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오미 May 05. 2023

간호 편입생 실습 일기-노인 간호학 (요양 병원)

길고 길었던 1000 시간 실습의 마무리는 귀여운 어르신들이랑-!

마지막 실습일기라니!!


이런 날이 현실로 다가오다니,,, 1000시간 실습의 끝이라니! 너무 신기하고, 안 믿기고, 그동안의 실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토록 바라고 기대하고 고대하고 원했던 1000 시간을 채울 마지막 실습을 코 앞에 두고 있을 때,, 사실은 신남과 쾌감이라는 감정보다는 뭉클함과 안 믿김이 더 컸던 것 같다. 


대망의 마지막 실습은 노인 간호 실습이었고, 마지막 실습이어서가 아니라, 2주간의 실습 중에 역대급 여러 해프닝들로 인해 기억에 남을 스토리들이 많았어서, 굉장히 마음에 오래도록 간직될 듯하다. 


마지막 실습은 요양병원으로 배치가 되었고, 정말 역대급으로 준비도, 긴장도, 두려움도 없었던 실습이었다. 마지막 실습이라 그랬는지, 방학중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귀찮고 너무 하기 싫고, 너무 질리고 지겹고... 평소라면 의학용어도 미리 다 외우고, 지침서도 사전에 다 채우고, 실습 때 사용할 짐도 미리 싸두고 했을 텐데, 이번에는 의학용어 사전 암기는 무슨, 지침서 사전 학습도 다 비워둔 채로 실습 2주 동안 지낼 숙소로 이동을 했다. 몸도 마음도 아무 준비도 안 했다는 뜻이다..ㅎㅎ (이 시기의 나, 왜 그랬을까)


심지어 실습하게 된 요양병원은 우리 학교에서 실습 나가는 것이 이번이 아예 처음이었어서, 해당 병원에 대한 인계도 없어서 미리 알 수 있는 정보도 없었다.. 는 오히려 좋은 빌미이자 핑계가 되어서, 더더욱 에라 모르겠다 가서 직접 부딪혀보자 모드가 되었던 거 같기도 했다.ㅎㅎ


마지막 실습동안 지낼 숙소로 이동 중-!



요양병원 실습 시간은 다음과 같았다. 


첫 주: DAY 근무 (7:00-16:00)

둘째 주: EVE 근무(13:00-22:00)


요양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아마 살면서 이쁘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듣게 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쁘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 앉을 만큼은 들을 일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ㅎㅎ 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 그리고 병동 선생님들이 우리를 보며 마냥 어리고 이쁘다고 입이 닳도록 표현해 주셨는데, 과장해서 말하자면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쁘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30대를 코 앞에 두고 있는 타이밍에 나의 자존감 지킴이도 되고 괜히 막 마음이 몽글 뭉클하고 그랬다..(라고 30대에 별 감흥 없는 사람이 말했습니다,,,ㅎㅎ)


2주 실습하는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어르신들 너무너무 귀여우시다". 괜히 막 할머니랑 엄빠 생각도 자연스럽게 자주 나게 되고, 우리 엄빠를 포함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아프지도 늙지도 않았으면 하는 욕심이 들기도 하고, 여러모로 마음이 정말 많이 물러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말랑 몰캉 물러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과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도 많았는데, 그중에 몇 가지만 추려서 기록을 해두었다. 



1) 자연의 순리란?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니 뭔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상의 자연일리? 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르신들한테서 아동, 아니 거의 신생아의 특징들이 신비롭게도 너무 많이 보여서,,, 괜히 하나님을 올려다보며, 당신이라는 디자이너 도대체 인간을 어떻게 디자인하신 건가요..? 를 묻게 되기도 하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예를 들어 이 없는 어르신들 주무실 때 아기처럼 입을 쫍쫍거리고, 팔+다리를 아기 자세랑 똑같이 새우처럼 잔뜩 웅크려서 누워 있고, 기저귀 사용하고, 이가 없어서 밥 드실 때 잇몸으로 입 우물거리고, 미음/우유 먹고, 먹기 싫으면 혀로 밀어내고, 자기주장이나 표현을 옹알이로 하시고, 등등,,, 한편으로는 너무 신기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안 좋기도 했다... 이분들도 분명 한때 지금의 나처럼 세상을 누리고 날아다녔을 분들인데..라는 생각도 들고, 인간이 절대 이길 수 없는 건 세월이구나 싶기도 하며 마음이 몽글몽글..ㅠ 



