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을 훔치지만 끝내 소유하지 못하는 것들
귓바퀴 위에 걸쳐진 작은 금속은 완전하게 닫히지 않는다. 고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틈을 전제로 한 장치다. 귓불을 뚫지 않고도 장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어커프는 한없이 관대해 보이지만, 동시에 조금만 고개를 기울여도 떨어질 것 같은 불안을 숨기고 있다. 단단히 고정된 귀걸이와 달리, 이어커프는 귀의 곡선을 잠시 빌려 기대어 있을 뿐이다. 살과 금속 사이에는 미세한 긴장이 흐른다. 그 긴장이야말로 장식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종이 위에 단단히 박힌 활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언제라도 미끄러질 수 있는 상태로 서 있다. 의미라는 귓바퀴에 기대어 잠시 머물고 있을 뿐이다. 한 문장이 다음 문장에 닿기 전, 아주 얇은 틈이 생긴다. 그 틈에서 소리가 난다. 귀에 직접 꽂히지 못한 말들이 공기 중에서 부유하다가, 겨우 귓바퀴의 굴곡에 걸려 멈춘다. 이어커프가 귀의 가장자리를 더듬듯, 문장은 의미의 가장자리를 서성인다.
귓바퀴는 생각보다 복잡한 지형이다. 나선처럼 말려 들어가며 안쪽의 어둠으로 이어진다. 그 어둠은 바다의 소용돌이처럼 조용히 모든 소리를 끌어당긴다. 이어커프는 그 소용돌이의 입구에 걸려 있는 작은달이다. 금속은 체온을 받아 미묘하게 데워지고, 피부는 그 온기를 경계하면서도 받아들인다. 장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피부 위에 얹힌 순간,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 된다.
문장 역시 사건이다. 누군가의 눈에 닿는 순간, 그 안에서 온도가 변한다. 활자들은 잉크의 차가움을 유지한 채 놓여 있지만, 읽히는 순간 체온을 얻는다. 의미는 항상 약간의 체온을 요구한다. 체온을 얻지 못한 문장은 차갑게 식어, 이어커프가 떨어지듯 종이 위에서 미끄러진다.
이어커프를 처음 착용하던 날의 감각은 유난히 또렷하다. 거울 앞에서 고개를 좌우로 기울이며 금속이 떨어지지 않는지 확인하던 순간, 귀 주변의 근육들이 미세하게 긴장했다. 마치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 그러나 몇 분이 지나자 그 이물감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금속은 피부의 온도를 닮아가고, 피부는 금속의 냉정을 받아들인다. 서로를 완전히 소유하지는 못한 채, 잠시의 공존을 허락한다.
처음 써 내려간 문장은 언제나 낯설다. 종이에 남은 글자는 아직 체온을 얻지 못한 금속 같다. 몇 번이고 읽고, 고쳐 쓰고, 지우고 다시 붙이며 문장은 귀에 맞는 각도를 찾는다. 조금만 기울어도 떨어질 것 같은 불안 속에서, 간신히 자리를 잡는다. 완벽하게 고정된 문장은 어딘가 의심스럽다. 너무 단단히 박힌 귀걸이처럼, 그 안에는 숨 쉴 틈이 없다.
이어커프의 매력은 완결되지 않음에 있다. 고리는 닫히지 않고, 살짝 벌어진 틈이 있다. 그 틈은 장식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완전하지 않기에, 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다. 그 불안이 금속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문장 역시 완결을 가장한 미완의 구조다. 마침표는 닫힌 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불과하다. 마침표 뒤에는 항상 여백이 있고, 그 여백은 귓바퀴 안쪽의 어둠처럼 깊다.
귓바퀴에 닿는 바람은 생각보다 민감하다. 작은 진동에도 금속은 미세하게 흔들린다. 흔들림은 소리를 낳는다. 들리지 않을 만큼 작지만, 분명 존재하는 소리. 문장도 마찬가지다.
눈으로만 읽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귀로 울린다. 소리 내어 읽지 않아도 문장 안에는 음성이 잠복해 있다. 이어커프가 귀의 형상을 따라 빛을 반사하듯, 문장은 마음의 굴곡을 따라 반향 한다.
불안은 언제나 경계에서 생긴다. 이어커프는 귀걸이와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에 있다. 장식이지만, 완전히 고정되지 않는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말과 침묵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다.
