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세요?
오늘의 서울시 아빠단 이벤트는..
오늘의 서울시 아빠단 이벤트는 그 과정을 떠올리기만 해도 꽤나 낯이 간지럽네요.
매주 적극적으로 이벤트를 수행하고 후기를 남기던 열성 아빠들도 이번 이벤트는 난색을 표합니다.
카페의 후기에 담긴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손가락이 오글거렸다, 어색하다, 가족들을 피하고 싶다, 제일로 어려웠다 등등으로 소감을 남겼습니다.
이벤트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각자 자녀와 아내에게 한 단어가 포함된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만 하면 해당 미션은 완수되는 겁니다.
대다수 아빠들을 고난에 처하게 한 그 단어는 다름 아닌 '사랑한다'였습니다.
대체 사랑한다는 말이 뭐가 어때서? 한 집에서 가까이 지내는 가족에게 저 정도 표현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레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티비만 틀면 나오는 아침 드라마나 신파 가득한 국산 영화를 보면 아빠들이 갖은 아양을 떨어가며 저 단어를 남발하던데 현실은 아닌가 보네.
네, 아닙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우리네 가족의 실상과 동떨어진 판타지를 다룬 픽션에 혹한 겁니다. 눈길이 스치기만 해도 뚝뚝 꿀이 떨어지고, 식탁에 앉아 마주 보기만 해도 흐뭇한 웃음이 터지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스크린 위에 그려낸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곁에서 지켜본 대다수 남자들은 한 여자와 눈이 맞아 연애를 하더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데이트 중에 애인이 조르고 조르다가 삐치고 심통 나기 일보 직전에야 마지못해 사랑해..라고 읊조리고는 황망히 눈길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맨 정신에 그 말을 꺼내기 어려운 나머지, 독한 술기운을 빌려 애인의 양 볼을 부여잡고는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따랑해~" 라며 자랑스럽게 외치곤 했지요. 하지만 술이 깨어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진심이 아닌, 가식으로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한창 시기에 연애할 때도 이 모양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아꼈으니, 평생의 연을 만나 결혼에 골인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한다'는 말은 자체 검열을 통해 금기시되는 블랙리스트에 등록되어 버립니다.
어째서 한국의 아빠들은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인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에 인색하고 터부시하는 걸까요? 심지어 말이 아닌 문자 메시지에 담는 것마저 부끄럽다 힘들다 어렵다 여기는 걸까요?
70년대에 태어난 저의 경우를 돌아보면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널 좋아해, 당신을 사랑해라고 가까운 누군가가 살갑게 표현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말이 아니더라도 집 안의 누군가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껴안거나 가벼이 입을 맞추는 등 애정이 묻어나는 행동을 지켜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만약에 제가 어린 시절, 그 집으로 돌아가 밥상에 마주 앉은 젊은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사랑했노라고 뜬금없이 고백할라치면, 쟤가 뭘 잘못 먹었나? 밥 먹다 체하게 요상한 말을 꺼내냐 라며 서먹한 눈빛으로 절 경계하고 멀리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감동한 나머지 절 안아주고 "우리도 널 사랑한단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흐를 수도 있지만, 당시 집안 분위기를 떠올리면 후자일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지요.
그 시절 밥상머리에서 저의 부모님이 서로 눈길이 마주쳤을 때, 시선을 피하거나 뚝뚝 끊어지는 맥락 없는 대화라도 이어지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자칫하면 당장의 힘든 돈 문제가 불거지고, 켜켜이 쌓인 앙금이 다시 떠오르면서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빈번했지요. 덕분에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밥을 먹다가 얹혀서 고생할 적이 잦았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려면 그만큼 받은 사랑이 마음 어딘가에 고여 있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받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자는 가까운 이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기에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부모가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고, 애정이 넘치는 제스처를 자주 보인다면, 그 아이는 자라서 한 가정을 이룬 후에 똑같은 행동을 할 겁니다. 아마도 목마를 때 물을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겠지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복 받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집만 그리 어색하고 생경하고 무뚝뚝한 분위기인가 했는데, 자라면서 다른 친구들 집안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비슷한 풍경이었지요.
물론 세밀하게 확대하면 각자의 집안 사정이야 천지 차이겠지만, 멀리서 지켜보면 비스무리하다는 얘기랍니다.
이 나라의 수많은 아빠들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어려워하고, 때로는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제 과거사를 떠올려 변론을 해봅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얼굴이 붉어지고, 온몸이 굳어지곤 합니다. 그렇다고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에요. 단지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할 줄을 모르는 거지요.
굳이 변명하자면 소싯적에 배운 노자의 도道라 말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이 말이 사랑에도 적용될 만하다고 여겼습니다. 바꿔 말하면 "사랑한다고 입 밖에 꺼낸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그럴듯한 문장이 쓰이네요. 언젠가부터 저는 살가운 표현에 인색한 저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 말을 당당히 입에 담곤 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가까운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대신, 그에 합당하는 진심이 우러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지요.
이도 저도 아닌, 한마디로 개똥철학에 불과한 궤변을 제 행동의 방패막으로 삼아 늘어놓았던 겁니다.