2) 치매 어르신들의 순수함


내가 실습을 했던 병동은 치매+와상 병동이어서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리고 치매가 정말 심하신 분들도 정말 많았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볼 수 없을 별의 별일을 다 보게 됐었다. 한 줄로 표현하자면,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를 실사판으로 몇 십 명을 곁에 두고 보고 있는 기분이었달까?


* 그중에 가장 기억 남는 해프닝은 단연코 똥칠,,, 그 이유는 더러워서가 절대 아니라, 할머니를 케어하는 여사님들의 마음씨들이 너무 진한 감동으로 남아서 꼭 기록하고 싶었다. 썰을 간단히 풀어보자면,,!

->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브 퇴근 직전)에 어디선가 쿰쿰한 냄새가 나길래 혼자 병동 한 바퀴를 돌다가 백발의 할머니가 금발이 되어있는 걸 발견해 버렸다.. 첨에는 내 눈을 의심했고, 그다음은 뇌정지... 가 왔다가, 정신 차리고 바로 여사님들을 콜 했다. 사실 그 시간이면, 나 포함해서 퇴근을 앞두고 있던 이브 근무자들이라 그 사건의 타이밍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여사님들이 우르르 오셔서 할머니를 보시더니 첫마디가 "아이고야 엄마 염색 억수로 이쁘게 잘됐네!!!!"라고 하심,,, 나는 예상치 못한 여사님들의 그 첫 한마디에 정말 눈물 날 뻔했다..ㅠㅠ "엄마 염색 이쁘게 했으니까 우리 이제 씻으러 가보쟈!" 하면서 모시고 그 밤 중에, 그 퇴근 직전에 목욕을 시켜드리고 로션까지 발라 드리는데, 그때 내가 오히려 너무 감동을 받아서 여운이 정말 오래 남을 것 같다,,, 이 세상에 천사가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의 여사님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해프닝이었다. 


* 치매가 오면 사람의 가장 바닥의 본성 또는 가장 순수한 사람의 본능을 볼 수 있게 되는 거 같았다. 삶의 가장 무의식에서 나오는 본성의 말과 행동들이 전부이다 보니, 쉴 틈 없이 투덜대는 분들이 있기도 하고, 짜증도 많이 내시고, 참 다양한 성격들을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그 바닥과 본능이 꽃밭과 같은 아름다운 분들이 계셨고, 그런 분들과 2주의 시간을 보내는 건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과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예시로, 너무 기억에 남는 할머니가 계셨다. 입 밖으로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던 할머니셨다. 이 할머니께서는 평소에 사고는 정말 많이 치는(기저귀 벗어두고, 물티슈는 다 뽑아두고, 종이만 보이면 입에 넣어서 질겅질겅 씹고.. 등등) 분이어서 한 번씩 한숨이 나올 법도 한데 내뱉는 말씀 한마디에 사람을 사르륵 녹여버리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분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밥 먹는 방법마저 잊게 되는 병이 치매인데, 어떻게 말을 세상 이쁘게 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걸까... 그분의 아흔 살 인생이 어떤 인생이었을지 너무나도 궁금해지게 만드는 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나도 모든 기억과 능력을 잃었을 때, 그 어르신처럼 타인의 마음마저 꽃밭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른말, 이쁜 말, 고운 말만 남아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분의 삶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분과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3) 어르신들 말동무해드리다가 내 마음이 오히려 채워지고 있었음을,,


