


마치 마감이 코앞인 프로젝트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 같다. 할 일이 많이 있고 끝나지 않는 일들의 순환이기 때문에 항상 시간이 없다. 더 최악은 파편화된 시간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과 있는 아웃풋이 나오려면 시간은 덩어리 채 써야 한다.  통 삼겹살 같은 덩어리 말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공부 방법에 대한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아이에게 공부 시간표를 짤 때 국어 1시간, 영어 1시간, 수학 1시간 이렇게 골고루 공부하게 짜면 수학 같은 경우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한다. 깊이 있는 사고가 필요하고,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을 너무 잘라서 쓰게 되면 그 과정에 인터럽트가 걸린다는 것이다. 요즘 나를 보면 일도 못하고 애도 못보고 그냥 멍부(멍청한데 부지런한) 같다.


워킹맘은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의 덩어리를 내기 힘들다. 업무 시간에 집중해서 나를 챙길 수 있을까? 그래서 워킹맘은 지친다. 업무 중간에도 끊임없이 아이와 관련된 것들을 생각하고 챙겨야 한다. 집안일을 아예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모를까? 먹을 것을 생각하고 장을 볼 생각을 해야 하는 것도 엄마다(그래서 요즘은 좀 생각 안할라고 하는데, 환절기라 애가 자꾸 감기에 걸린다...)


시간은 불변이기 때문에 일주일은 168시간이고 앞으로도 그렇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시간 안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활동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 해야 하는 것을 모두 동시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안다..못해서 그렇지..)


3. 체력이 딸린다.


출산휴가 후 복귀 한 후에 처음엔 임신 전 생각만 하고 달려보려고 했다. 애가 나오면 체력도 바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 낳고 바로 윗몸 일으키기가 안됐을 때 느껴야 했다. 출산 후에는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나는 노산 42살에 처음 아이를 낳았다. 내 몸은 애를 낳지 않아도 체력이 딸리는 몸이 된 상태였다. 이미.


전에는 혼자 가벼운 차림으로 달리기를 했다면 지금은 등에 애를 업고, 팔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양쪽 팔에 기저귀 가방과 노트북 가방을 든 채 물속에서 뛰는 것과 같다. 생산성이 1/10로 떨어진다. 체력이 안되니까 의욕이 떨어질 때도 많다. 그런데 대부분 워킹맘들은 자신을 책망한다. 의욕이 안 나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거나 자괴감에 빠진다. 최근에 이런 글이 카톡 방에 돌았다. 너무 공감했다.


"의욕이  떨어진 줄 알았는데, 체력이 딸린거였다”


에너지는 항상 총량이 있다. 내가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면 남아 있는 에너지는 적을 수밖에 없다. 하루 최소 16시간 노동을 하면 업무 집중도는 떨어지고 성과가 좋게 나올 수가 없다. 아무리 마른 걸레를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다.


할 일이 많은데 체력이 딸리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전전두엽이 수축된다고 한다. 전전두엽은 지적 능력의 핵심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부위다. 사람이 시간 압박을 받고 마음이 급하다고 느껴서 쫓길 때 뇌가 수축하고 편도체는 감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워킹맘들은 그래서 집중하기 어렵고, 힘든 것이다.




어떻게 살아남을까는 다음 글에서...

이런 현실 속에서 고민하면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워킹맘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나에게도.


흑흑 오늘 쉬어서 넘 좋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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