도는 도이고, 사랑은 사랑입니다. 서로 간섭하거나 포함하지 않는 별개의 개념이지요.
노자가 말하는 도가 말로 표현하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면, 사랑은 일부러라도 세치 혀에 올리고 이를 공들여 실천해야만 쌓아 올리는 것이라 빗대고 싶습니다.
매일 아침, 덥수룩한 머리로 거울 앞에 서면 영락없이 무뚝뚝하고 무심하고 완고하기 그지없는 저의 아버지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말없이 뒤돌아 멀어지는 아버지의 그림자.
저마저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늘그막에 아이들과 동떨어져 한 마디 대화 나누기도 힘들고, 한 집에 사는 아내와 각방을 쓰다 끝끝내 결별하는 결말을 맞을 수는 없지요.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는 한 가족과 사이가 멀어지고 틀어지면, 그것만큼 잔인하고 하루하루 버티기 괴로운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부를 일군다 해도 화목한 가정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노년은 공허함으로 치달을 것이고 외로움에 치를 떨 것입니다.
오가는 말이 짧고 적막이 감도는, 전형적인 한국 가정에서 제가 유년기를 보냈다고 해서 후대의 아이들마저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게 할 수는 없지요.
제 아버지의 그늘진 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애써 노력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손편지를 써봅니다. 카톡 메시지는 보내려야 보낼 수 없네요. 아날로그적인 경험을 좀 더 쌓으라는 의미에서 아이들 몫의 휴대폰을 사주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쩔 수 없이 폰을 사주더라도 당분간은 제 필적이 남는 손편지를 자주 쓸 듯합니다.
고심을 거듭하여 거창한 데다 장문의 글을 남길 필요는 없습니다.
편지글에 너무 힘이 들어가면 쓰는 사람도 부담스럽고, 받는 사람은 더욱더 부담스러워요.
그만큼의 답장을 쓰려한다면 시간이 걸릴 것이고, 편지 왕래는 점차 줄어들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 눈에 알아볼 만큼만 형태를 갖춰서, 개발새발 자유로이 흘려 씁니다.
타고난 악필이라 정성을 들이면 필체가 더 무너집니다. 띄어쓰기에 맞춤법은 안중에 없습니다.
단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제 진심을 담기만 하면 됩니다. 건강에 신경 쓰라는 당부와 함께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을 받아두었다는 희소식도 전합니다.
마지막 문구는 "사랑한다! 얘들아~"로 끝맺었네요.
직접 전달하는 것은 재미가 없으니 아이들이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물놀이를 치는 틈을 타, 다람쥐 인형 '라미'의 얼굴에 턱 하니 붙여 놓습니다. 시원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이들이 언젠가 제 손편지를 발견하곤 기뻐할 모습이 떠올라 저 혼자 입을 막고 킥킥 웃음을 흘립니다.
다음에는 포스트잇이 아닌, 틈틈이 모은 엽서 뒷면에 편지글을 남길까 합니다.
아내에게는 카톡으로 메시지를 남겨 봅니다.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난이도가 급상승합니다.
카톡을 열어 마음에 담은 메시지를 적어 내렸지만, 이를 보낼까 말까 한참을 망설입니다.
라이언이 하트가 담긴 광주리를 쏟는 이모티콘을 동봉하면 손발이 덜 오그라들까 싶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네요.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전송 버튼을 터치했습니다.
연애할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살갑다 못해 낯 뜨거운 표현을 즐겨했는데, 한 집에서 맨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만큼 마음의 거리는 저만치 멀어진 것만 같아 손에 쥔 폰을 멀리 치워 버렸어요.
설마 답장이 오겠거니 싶었는데, 뜨끔..
얼마 후에 아내의 뜸 들인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그야말로 경상도 아낙다운 쿨한 메시지가 왔네요.
"그래, 열심히 살자."
그나마 영영 묵묵부답이 아닌 게 어딥니까. 최악의 상황은 무응답에 무플 아니겠습니까.
겉보기엔 차갑고 저 못지않게 무뎌 보이지만, 한 번 정을 주면 시골집 구들장처럼 좀체 식을 줄 모르는 그런 여자랍니다. 앞으로 자주 메시지를 보내고, 손편지도 쓰고 그러다 보면 아내의 닫힌 마음도 살가워질 것이고, 대화도 점점 길어질 겁니다. 그 짧은 글에는 무릇 '사랑한다'는 표현이 담겨야 하겠지요.
잠시 후, 아이들도 제 손편지에 답장을 보냅니다. 달콤한 초콜릿도 함께 첨부했네요.
정이 담긴 초콜릿을 꺼내 맛을 봅니다. 부드러운 밀크티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집니다.
역시나 사랑은 오고 가는 솔직한 표현에 담겨 높이 쌓이고 활짝 피어납니다.
아빠가 편지 잘 받았다고, 고맙다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거실 유리창에 비친 어렴풋한 제 얼굴이 한결 밝아 보입니다.
비스듬히 누운 햇볕을 받아 길게 늘어지는 제 그림자마저 한층 옅어진 듯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손편지. 당연히 헛되이 다루지 않고 영구 보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