요양 병원에서 실습하는 동안, 수선생님께서 첫날부터 하셨던 말씀이 있다. 실습을 통해 간호를 배우는 것 또한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서 2주 동안 지내는 동안 어르신들 말동무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랑 같이 실습하는 동기랑 둘이서 열심히 이 병실 저 병실 왔다 갔다 거리면서 어르신들이랑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매일 같이 출근하자마자 방마다 어르신들 찾아가서 "저희 왔어요~! 보고 싶었죠!!" 알랑방구 떨었더니, 어느 날부터 어르신들이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 잠깐 간호사 선생님들 심부름을 하러 가던가, 전체 바이탈 측정하러 가서 복도에 우리 한동안 안 보이다가 나타난다면. 어디 다녀왔냐고 묻고, 다른 방에서 수다 떨다가 넘어오면 왜 저 방에만 오래 얘기하냐며 삐지기도 하시고, 우리 주려고 간식 아껴놨다면서 간식 쥐어 주시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우리 불러서 다녀오면 "니네한테 뭐라카드나?!"하고 화부터 내주시곤 하셨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분들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계시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혼자 병실 라운딩을 하다가 어느 할머니가 자기 좀 봐달라며 부르짖길래 헐레벌떡 갔더니, "내 말 좀 들어주소ㅠㅠ"라고 계속 소리를 지르셨다. 일단 할머니 진정부터 시키고, 무슨 일이냐고 천천히 말해보시라고 다 들어드리겠다고 하니까, 엄청 급하게 주절주절 신세한탄을 하셨다. 천천히 말씀하시라고, 어디 안 간다고 안정시켜드리고 한참을 들어드리기만 했다. 실컷 말씀을 다 하시더니 속이 시원하셨는데,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요"라고 하시며, 거기에 보태는 말이 "선생님이 들워줘서 내 마음이 다 치유됐다."라고 하시는데 진짜 마음이 너무 뜨거워졌다.. 불과 몇십 분 전만 해도 세상 떠나가라 부르짖던 분에게 한 시간도 안 되는 내 시간 겨우 내어 드리고 이런 말을 감히 들어도 되나,,, 그 말을 듣는 내가 오히려 마음이 흘러넘쳤다. 그 순간, 이 맛에 내가 이 길을 선택했구나... 너무 잘 선택했다..라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2주 동안 정든 또 다른 할머니가 계셨다.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가족도 없으시고 혼자 셔서, 평소에도 엄청 외로워하시는 분인데, 말수마저 없으셔서 대부분들 관심을 안 가지시는 할머니였다. 근데 동기랑 둘이서 매일 가서 말 걸고 옆에 앉아있고 하니까 마음이 열리셨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도 쉴틈에는 그 할머니 옆에 앉아서 수다 떨고 쉬고 했더니, 할머니도 우리만 보면 잇몸만개하며 웃으셨다. 그렇게 2주를 지내다가, 실습 마지막쯤부터 미리 우리 이제 내일 마지막인데.. 우리 오늘 마지막 날인데..라고 언지를 드리니까 할머니께서 "우리 이제 볼일 없겠지?"라고 하시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이래서 실습 때 환자 분들이랑 정 안 들게 하려고 발악을 하기도 하는데,,ㅠㅠ) 울컥했지만 꾹 참고 가볍게 넘겨보려고 "에이 할머니 그러다가 우리 갔다고 바로 까먹는 거 아니에요~? 우리 잊으면 섭섭해요~!'라고 답을 했더니, "내가 다른 건 다 잊어도 니네는 내 살아있는 평생 안 잊는다.."라고 하는데 진짜 너무나도 묵직한 한 방이었다ㅠㅠ 우리의 존재가 할머니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구나 싶어 너무 감사하기도 한 반면에, 정 들여놓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죄송하기도 했다.. 할머니 꼭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노인 간호 실습은 그동안의 그 어느 실습과도 비교 안될 만큼 기억에 오래 남을 실습이 될 것 같다. 다른 실습들도 물론 각각의 특징들이 너무 강했지만, 노인은 마지막 실습이라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특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들 오래오래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간호학생으로서의 실습도 이제는 끝!! 

고생했다 나 자신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