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흘러가는 물에는 삶뿐만 아니라..
2021년 6월 26일.
간밤에 비가 띄엄띄엄 내려서인지 관악산 계곡의 물이 더 세차게 흐르고 맑아 보인다.
그리 무덥지 않은 날씨라 그런지 아니면 아빠들이 한 주간 야근한 탓에 유난히 피곤한 날이라 그런지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계곡에 노는 아이들이 듬성듬성하다.
솔과 연은 핑크색 래시가드 하의를 걸친 채 물에 뛰어들어 은빛 물고기를 쫓고 있다.
방금 전까지 건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며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뛰어올라 너도나도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 것을 바라보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 하고는 풍덩 잠자리채를 든 채 뛰어든 것이다.
아이들의 매끈한 다리를 스치듯 미끄러지면서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잽싸게 도망치는 고기 떼들.
이리저리 고기를 낚겠다고 잠자리채를 수면 아래로 휘둘러봐도 아무런 소득 없는 헛방질의 연속이다.
"어이쿠!"
솔은 첨벙거리며 반대편 물가로 뛰어가다가 연초록 이끼가 덮인 자갈을 밟고는 미끄덩 넘어지기도 한다.
이를 보고 연도 언니를 따라 한답시고 일부러 앞으로 자빠져서는 데워진 몸을 식히려 한다.
"깔깔, 끄하하."
엎어져 홀딱 물에 젖은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산이 떠나가라 크게 웃어댄다.
그 바람에 멀리서 한가로이 자맥질을 하던 청둥오리 하나, 푸드덕 기겁하고 윗쪽으로 날아가 버리네.
쨍쨍하던 해가 구름에 가리어진 사이 솔솔 거리며 바람이 불어오고 물살이 가빠지는가 싶더니,
아이들은 잠자리채를 어딘가 내팽개치고 물결을 베고 누워 힘을 빼고는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 참 말갛기도 하네."
솔과 연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응시하다가 다시 물웅덩이를 바라보는데 무언가 둥둥 떠서는 아이들 근처를 맴돈다.
처음엔 비바람을 견디다 못해 떨어진 돌돌 말린 상수리 나뭇잎이나 플라타너스 잎사귀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푼 형태를 가진 몸체에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긴 꼬리가 안테나처럼 달려 있었다.
흠뻑 젖은 털이 몇 갈래 수면 위로 삐죽 솟아있고 저 아래 바닥을 바라보는 콧등 주변엔 수염 몇 올이 쌍을 이루며 돋아 있는 저건, 설마 저것은..
떨리는 발걸음으로 급히 물에 뛰어들어 가까이 다가가 본다.
내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그것은 물에 둥둥 떠 있는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거무튀튀한 쥐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에 빠져 숨을 거둔, 싸늘하게 식은 산쥐의 사체였다.
벌이나 딱정벌레 같은 곤충, 물고기 아니면 개구리의 사체라면 물살에 떠내려가기를 기다리거나, 무시하고 아이들을 그냥 놀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건 못 본 체 하기엔 몸집이 다소 컸고 아이들 곁에 머무른데다 혹시 나쁜 병을 옮기지 않을까(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의 한 장면이 순간 떠올랐다)하는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얘, 얘들아, 거기서 빨리 나와!"
아이들도 심상치 않은 내 표정을 보고 이상하다 싶었는지 아빠의 시선을 따라가다 그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물에서 뛰쳐나오는 아이들.
아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잠자리채를 팽개치고 나오는 바람에 난 물가로 들어가 등을 구부린 채 퉁퉁 불어난 쥐의 사체 곁으로 엉금엉금 다가가 가라앉은 채를 건져내는 수밖에 없었다.
"아빠, 아빠아. 저거 뭐야?"
솔과 연은 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걸 사실대로 말해줘야 하나. 아니면 적당히 둘러대야 하나. 저 위에서 떠내려온 널찍한 나뭇잎 따위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난 사실대로 말했다.
"아마 저 위에서 떠내려온 죽은 쥐 같아."
"쥐, 쥐라고. 으악."
아이들은 잠자리채를 챙기더니 서둘러 그 자리를 뜨려 한다.
"아빠, 너무 끔찍해. 다른 데 가서 놀 거야. 어서 가자."
"응, 그래."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서 달려가고 난 방금까지 신나게 뛰놀던 웅덩이를 바라본다.
"분명히 우리가 처음 왔을 때는 없었는데, 어쩌다가 저리 험하게.."
그 산쥐는 간밤에 쏟아진 비로 인해 불어난 계곡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안타깝게 숨을 거둔 듯했다.
난 가슴에 손을 얹고 성호를 그어 그에게 명복을 빌어 주었다.
