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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Nov 24. 2020

여행을 못 가면 여행 준비를 취미로

여행 준비의 기술

'여행 준비'를 취미로 가진 사람이 있다. 여행도 아니고 여행 준비가 취미라니,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본다면 저자는 J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쓴 책이 <<여행 준비의 기술>>이다. 저자는 의사 출신의 21년 차 저널리스트다. 연대 의대를 나와, 박사 학위를 따고, 수련의를 마친 후 공중보건의사의 길을 택했다. 행보를 보면 자신만의 생각이 뚜렷한 사람 같다. 그가 말하는 여행 준비란 무엇인가? 궁금해졌다.


"그렇다. 내 취미는 '여행 준비'다. 어릴 때, 소풍 가기 전날이 소풍 당일보다 더 설레지 않았던가. 여행 준비는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여행이 취미인 사람은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우울해지지만, 여행 준비가 취미인 사람은 하나의 여행이 끝나면 그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시험 준비, 취업 준비, 출근 준비, 결혼 준비, 식사 준비, 이직 준비, 이사 준비 등 살면서 하는 대부분의 준비는 힘들고 재미없다. 준비한다고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행 준비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인생은 어차피 준비만 하다가 끝난다는 말도 있는데, 여행을 못 가면 어떠하랴,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우면 그것으로도 큰 위안이 아닌가."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다니. 마치 요리 자체보다 재료를 손질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 같다. 저자의 여행 준비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여행 준비 - 외국어

외국에 간다고 생각하면 그 나라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회화책을 샀지만 요즘은 번역 앱을 많이 활용한다. 그래서인가? 취업도 아닌데, 여행을 위해 외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힘들어도 운동을 하고 등산을 하는 것처럼, 여행을 준비하며 그 나라 말을 공부하는 것은 여행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는 좋은 운동이다."


그 이유는 우아하게 돈 쓰기 위해서라고 한다. 저자 말하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 영어를 사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단계

- 돈 쓰는데 필요한 영어가 가능한 단계

- 영어를 못해서 돈 쓰는 것도 못하는 단계


대부분 사람들은 돈 쓰는데 필요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아한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 저자는 이왕 돈 쓰는 김에 우아하게 돈 쓰라고 설득한다. 아래 표현은 '여행 준비'차원에서 외워두면 우아하게 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말에 따르면 잇어빌리티를 보장한다. 


- 발레파킹을 찾을 때: Can I  retrieve my car?

- 쇼핑몰에서 무료 주차 요구할 때: Can I validate my parking ticket?

- 호텔 등 무료인지 궁금할 때:  Is it complimentary?

- 레스토랑에서 앞접시 달라고 할 때: Can I have some extra plates?

- 레스토랑에서 다 먹었냐고 물을 때: 먹고 있으면 Still working, 먹었으면 I'm done

- 세일이냐고 묻고 싶으면 : Is it on sale?


여행 준비 - 책

요즘은 여행하면 블로그, 구글이나 유튜브를 검색하지만 전에는 여행 가이드 책, 테마가 있는 (박물관, 미술관, 공연, 음식 등) 여행 책, 회화책 등을 많이 샀다.  하지만 저자는 의외로 다른 제안을 한다.


"이런 책들을 읽는 건 물론 좋은 여행 준비다. 하지만 더 좋은 여행 준비는 여행과 관련 없는 책을 평소에 많이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그런 마음이 오래도록 진하게 쌓여 있는 곳에 가면 더 즐겁다. 뭐든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더 기쁜 법이니까."


그렇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여행 준비 - 자신을 알기

저자는 여행 준비의 장점 중 하나로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꼽는다. 이 부분은 약간 자기 개발서 느낌이 났다. 여행을 준비하는데 자신을 알아야 한다니. 기승전 "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형 소환인가?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이유는 여행 준비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선택이란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더 많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덜 원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여행 준비란 자신이 가장 만족할  곳을 찾아내는 일이다. 어떤 장소가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알려면 그곳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세상의 여러 곳곳을 두루 살피면서, 자신을 알게 되는 과정, 이것이야 말로 여행 준비다. 여행 준비도 하고 나 자신도 알고, 세상 곳곳도 알고 일석 삼조다.


Souvenir - 자석 수집


여행 준비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작가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대목이 자석 수집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명 여행지를 가면 대부분 예쁜 자석을 사 오게 된다. 없으면 그만인데, 작가는 원하는 것은 꼭 얻어야 하는 성격인 것 같다. 자석을 팔지 않는 지역은 방도가 없어 스스로 자석을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자석을 만들기로 했다. 가볍고 얇고 작고 예쁘면서 그곳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자석이 아닌 물건을 챙긴 다음, 집에 와서 약간의 '작업'을 통해 자석으로 변환시켰다." 


나만의 추억이 담긴 내가 만든 자석으로 내가 다녀온 곳을 추억하는 것. 진정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저자도 스스로 말하지만 이 책은 장르가 불분명하다. 진짜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며, 여행 에세이도, 인문서도 아니다. "여행 준비 혹은 여행을 하면서 느끼거나 경험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소품"이다.


그래서일까? 편안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어차피 준비를 하는 거고 코로나 19로 어차피 지금 당장 어디로 갈 수도 없으니 느긋하게 앉아 작가가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거기 갔었지, 혹은 나도 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 이 책은 글항아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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