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베란다에서 기르는 여러 식물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보았답니다.
이전에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져 뿌리가 갑갑했던 '홍콩야자'는 당근에서 받은 겨자색(민트색?) 자기 화분에 분갈이를 해 주었어요. 화분 밑바닥에는 루바망을 깔고 배수가 잘 되는 난석 중립을 한 층 받치고, 중간층에는 어항 바닥재로 썼던 중고 소일을 두껍게 깔아 주었지요. 어항 바닥에 쌓인 물고기 사료에 똥에 각종 영양분이 풍부하고 어항 수초가 잘 자라니, 식물 기르기에도 소일이 잘 맞을 거라 생각합니다.
소일만 깔려다가 배수가 너무 잘 되면 흙이 빨리 마르고 쉽게 건조될 거 같아 최상층에는 다이소에서 구매한 상토를 덮어 주었어요. 분무기로 물을 흠뻑 뿌려주니 넉넉한 화분으로 터를 옮긴 '홍콩 야자'가 보다 건강해 보이고 싱그러워 보입니다. 부디 무럭무럭 자라서 대품으로 성장하고, 보기 힘들다는 꽃도 피워 주었으면 해요! 참고로 홍콩 야자 꽃말은 바로 '행운'이랍니다.
수경재배로 키우던 '콜레우스'는 한두 줄기만 남기고는 분리해서 조그마한 화분에 심어 주었어요. 층층이 깔린 흙 성분은 홍콩 야자와 동일하게 구성했습니다. 분갈이가 끝난 화분에는 어항 바닥재에 심어주는 '네오 플랜츠 탭'을 한두 개씩 꽂아 주었어요. 관리 중인 어항이 과밀이어서인지 고체 비료를 한두 개 꽂아주면 물이 깨지면서 구피들이 연이어 용궁을 가더군요. 그 후로는 수초/더치항이 아닌 어항에는 염소 중화제와 박테리아제를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약품, 비료를 자제하려 합니다. 물 생활, 어항에서 쓰이는 물품들이 식물 생활에도 공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물 집사 & 식집사 생활은 자연스레 이어지는 듯해요. 어항의 묵은 물을 화초에 준다던지, 수경재배가 쉬운 스킨답서스나 스파트필름, 몬스테라의 가지를 물꽂이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보다 넓은 화분에 양질의 비료를 주어서인지 홍콩 야자와 콜레우스는 별 트러블 없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콜레우스는 앙증맞은 흰 보라 꽃을 피우며 식집사의 눈을 즐겁게 하네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정성을 쏟은 보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콜레우스 곁에 못 보던 아이가 보이네요. 얼마 전에 입양한 '하월시아 능금'입니다. 그리 날카롭지 않은, 선인장스러운 비죽한 겹잎에 촘촘히 박힌 흰 점 패턴이 매력적인 다육 식물이지요. 장미꽃처럼 겹겹이 잎을 피워 올리는 하월시아 능금은 무더운 여름에 책상 위나 식탁에 놔두면 시원하니 보기 좋은 거 같아요. 잎 사이즈가 더 커지고 층위가 더 올라가면 잎망울 피는 멋이 넘칠 듯합니다.
요즘 베란다의 주인공, 여주는 뭐니 뭐니 해도 바로 '백합'입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성장 속도가 어마 무시하네요. 화분과 뿌리를 제외한 상층부 줄기 높이가 150cm를 훌쩍 넘었습니다. 얼마 전 다이소에서 구매한 대품 철사 지지대를 설치했더니, 한쪽으로 휘지 않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네요. 볕 잘 드는 창가에 놔두었더니 어제부터는 자주색 꽃봉오리가 슬슬 터지려 합니다. 너무 빨리 피고 금세 지는 것은 원치 않아, 꽃이 피고 짐을 천천히 만끽하고 싶어 서둘러 빛이 약한 거실 안으로 옮겼습니다.
작년 여름에도 이렇게 탐스러운 자줏빛 꽃을 두 송이 피워 올렸지만, 올해는 더 높이 자라 더욱 위풍당당하고 곱디고운 '나리꽃'을 피우려나 봅니다.
거실로 옮기고 창문을 닫으니 향기로운 꽃 내음이 실내를 가득 채웁니다. 인공적인 디퓨저, 향수는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할, 자연에서 풍기는 치명적이면서 매혹적인 향기가 지치고 가라앉은 심신을 깨어나게 하네요.
자줏빛 치마폭에 휩싸인 백합꽃은 아직 성숙하고 만개하지 않았는지,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수줍어 고개를 돌리고 달뜬 봉오리를 움츠려 한 걸음 멀어집니다.
순결하고 존엄하고 고귀한, 부끄럼 많은 백합꽃을 훔쳐보는 노골적인 시선을 거두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은근히 바라봅니다. 혹시나 여름밤, 어느 골목에서 숨어 핀 백합꽃과 마주친다면, 너무 깊이 자세히 신상을 캐묻고, 섣불리 뒤따르려 하지 마시길.. 그랬다간 참 나리꽃 아가씨는 앳된 얼굴을 붉히고 황급히 감추고는, 치마폭을 바짝 당겨서 어딘가로 사라질지 모르니까요.
오늘도 잡다한 사설이 길었네요. 여러 식물을 기르고 식집사 노릇을 기꺼이 자청하는 이유는 언제 자라는지 모르게 훌쩍 자라서는, 인간이 감히 창조할 수 없는 신의 피조물이 탄생하는 놀랍고 신비로운 순간을 목격함이 아닐까 합니다. 그 생생하고 짜릿한 장관에 전율이 일고 온몸이 떨립니다.
여러분도 자연 그대로의 식물을 돌보면서 그 순간을 느껴 보시면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