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간이 들어오지 않는 장소.

by 적적


그 가게는 번화가에서 한 블록쯤 비켜난 골목에 있다. 사람들이 일부러 찾지는 않지만, 방향을 잘못 든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지나치게 되는 위치다. 편의점 간판의 흰 불빛이 닿지 않는 지점, 보도블록이 미세하게 갈라지기 시작하는 구간. 가게 앞에 서면 휴대전화의 신호가 잠시 약해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지연이다. 유리문에는 간판 대신 얇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습기를 먹어 가장자리가 말려 있고, 종이를 고정한 테이프는 이미 본래의 투명함을 잃었다. 그 위에 연필로 눌러쓴 문장 하나가 남아 있다.



필요 없는 풍경은 사절합니다.



문장은 정중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다. 다만 오랫동안 수정되지 않은 문장처럼 단정하다. 이 문장을 읽고도 문을 여는 사람들은 대개 필요가 아니라 충동에 가깝다. 소유가 아니라 훔침에 가까운 어떤 욕망 때문이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 경첩이 기름칠된 탓이 아니라, 소리가 나기 전에 삼켜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냄새가 먼저 몸에 닿는다. 오래된 종이가 습기를 머금은 냄새, 비가 그친 뒤 아직 마르지 않은 시멘트 바닥의 냄새,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금속성의 차가운 기운이 겹쳐 있다. 조명은 낮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은 늘 절반쯤만 켜진 상태처럼 보인다.

빛은 벽에 닿기 전에 힘을 잃고, 바닥에는 그림자가 아니라 얼룩처럼 남는다. 벽에는 액자가 걸려 있다. 크기도, 색도 제각각이지만 액자 안에는 사진이 없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은 약간 누렇게 변색된 흰 종이뿐이다.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오래 머문다. 무엇이 빠져 있는지 확인하려는 표정으로.



가게 안에는 진열장이 없다. 대신 허리를 굽혀야 볼 수 있는 낮은 테이블들이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놓여 있다. 테이블 표면에는 잔흠집이 많고, 어떤 것은 컵 자국처럼 둥근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 위에 작은 봉투들이 놓여 있다. 봉투는 크래프트지로 만들어졌고, 손끝에 거친 감촉이 느껴진다. 봉투 앞면에는 가격 대신 날짜가 적혀 있다. 잉크가 아니라 연필이다. 숫자는 정확하지만 깔끔하지 않다.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말을 걸면 대답할 사람이 없는 구조다.



계산대처럼 보이는 곳에는 오래된 시계 하나가 놓여 있다. 유리에는 미세한 금이 가 있고, 초침은 멈춰 있다. 분침과 시침은 애초에 움직인 적이 없다는 표정이다. 사람들은 이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이 공간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다. 종이를 꺼내도 사진은 없다. 대신 장면이 있다.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만 확인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비가 오기 직전, 운동장 위에 드리워진 바람의 방향. 철봉에 매달린 채 손바닥이 아파오기 전까지의 짧은 공백.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낯선 얼굴과 시선이 엇갈리던 1초 남짓의 시간. 그것들은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하려는 순간, 장면은 다른 것으로 바뀐다. 색이 달라지거나, 소리가 빠지거나, 이유가 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봉투를 열어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장면보다 늦게 도착하고, 이곳의 풍경들은 그 지연을 견디지 못한다.



이 가게에서 풍경은 소비되지 않는다. 가져갈 수는 있지만 소유할 수는 없다. 봉투를 접어 주머니에 넣는 순간, 장면은 이미 조금 변형된다. 기억과 닮아가지만 기억은 아니다. 집에 돌아와 봉투를 다시 열어보면, 어떤 부분은 과도하게 선명해지고, 어떤 부분은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 흔적만 남는다. 그 흔적은 물건이 아니라 생활의 리듬에 붙는다. 이유 없이 느려진 저녁, 평소보다 오래 끓인 물, 켜지지 않은 채 남겨진 스탠드,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굳이 닫지 않는 선택 같은 것들로.



사람들은 종종 이 가게를 위로의 장소로 오해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로가 없다. 위로는 말을 필요로 하고, 말은 정리를 요구한다. 이 가게의 풍경들은 정리되는 순간 다른 것이 된다. 해답도 없다. 해답은 선택을 강요하지만, 이곳의 장면들은 선택 이전의 상태에 머문다. 이미 지나갔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지점. 이름 붙이기 전, 의미가 고정되기 전의 상태다. 그래서 이곳에서 오래 머물수록 사람들은 점점 말을 줄인다. 말 대신 손의 움직임이나 호흡의 속도가 먼저 변한다.



가게 한쪽에는 유난히 얇은 봉투들이 있다. 손에 들면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 안에는 특정한 장면이 들어 있지 않다. 공백에 가깝다. 주인은 그것을 가장 비싼 풍경이라고 말한다. 공백은 가장 오래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그것을 사지 않는다. 이미 본 것, 혹은 본 적이 있다고 믿고 싶은 것만을 훔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것, 끝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은 늘 남겨진다. 그 남겨짐이 가게를 유지시키고, 공간의 온도를 일정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반복되는 것은 특정한 감정이 아니다. 대신 동작이 반복된다. 봉투를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는 손. 문 앞에서 한 번 더 안쪽을 돌아보는 고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가면서도 주머니를 확인하는 습관. 그것들은 감정이라기보다 흔적에 가깝다. 이 가게를 다녀간 사람들의 생활에 남은 미세한 각도 변화다. 의자는 늘 놓던 방향에서 조금 틀어지고, 하루는 어제보다 설명 없이 길어진다.



밖으로 나오면 골목은 변한 것이 없다. 같은 가로등, 같은 차량 소음, 같은 속도의 사람들. 하지만 막 나온 사람들은 금세 알아차린다. 무엇인가 이미 달라졌다는 것을. 그것은 상실도 아니고, 획득도 아니다. 단지 하나의 풍경이 삶 어딘가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치울 수 없게. 그 풍경은 종종 불필요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 일도 없는 오후, 갑자기 길어진 그림자 속에서.



그 가게가 언제 문을 닫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닫혔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날에는 이유 없이 하루가 느려지고, 특정한 장면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잠시 생각한다. 훔쳤던 풍경이 아직 남아 있는지, 아니면 이제 막 도착했는지를.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확인할 방법도 없다.



가게는 그렇게 존재한다. 사라지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보이지도 않게. 누군가의 하루 한가운데에, 설명되지 않은 채로. 문장은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려 애쓴다. 더 말하지 않기 위해, 더 닫지 않기 위해. 풍경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훔쳐졌는지.



되돌려졌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로.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