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우울의 일인용 욕조를 지니고 있다.
누구나 우울의 일인용 욕조 하나쯤은 가지고 있죠. 크기는 다 다른데, 이상하게도 깊이는 비슷해요. 욕조는 집 어딘가에 놓여 있다기보다는, 몸 한가운데, 가장 오래 비워 두었던 방에 설치돼 있죠. 물은 늘 미지근해요. 손을 담그면 온도보다 기억이 먼저 반응하죠.
수면 위에는 사용 설명서 같은 건 없어요. 대신 물이 차오를수록 표면에 얇은 막이 생기죠. 시간이 지나면 그 막은 먼지랑 털을 모아서 작은 섬처럼 떠다니고요. 욕조는 혼자 쓰라고 만들어진 거죠. 둘이 들어가면 물이 넘치지는 않아요. 대신 이유 없는 침묵이 바닥으로 가라앉죠.
욕조 가장자리에는 손자국이 남아 있어요. 누군가 오래 붙잡고 있었던 흔적이죠. 붙잡는다는 행위는 늘 미세해요. 힘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의 문제니까요. 몇 분을 버텼는지, 몇 초를 미뤘는지가 손바닥 주름을 바꿔 놓죠.
주름 사이로 물이 스며들고, 살은 천천히 부풀어 오르죠. 그 과정에서 감각이 제일 먼저 빠져나가요. 통증도 아니고 기쁨도 아닌, 구분하는 능력부터 사라지죠. 욕조는 그런 순서를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가장 깊은 곳에 가장 얕은 생각들이 모이죠.
물에 오래 잠겼다 나온 사람들처럼, 감각은 빠져나가고 표정만 남은 손들이 있어요. 차가워서라기보다는 망설임 때문에 그렇게 부풀어 오른 것 같죠. 뭔가를 꼭, 끝내 붙잡아 버린 흔적처럼요. 그래서 그 손들은 서로를 피하죠. 다시 젖을까 봐서가 아니라, 다시 느끼게 될까 봐요.
욕조의 물은 말을 안 해요. 대신 표면이 말하죠. 표면은 늘 솔직해요. 아주 작은 떨림도 숨기지 못하죠. 누군가 다리를 움직이면 그 흔들림이 벽을 타고 돌아와 발목을 스쳐요. 그때 사람들은 물이 차갑다고 말하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물이 묻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 남을지, 나갈지. 물은 선택을 요구하지 않죠. 다만 흔적을 남길 뿐이에요. 떠난 뒤에도 욕조 바닥에는 앉았던 자리가 조금 더 늦게 마르죠.
욕조 옆에는 수건이 있어요. 한 번도 쓰지 않은 수건과 이미 젖은 수건이 겹쳐 놓여 있죠. 둘의 차이는 손끝으로 만져보기 전까지는 잘 안 느껴져요. 젖은 수건은 무게가 있어요. 그 무게는 책임이랑 좀 비슷하죠. 들어 올리는 순간, 팔꿈치가 먼저 반응해요. 관절은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니까요. 수건을 거는 고리는 늘 하나가 남아요. 비어 있는 고리는 선택의 잔여물처럼 흔들리죠.
욕조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은 손을 씻어요. 씻는다는 말은 깨끗해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뭔가를 남기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죠. 그런데 물은 흔적을 좋아해요. 손톱 밑에 남은 어제의 흙, 반지 안쪽의 미세한 긁힘, 오래된 상처가 불러오는 방향 감각 같은 것들요. 그런 것들은 씻겨 나가지 않죠. 대신 물속에서 더 또렷해져요. 그래서 욕조 안에서는 손이 자주 멀어지죠. 서로를 피하는 손들이요. 물속에서는 가까움이 곧 노출이 되니까요.
감각은 늘 책임을 데리고 와요. 차가움인지 온기인지를 구분하는 순간, 무언가를 사랑했다는 사실도 같이 떠오르죠. 하얗게 부풀어 오른 끝마디는 그걸 미루고 있어요. 아직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는 얼굴로, 이미 모든 걸 잃어본 사람처럼요.
욕조의 배수구는 작은 구멍이지만, 그 안에는 시간표가 숨어 있죠. 마개를 열면 물은 서두르지 않아요. 항상 같은 속도로만 내려가죠. 이 속도는 되돌릴 수 없어요. 손을 넣어 막아 봐도 물은 다른 길을 찾아가죠. 배수구 주변에는 늘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요. 소용돌이는 결론을 흉내 내지만, 결론은 아니죠. 그건 그냥 상태의 변화예요. 중심을 향해 모였다가, 중심을 비워 둔 채 사라지죠.
욕조 벽에는 얇은 선들이 남아 있어요. 물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높이의 기록이죠. 어떤 날은 여기까지 차올랐고, 어떤 날은 그보다 낮았어요. 그 선들은 감정의 그래프가 아니라 흔적의 연대기예요. 반복은 여기 있죠. 같은 높이, 같은 시간, 같은 미온. 하지만 매번 다른 손이 벽을 짚어요. 다른 주름, 다른 망설임이죠. 반복은 감정을 키우지 않아요. 반복은 표면을 닳게 하죠.
욕조를 빠져나오면 몸은 가벼워져요. 하지만 가벼움이 곧 자유는 아니죠. 물을 털어내는 동작은 늘 과장돼요. 어깨를 한 번 더 흔들고, 발끝을 바닥에 두 번 찍죠. 타일 위에 남은 물방울은 잠시 후 사라져요. 그런데 사라지는 방식은 제각각이죠. 어떤 건 가장자리부터 마르고, 어떤 건 중심이 먼저 흐려져요. 사라짐에도 습관이 있죠.
누구나 우울의 일인용 욕조를 지니고 있다는 말은, 누구나 혼자만의 물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누구나 자기만의 수위, 자기만의 온도, 자기만의 배수 속도를 안다는 말에 더 가깝죠. 욕조는 움직이지 않아요. 대신 사람의 하루가 그 주변을 돌죠. 문을 여닫는 소리, 불을 켰다 끄는 리듬, 수건이 마르는 시간. 이런 것들이 욕조의 하루를 만들어요.
마지막에 남는 건 결론이 아니죠. 물이 빠진 자리의 습기, 손끝에 남은 희미한 주름,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타일의 차가움이에요. 다시 채울 수도 있고, 그냥 둘 수도 있는 상태죠. 욕조는 비어 있지만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아요. 물이 있었던 자리가 아직 기억을 붙잡고 있거든요. 그래서 손은 잠시 멈춰요. 잡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요.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죠.
그냥... 그렇다고...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