너무 많은 설명은 문장을 무겁게 만들어 떨어뜨리고, 너무 적은 설명은 문장을 허공에 남긴다. 적절한 긴장, 적절한 틈. 그 사이에서 문장은 겨우 버틴다.
어떤 날에는 문장이 너무 쉽게 떨어진다. 고개를 살짝 숙였을 뿐인데, 이어커프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지듯, 공들여 쓴 문장이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흩어진다. 그 순간의 공허는 이상하게도 또렷하다. 금속이 타일 바닥에 닿을 때의 차가운 소리처럼, 실패한 문장은 마음 어딘가를 단단히 때린다.
그러나 다시 주워 올린다. 바닥에 떨어진 이어커프를 집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금속은 여전히 빛난다. 떨어졌다고 해서 그 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장도 그렇다. 지워진 문장, 버려진 문장,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은 문장들. 그것들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빛을 품고 있다. 다만 귀에 맞는 각도를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귓바퀴는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컨디션에 따라 붓기도 하고, 체온에 따라 색이 변하기도 한다. 이어커프는 그 미묘한 변화를 고스란히 감지한다. 어제는 편안하던 각도가 오늘은 불편하다. 문장 역시 매일 달라진다. 어제는 옳다고 믿었던 표현이 오늘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보인다. 어제는 담백하다고 여겼던 문장이 오늘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문장은 언제나 불안하다. 이어커프처럼,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 귀에 걸려 있으나 귀의 일부는 아니듯, 문장은 생각에 기대어 있으나 생각 그 자체는 아니다. 말은 생각의 장식일 뿐이다. 장식은 본질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리기도 한다. 이어커프가 귓바퀴의 결을 따라 빛을 더하듯, 문장은 생각의 윤곽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빛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이어커프를 낀 채 잠이 들면, 아침에 사라져 있는 경우가 있다. 베개 어딘가에 묻혀 있거나,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 있다. 밤새 무의식의 움직임 속에서 금속은 제 자리를 잃는다. 문장도 그렇다. 잠들기 전에는 완벽하다고 믿었던 문장이, 아침이 되면 낯설어진다. 밤의 체온과 낮의 체온은 다르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말은 햇빛 아래서 빛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귀에 건다. 다시 쓴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불안 덕분에 긴장이 생긴다. 이어커프는 완벽하게 고정되지 않기에 아름답다. 문장도 완벽하게 닫히지 않기에 살아 있다. 완결된 문장은 박제된 곤충처럼 유리 안에 갇히지만, 약간의 틈을 가진 문장은 여전히 숨을 쉰다.
이어커프는 귓바퀴의 가장자리에 매달린 작은 별처럼 보인다. 밤하늘의 별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듯, 그 빛은 늘 흔들린다. 문장도 별과 같다. 의미의 어둠 위에 잠시 떠 있다가, 읽히는 순간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진 자리에 잔광이 남는다. 그 잔광이 다음 문장을 부른다.
불안은 결핍이 아니라 구조일지도 모른다. 이어커프가 틈을 전제로 설계되었듯, 문장 역시 완전하지 않도록 만들어진다. 완전함은 오히려 읽는 이를 밀어낸다. 작은 틈이 있어야 손가락이 들어가고, 숨이 스며들고, 체온이 닿는다.
귓바퀴 위의 금속이 가끔은 살을 살짝 누르며 자국을 남기듯, 문장도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자국은 사라지지만, 눌렸던 감각은 오래 남는다. 이어커프를 빼낸 뒤에도 귀는 한동안 그 무게를 기억한다. 문장을 다 읽은 뒤에도 마음은 한동안 그 리듬을 기억한다.
문장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고리처럼, 언제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상태로 걸려 있다. 그러나 그 불안 덕분에 빛난다. 귓바퀴의 곡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금속처럼, 문장은 의미의 가장자리에 걸려 흔들린다. 떨어질지 모른다는 예감이 오히려 그것을 붙들어 둔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매번 귀에 맞는 각도를 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완벽히 고정되는 순간을 의심하고, 약간의 틈을 남겨 두는 일. 이어커프가 귓바퀴에 기대어 잠시 빛을 얻듯, 문장도 생각에 기대어 잠시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그 잠시의 긴장 속에서, 불안은.... 비로소.
하나의 미학이 된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