아이들이 떠나자 갑자기 주변 모든 것이 생기를 잃어 보였고 그늘이 짙게 깔리었다. 끝없이 흐를 것만 같던 살아있음의 움직임이 그의 곁에서 일순 멈추었고, 거대한 싱크홀이 뚫려 모든 생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멀찍이 바라보던 나마저, 소용돌이치며 저 편으로 끌려가 검은 점으로 사라지는 기나긴 행렬의 끝에 서게 될까 두려워 아이들을 향해 달아나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빠, 근데 어쩌다 그 쥐는 죽은 걸까?"
"언니도 궁금하지? 나도 사실 궁금해."
"글쎄, 지난밤에 물을 건너다 발을 헛디뎠을 수도 있고, 배고파 허기져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더워서 헤엄을 치다 급한 물살에 휘말렸을 수도 있지."
"아빠, 그렇게 죽는 경우도 많아?"
휘둥그레 눈을 뜨고 날 바라보는 아이들.
"응, 많지. 꽤 많단다."
차마 죽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많지 않다고 적당히 둘러댈 수는 없었다. 그동안 내 곁에 머무르거나 스쳐갔던, 가깝거나 먼 생명들의 죽음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릴 적 큰집에서 갓 눈뜬 강아지들을 받아 정 들여 키웠지만, 짧은 명이 다해 아니면 불행한 사고를 당해 곁을 떠난 아이들.
오늘처럼 찌는 듯한 여름날, 군 시절 검문소에서 근무를 서다가 오전에 같이 식사를 했던 헌병 내무반의 새파란 일병이 근처에서 수영을 하다 물살에 휘말려 숨을 거뒀다는 비보를 접하고 온 몸의 힘이 풀리던 그때 그 죽음.
환갑도 맞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죽음. 날 아껴주었던 외조부모, 큰아버지 그리고 또 누군가의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죽음의 행렬.
(에헤여 에헤너 너이가지 넘자 너화 너으이)
어디선가 구슬피 늘어진 상엿가락 끄트머리
흣날려 떨군 바래진 만장 한 자락,
곁을 지나쳐 저 너머 휘적휘적 떠내려가네.
저 계곡에 흘러가는 물은 무릇 살아있는 것들 뿐만 아니라 숨이 다해 죽은 것들도 아래로 아래로 떠내려 보낸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물에 뛰어들어 놀던 중에도 어느 순간 미동도 않은 채 숨을 멈춘 죽음들이 우리 곁을 스쳐가고 때로는 잠시 머무르는 것이다. 언제든 찬란히 빛나는 이 생은 운명의 장난에 의해 불의의 사고에 의해 아니면 기타 수많은 이유로 인해 순식간에 뒤집혀서는 죽음이라는 그늘진 면을 드러내어 둥둥 떠올라 저 아래로 흘러가 버리곤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죽음에 관심이 없다는 듯, 물에 풍덩 뛰어들어서는 어디선가 나타난 하얀 잉어를 잡겠다고 이리저리 첨벙 대다가 어이쿠 자빠지기도 하고 그 틈을 타서 아이 좋다 온 몸을 물에 담그기도 한다.
저 때 묻지 않은 아이들에게 죽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모든 생명은 끝이 있다는 것. 무한하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아빠 또한 언젠가는 곁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려주고 싶다.
부디 그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 받고 고통받지 않기를. 가능한 아무것도 모른 채 티 없이 맑은, 어린 날의 순간순간을 즐겼으면. 불가피하게 깨닫더라도 최대한 지연되어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타인에 가까운 이의 죽음을 의미 없이 스쳐가듯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아빠의 지나친 욕심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생전에 내가 맞이하는 죽음의 유형을 정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물에 가라앉혀 떠내려 보내는 수장水葬이 어떨지 심각히 고민해 본다.
하고많은 장례 중에 하필이면 물에 빠지고 싶다고? 만약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화장이나 매장, 풍장과는 달리 수장은 죽음 이후에도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으니까.
한 곳에 갇히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물살의 힘을 빌려 어디로든 정처 없이 흘러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수초에 말리거나 돌부리에 걸리면 옴짝달싹 못해 물고기 밥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운이 따라준다면 불어난 물살을 타고 깊이 가라앉아 때로는 두둥실 떠올라 기나긴 여행 끝에 저 너른 바다에 다다라 결국은, 썩은 육신이 스러질지 그 누가 알겠는가. 온전한 시신을 수장하기가 어렵다면 화장한 후에 뼛가루를 모아 섬진강 머릿 푸는 느린 물에 흩뿌려준다면 원이 없겠다.
저 물결 따라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난 저 아이들과 물에 뛰어들어 맨살을 스치듯 헤쳐가는 송사리 떼의 은빛 비늘의 눈부심에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순간순간이 못 견디게 소중하고 또 즐겁기만 하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난 이 순간이 너무나 고맙고 행복하다.
에라이 모르겠다. 삶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통 모르겠는데 뭔 눔의 육시럴 죽음 타령은..
이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그때에나 진중하게 고민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