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퇴고

새로운 연재를 앞두고

by 적적

고개 들어 보면 달이 있습니다. 느리게 걷는 것은 습관입니다.

달빛을 보며 뛰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달빛 아래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는데 양반다리를 하고 한 행을 쓰고 달빛 한 번 보고 다시 한 행을 써 내려갑니다.


나를 감싸는 위성은 달이었고 시(詩)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것을 잊거나 혹은 고개를 숙여 한 번도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없더라도 달은 거기 있었고 올려다본 달은 시처럼 빛나고 시처럼 냉담하고 차갑기도 했습니다.


요즈음 시와 나와의 거리는 달과 나와의 거리만큼 멀리 있습니다. 이렇게 멀리 있으니 달은 더 운치 있고 따스하며 자꾸만 보고 싶어집니다.


늦은 밤 공원은 이제 영업을 끝낸 유원지처럼 그네도 멈추고 시소도 가라앉고 한낮이 사라져 수몰 예정지처럼 고요합니다. 잠시 뒤 더 깊은 어둠으로 수몰되어 오늘 이란 이름으로 물에 잠길 것입니다.


사이렌이 울리는 시간까지 공원을 쳐다보며 이주할 곳을 찾지 못한 공원의 원주민처럼 나무가, 그네가, 시소가 또 나무 벤치가 물에 잠길 동안 글을 쓸 것입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공원 밖으로 나옵니다.


공원 밖 길가로 연결된 조경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적당히 식었을 텀블러 뚜껑을 열어 넉넉히 타온 커피를 마시며 담배 연기를 피워올립니다. 공원은 금연 구역입니다.


올려다본 달이 나를 쓰게 하고 그 달빛이 자판 위로 떨어지고 그 빛을 따라 나지막이 읊조립니다. 길고양이처럼 골골거립니다.


나를 돌고 있는 행성은 밤이 되면 나를 떠나지 않고 주위를 서성입니다. 아니 우리는 서로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서로의 위성이 되어주는 일.


노트를 펼쳐 달빛 아래 놓아둡니다.


특별히 달빛이 퇴고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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