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맞이 스페셜 송편 만들기

by 라미루이









치루 수술을 받은 지 어느 3주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30분 이상 앉아있기 힘들어 푹신한 자리를 찾아 눕거나, 집안을 걸어 다니거나 가끔은 좌욕을 하곤 했다. 지금은 컨디션이 좋으면 1시간 가까이 앉아버틸만하다. 일부 병원에서는 치루 수술 후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홍보를 하지만, 커뮤니티에 올라온 치루 환자들의 몇몇 후기를 살펴보면 무리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치질로 고통받은 이들은 평상시 자질구레한 움직임에 괄약근이 얼마나 자주 쓰이고, 관여하는지를 익히 알고 있으리라. 특히 치루 근본 수술은 괄약근의 일부를 도려내는 수술인 만큼, 앉아서 많은 업무를 해결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힘에 부치는 일을 하는 노동직에 종사한다면 적어도 일주일은 편히 쉴 각오를 하자.


거즈를 틈틈이 갈아 주는 것과 배변 시의 묵직한 아픔과 무딘 칼로 쑤시는 듯한, 날카로운 쓰라림을 오가는 고통은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는다.

담당의가 거즈를 갈면서 환부의 위치가 감이 잡히질 않는다면, 손거울로 수술 부위를 비추어 관찰해 보라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내 생각보다 절개 부위가 더 끔찍하고 추악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파내고 도려내어 생살을 드러낸 그 핏빛 동굴을 들여다본다면 어떤 일상도 유지하기 힘들 것만 같아서..

그 끝도 모를 어둠에 사로잡혀 난 잠자리에 누워 몸을 뒤척이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사소한 동작, 하루에 한 번 따뜻한 물에 샤워하는 것 또한 망설이고 두려워할지도 몰라 손거울을 들지 못했다.

다만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 다른 환자의 치루 수술 사진을 몇 장, 곁눈으로 훑고는 브라우저를 닫아 버렸다. 내 환부도 누군가의 벌건 살이 겉 피부를 뚫고 아가리를 벌린 것처럼, 'V' 모양으로 드러난 저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수술 과정을 복기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응꼬 주변이 욱신거리고 허벅지 아래가 저려온다.

708호실에 함께 입원했던 그 60년생 아저씨는 잘 회복하고 있을까. 수술을 마친 다음날, 일요일 새벽에 일을 하기 위해 퇴원을 서두르던 그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누공이라 불리는, 치루 외구멍이 5개나 뚫려 복합 치루 수술을 받은 그의 지난 고통이 얼마만 한 무게 일지는 감히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저 같은 병이 재발하지 않고 큰 고통 없이 회복되기를, 다시는 그 병원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술 이후 사흘 정도를 제외하고는, 병원에서 처방한 진통제를 삼킬 정도로 버티기 어려운 통증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내 몸의 일부를 덮친 고통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 위해, 피비린내 가득한 동굴 안을 헤매다 그 암흑에 갇히지 않기 위해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로 한다.

온 가족이 모여 그 해에 난 햇 음식을 즐기는 추석 명절의 대표적인 음식을 꼽으라면 역시 '송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추석 한가위를 맞아 송편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키트를 나누어 주어 내친김에 만들어 본다.


냉동실에 보관했던 떡 반죽은 어젯밤부터 밖으로 꺼내어 해동을 마친 상태.

옥빛, 핑크, 노랑 그리고 하양. 아이들과 함께 각자의 그릇에 마음에 드는 색깔의 반죽을 덜어 치대고 주무른다.

아직 뭉치지 않은 연초록 반죽 한 덩이를 믹싱 볼에 덜어 두 손으로 조몰락대니, 알싸하고 향긋한 쑥 내음이 주위에 퍼진다.

둘째 연은 무거운 자기 그릇과 흩어지는 반죽이 손에 익지 않은지, 자꾸만 사발이 덜그럭 요동치고 가루가 식탁으로 쏟아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불안 불안해서 어쩌지.

"아빠처럼 양 손가락을 모아서 오목한 그릇 가운데로 쌀가루를 모아주고, 기다란 반죽을 빚는다는 기분으로 주물러 주면 돼. 이렇게 말이야."

하는 수없이 내가 시범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자 중구난방으로 나대던 쌀가루는 찰기를 띠어 한목소리를 내고, 쫀득한 덩어리로 한데 뭉쳐져 손에 들러붙지도 않고 매끈하게 떨어진다.




이제 반죽은 완성.

방앗간에서 막 뽑아낸 가래떡처럼 길게 치댄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떼어내 둥글고 납작하게 돌려 빚는다. 오목하게 눌러준 가운데에 볶은 깨와 콩가루, 설탕이 섞인 소를 듬뿍 담는다. 만두를 빚는 것처럼 가장자리를 여물게 다듬어 주면 그럴듯한 송편이 손바닥 위에 놓인다.

토실토실, 통통하게 뱃살이 오른 반달을 닮은 송편이 제법 접시 위에 쌓이자 아이들이 묻는다.

"아빠, 우리 마음대로 만들어도 되지?"

"그럼, 너희들 손 가는 대로, 내키는 대로 만들어 보렴. 이왕 만드는 거 여러 가지 모양이면 골라 먹는 재미도 있을 테니.."

"누가 만들었는지도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우리가 각자 그린 그림일기처럼 말이야."

"언니, 난 벌써 뭐 만들지 정했거든."

아이들은 내 말에 맞장구를 치더니, 각양각색의 반죽을 덜어 두 손바닥 사이에서 공굴리고, 손가락으로 조물대어 이런저런 모양의 송편을 빚어내기에 바쁘다.

자색 고구마가 섞인 분홍 반죽 안에 깨소를 뱃가죽 터지도록 담아 탱탱 공 모양의 꿀떡을 빚어내고,

그걸 위아래로 맞붙여 8자 형태의 눈사람 송편을 떡하니 접시에 올리는가 하면,

반 토막 난 달이 아닌, 추석 밤하늘을 환히 밝힐 보름달을 닮은 한없이 동그란 달떡을 만들기도 한다.

장난기가 도진 아이들은 낯익은 얼굴을 만들더니 그 안에 쑥색 눈자위와 노란색 코, 입을 박아 넣는다.

"으하하! 이 아이는 우리가 아끼는 다람쥐 인형, 라미를 닮았어."

솔과 연은 우스꽝스레 뚱한 표정을 짓는 송편을 들어 올리며 크게 웃는다.

얼핏 보면 여러 색의 클레이를 주물럭대어 만든 광대를 닮은 듯도 하고..

아무튼 아이들의 들어간, 이목구비를 갖춘 저 떡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듯하다.





어느새 그 많던 떡 반죽은 동이 났고, 깨소는 아이들이 아껴서 넣었는지 반 사발 정도 남았다.

두 접시 가득 쌓인 송편이 찜기에 다 들어가지 않아 세 번에 나누어 차례로 쪄낸다.

집안에 막 쪄낸 고소한 송편 냄새가 흐르고, 찜통에서 새어 나온 희뿌연 증기가 시야를 가릴 즈음..

아이들은 번들한 참기름을 묻힌, 각자의 송편을 골라 손에 들고는 잠시 망설인다.

서로의 손때가 묻은 떡을 요모조모 살피다가, 한입에 먹기 아까운 듯이 야금야금 깨물어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오늘 저녁은 아이들과 함께 만든 한가위 맞이 스페셜 한 송편으로 뚝딱,

해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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