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한 순간이 남긴 빛에 관하여
늦은 밤 사거리 건널목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죠. 그냥 습관에 가깝죠.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선이 갈 데가 없어 위로 미끄러질 때가 있는데, 그 자리에 달이 있으면 사람은 잠깐 멈추게 되더라구요. 그날의 달은 유난히 그럴듯했어요.
크기나 밝기 때문은 아니었고,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거기에 배치해 둔 것처럼 보였거든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 설명하기 어려운 적당함이었죠. 그 적당함 앞에서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냈어요. 이 행동에는 이제 의지가 거의 개입되지 않아요. 눈으로 본 걸 남기고 싶다는 욕망은 이미 반사 신경 같은 거니까요.
취기가 조금 오른 눈으로 화면을 들여다보면 하늘은 실제보다 훨씬 멀어 보여요. 뷰파인더 속의 달은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그 달이랑 닮아 있긴 한데, 동시에 전혀 다른 물체처럼 느껴지죠. 셔터를 누르기 직전에는 이미 알고 있어요. 이건 실패할 거라는 걸요. 그리고 실제로 실패하죠.
사진 속의 달은 평범하고, 하늘은 쓸쓸할 정도로 텅 비어 있어요. 그 사진을 누구에게 보낼 생각도 없고, 다시 꺼내 볼 생각도 없으면서 굳이 저장 버튼을 누르죠. 사람의 눈으로 본 달과 기록된 달 사이에는 늘 설명하기 힘든 후회가 남아요.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감각이 넘지 못하는 어떤 문턱 같은 거죠.
낮의 옥상은 밤보다 더 많은 걸 숨기고 있어요. 사무실 옥상에는 공식적인 흡연실 같은 건 없죠. 대신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장소가 하나 있어요. 창문을 반쯤 열고 거기에 서 있으면, 회색 하늘이 눈높이까지 내려와 있죠. 그날도 별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낮달을 발견했어요.
낮에 떠 있는 달은 늘 오해를 불러일으켜요. 저게 정말 달인 지, 아니면 빛을 잃은 태양의 잔상인지 잠깐 헷갈리게 만들거든요. 또 핸드폰을 꺼냈죠. 이번에는 밤처럼 서두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구름은 내 의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더라구요.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이 달을 가렸다가 드러냈다가를 반복했고, 그 몇 초의 어긋남이 계속 이어졌어요.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서 있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했죠.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마다 달은 사라졌고,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손이 늦어 있었어요. 결국 핸드폰을 접었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저기에 떠 있는 게 정말 달일까, 아니면 내가 달이라고 부르고 싶은 무언가일까. 정오에 가까워지는 시간, 태양이 모든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하늘에서 달은 지나치게 조용했어요. 어쩌면 그 조용함 때문에, 나는 저걸 달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죠.
겨울의 태양은 꽤 잔인해요. 낮게 떠 있으면서도 눈을 전혀 배려하지 않거든요.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려고 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바라보려는 시도를 했죠. 눈앞은 바로 하얘졌고, 공간의 윤곽이 무너졌어요.
길도, 신호도, 건물도 동시에 사라진 순간이었죠. 그 상태에서 다시 핸드폰을 꺼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거의 도박 같은 행동이었어요. 보지 못하는 걸 찍겠다는 발상은 정상적인 감각에서는 잘 나오지 않죠. 그때 갑자기 경적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죠.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혹은 아직 남아 있는 질서에게.
사진을 확인했을 때, 거기에는 내가 보지 못한 게 담겨 있었어요. 사선으로 하늘을 가르는 빛 하나가요. 마치 날카로운 칼끝이 스치고 지나간 자국처럼, 화면 한쪽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죠. 그 빛은 태양의 전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우연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분명했어요.
그제야 알겠더라구요. 내가 앞을 분간하지 못하던 그 순간에도, 뷰파인더는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요. 내가 감각을 상실한 바로 그 지점에서, 기계는 작동하고 있었죠.
기록이라는 건 늘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믿어왔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로 생각이 조금 바뀌었죠. 기록은 때로 보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더라구요. 눈이 감각을 거부하는 순간에도, 세계는 계속해서 자기 모습을 남겨요.
우리는 그걸 나중에 확인할 뿐이죠. 사진 속의 빛은 내가 인식한 태양이 아니라, 태양이 나를 지나간 흔적이었어요. 그 흔적을 보며 낮달이 떠올랐죠. 달이 태양을 오해하듯, 나 역시 세계를 계속 오해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달은 스스로 빛난다고 착각하지 않죠. 그냥 빛을 받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사람은 달을 보면서 고독이나 낭만, 기다림 같은 걸 자꾸 투사해요. 특히 낮에 떠 있는 달은 그래요. 태양의 시간 속에 끼어들어 엉뚱한 의미를 덧입게 되죠. 어쩌면 내가 찍으려 했던 건 달이 아니라, 그 오해의 순간이었는지도 몰라요.
밤의 달을 찍을 때마다 실패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거예요. 이미 충분히 본 걸 다시 확인하려고 했기 때문이죠.
보지 못한 순간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묘한 안도감을 줘요. 내가 세계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면서도, 동시에 세계가 나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는 신호 같았거든요. 눈이 멀어버린 찰나에도 남아 있던 빛처럼, 삶에는 늘 그런 잔상이 있어요. 우리는 그걸 나중에 발견하고, 그제야 의미를 붙이죠. 의미는 항상 사후에 도착하니까요.
이제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조금 망설이게 돼요. 찍을 건지, 그냥 볼 건지, 아니면 아예 보지 못한 채로 남겨둘 건지요. 달이 꿈꾸는 태양의 오해처럼, 내 감각도 자주 빗나가요.
그 빗나감 덕분에 기록이 가능해지는 순간도 있더라구요. 정확히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남길 수 있었던 것들. 그런 것들이 쌓여서, 내가 살아온 방향을 은근히 증명해 주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선명한 장면들은, 정작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시간인지도 모르죠.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사진을 확인하듯, 그 시간들을 다시 들여다봐요. 그 안에는 분명히.
놓쳤다고 생각했던 빛이 남아 있거든요.
그냥....그렇다구....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