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해 Mar 03. 2022

역지사지가 이렇게 어렵다니

몇 달 전 집에 도둑이 들뻔한 적이 있다. 대낮에 우리 집 번호키를 누군가가 빠루로 떼어내려고 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집에 들어온 밤 10시쯤이었다. 다행히 엄마는 낮에 잠시 왔다 가셨고, 집에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도둑과 마주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대낮에 사람들이 종종 드나드는 아파트에 이런 일이 생겼고 그 일이 하필 우리 집에 생겼다니 너무 무서웠다.


경찰이 오고, 과학수사대가 오고 지문감식도 했다. 경찰과 감식반이 간 후 자정이 다 되어 열쇠 기사를 불러 번호키를 바꾸었다. 옆집이 더 허술한 번호키를 달고 있어서 그 집이야 말로 떼려고 하면 금방 떼는데 라며 말을 흐렸다. 하고 많은 집 중에서 번호키가 허술하지도 않은 우리 집이 타깃이 되었다는 건 낮에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인 걸까? 생각과 추리에 상상이 더해지니 더더욱 무서워졌다.


암튼 번호키를 교체했으니 집주인에게 여차 저차 해서 기존 번호키는 쓸 수 없고 그래서 새로 교체했는데 비용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돈을 줄 거란 기대를 하고 알린 것은 아니고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물어보려는 차원이었다. 기존 번호키는 도둑이 망가뜨려서 더 이상 쓸 수 없고 열쇠 키만 사용하기엔 열쇠도 없었고 도둑에게 너무 쉬운 열쇠 키만 쓰는 건 공포스러웠다.


집주인은 이렇게 비싼걸 왜 우리가 비용을 내야 하느냐고. 지난번 베란다 문고리 바꿔준 것도 많이 한 거다. 돈은 줄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공포로 가득 찼던 마음이 순간 분노로 가득 찼다.


상황을 들었으면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인 것도 뻔이 아니까 괜찮은지 훔쳐간 것은 없는지 안위를 물어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생각했다. 상대의 상황 따위는 아랑곳없이 그렇게 비싼 걸 네 마음대로 샀으니 돈은 줄 수 없다는 집주인의 반응에 화가 났다.

누구나 각자의 사정과 입장이 있다. 내가 중요한 세상이긴 하지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할 순 없는 걸까? 사정이 여유롭지 않아서 줄 순 없지만 괜찮은지 안부라도 물어주면 그럴만하다고 이해도 하고 물어봐주어서 고맙지 않을까? 이런 걸 바라는 마음 자체가 문제일까?


역지사지에 대한 글을 검색하다 고광진(@clueinon) 님이 역지사지가 유래된 맹자의 글을 인용해 설명한 것을 보게 되었다.


https://brunch.co.kr/@clueinon/39


그래 나를 돌아보자. 타인을 비판하기보다  거울에 나를 비추어보자.  어느 때 보다 역지사지가 필요한 시대이니만큼 결코 역지사지의 자세를 잊지 않겠다 다짐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