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요즘 산리오 캐릭터에 빠져 있다. 어려서부터 좋아한 '헬로키티'는 최근에는 흥미가 덜한 듯싶다. 분홍 리본을 한쪽 귀에 달고, 수염 세 가닥이 양쪽 뺨에 돋아난 이등신 고양이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둥그스름한 얼굴과 두 귀, 타원형 눈과 코는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74년에 태어난 헬로키티는 얼굴을 아무리 뜯어봐도 입이 없다.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크게 상관치 않았다. 솔과 연은 침묵을 지키는 헬로키티를 대신해 일인이역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고, 인형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어제는 무슨 꿈을 꿨니? 키티는 야옹이 놀이터에서 노는 꿈을 꾸었단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키티야? 난 오늘 참치 통조림이 먹고 싶어. 키티야, 왜 눈물을 흘리고 있어? 같은 반 친구가 나보고 못생겼다고 놀렸어, 흑흑.. 못된 친구로구나, 혼내줘야겠는데..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정을 대입하여 키티와 함께 기뻐하고, 웃다가는 때로는 슬픔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는 인형을 위로하면서 자기 위안을 받곤 했다. 키티는 얼굴을 돌리거나 찡그리지 않고 항상 정면을 바라보았다. 일체의 싫은 내색 없이 아이들의 희로애락이 섞인 모든 감정을 받아 주었다.
요즈음 최애하는 캐릭터들은 '시나모롤'과 친구들이다. 왠지 친구들보다는 그 일당들이라 표현하고 싶다. 시나모롤은 푸른 눈과 불그스름한 뺨을 지닌 귀여운 뭉게구름 강아지다. 매력 포인트인 커다란 두 귀를 펄럭이거나 프로펠러 삼아 돌리면 저 하늘로 높이 날아오를 것만 같다. 온몸이 마시멜로처럼 새하얀 데다 폭신해서 아이들 쿠션으로 대인기란다. 실제로 막내 이모님이 작년에 선물한 '시나모롤 대형 쿠션'은 아이들 침대맡 베개 혹은 애착 인형으로 최애 하는 아이템이다.
아이들이 최애 하는 시나모롤 특대 쿠션
시나모롤 곁에는 개성 넘치는 일당들이 만만치 않은 귀여움과 애교를 뽐낸다. 카푸치노, 모카, 쉬폰, 에스프레소, 밀크, 포롱뿐만 아니라 유니콘 코르네, 코코/넛츠, 아즈키 등 서브 캐릭터도 존재한다. 심지어 시나모롤이 아끼는 냥이와 곰인형까지 캐릭터로 나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각각의 이름은 '시로타로'와 '쿠마상'이라고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 캐릭터 덕질에 빠지게 하는 '산리오'의 세계는 오늘도 무한 확장 중이다.
하나 더, 중요한 캐릭터가 남아 있다. 얼핏 보면 스누피의 동생 뻘되는 듯한 외모를 지닌 귀여운 강아지다. 이름은 '포차코', 헬로키티처럼 이 아이 역시 입이 존재하지 않는다. 새까맣고 기다란 두 귀를 보면 하얀 토끼와도 닮은 외모다. 곁을 따라다니는 병아리와 오리, 토끼, 생쥐 등 친구들 또한 살인적인 어여쁨을 뽐내는데, 중독에 가까운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아이들은 포차코와 친구들을 끊임없이 따라 그리며 그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쥬니어네이버 '스케치북' 갤러리에 올린 포차코 관련 그림만 수십 점이 넘어간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이들이 공들여 그린 작품을 모아, 브런치에 '산리오 캐릭터 특별 스케치 전'을 열어보려 한다.
극에 달한 자본주의 체제는 대중들이 열광하는 산리오 캐릭터의 흥행과 상업성을 간파하고, 일찍부터 수많은 굿즈와 컨텐츠 등을 출시했다. 아이들이 애용하고 즐기는 학용품, 패션 의류, 인형, 과자/빵,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립밤과 같은 화장품, 팝업 스토어, 테마파크까지.. 산리오 캐릭터는 머니와 관련된 모든 분야, 영역에 녹아들어 침투한 상황이다. 얼마 전 어느 카페에 들르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산리오 콜라보 이벤트 음료를 판매 중이었다. 음료 이름은 캐릭터 이름을 본뜬 '폼폼푸린 슈크림플랫치노'. 희한하고 복잡한 이름을 외우기도 힘들고, 주문하는 것도 어려워 카운터에서 헤매다가 '저거 주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더라. 아이들 앞에 놓인 초콜릿 쿠키 조각을 듬뿍 얹은, 요란한 색상의 음료 맛을 보니 달달하면서 끈적하고 불량한 맛이 느껴진다. 솔과 연은 사은품으로 받은 랜덤 스티커를 요리조리 뜯어보며 기뻐하지만, 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음료 가격이 다소 비싸기도 했지만, 엄마, 아빠들의 빈약한 지갑을 노리는 산리오 캐릭터의 장삿속이 더 이상 순수해 보이지도, 이뻐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들의 앙증맞은 외모와 깜찍한 미소가 인위적이고 탐욕적이며, 심지어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건 단순히 나만의 착각일까? 문득 헬로키티의 가닥 난 수염을 쭈욱, 잡아당기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 냥이의 본성을 드러내 숨겨진 발톱을 세워 내 얼굴을 할퀴려나. 키티의 하나뿐인 리본을 빼앗으면 숨은 입을 벌리며 새된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지. 이런 발칙하고 못된 상상을 하는 걸 보니, 난 산리오 캐릭터 덕후가 되긴 힘들겠다 싶다.
롯데마트 토이저러스, 산리오 캐릭터 매장 포토존에서..
이 음료의 이름이 '폼폼푸린 슈크림플랫치노'
어찌 보면 그들의 깜찍한 외모, 표정이 인위적이고 탐욕적이다 못해 일면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