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풋-
이렇게 부른 이유를 더듬어 올라가면, 아마 어느 봄날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을 거예요.
귀농한 친구가 보내온 사진이죠.
화면은 조금 푸르게 식어 있었어요. 초점은 바짓단에서 살짝 흔들리고 있었죠. 낡은 작업복은 빛을 잃은 회색으로 말라 있었고, 바짓단 실밥은 군데군데 풀려 작은 털처럼 일어섰어요. 털어내지 못한 흙이 천에 눌어붙어, 계절이 마르지 못한 채 굳어버린 느낌이었죠.
그는 동네 사람들의 냉대가 힘들다고 했어요. 말은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 속 먼지 같은 것이 가라앉아 있었죠. 목구멍을 한 번 긁고 나서야 나올 법한 문장들이, 아무 일 아니라는 얼굴로 건너왔어요.
그가 보내온 사진 속, 바짓단 아래. 흙과 천이 맞닿는 경계에서 작은 꽃 하나가 피어 있었죠.
흙을 밀어 올린 것도, 바람에 기대 선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거기에 있다는 식으로,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는 표정으로요. 손톱만 한 잎 두 장이 서로를 떠받치듯 벌어져 있었고, 사이로 연둣빛이 얇게 스며 있었죠. 아직 햇빛을 충분히 삼키지 못한 색이었어요.
꽃 이름이 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죠.
바짓단 꽃.
그렇게 부르기로 했던 것 같아요.
바짓단은 가장 낮은 자리예요. 몸의 끝, 땅에 가장 가까운 자리죠. 흙과 닿아 젖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가장 먼저 해지는 부분이에요. 발걸음이 멈출 때마다 바람과 물기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자리죠.
그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라면, 잘 다듬어진 흙이 아니라, 발에 밟히는 자리예요. 돌멩이와 마른 뿌리 사이, 아직 겨울 냄새가 남은 땅에서요.
완성된 봄의 꽃이 아니라, 아직 덜 익은 계절의 신호예요.
그해 차가운 봄, 우리는 그렇게 불렀죠.
봄은 늘 접두사처럼 와요.
풋봄.
‘풋’이라는 소리는 단독으로 서지 못해요. 입술이 한 번 닫혔다가, 짧게 튕겨 나온 공기가 곧바로 다음 말을 향해 미끄러지죠. 풋사랑, 풋내, 풋고추. 덜 익은 상태, 어설픈 상태예요. 하지만 그 어설픔은 실패가 아니라, 시작의 다른 이름이죠.
홀로 완결되지 못하는 말은 언제나 뒤를 기다려요. 스스로를 증명하기보다, 다음 말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죠. 접두사는 앞에 붙어 자신을 희미하게 만들면서, 문장의 방향을 미세하게 틀어요.
‘풋’에서 잠시 멈추면 입 안에 찬 공기가 고이고, ‘봄’에서 둥글게 풀려요. ㅗ 모음은 깊고 낮아, 긴장을 감싸 안죠. 마치 차가운 바람 속, 어깨를 둥글게 웅크리는 몸처럼요. 봄이라는 소리는 완성을 선언하지 않아요. 다만 조금 느슨한 호흡을 허락하죠.
늦가을은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계절이고, 한겨울은 차가움을 완성한 얼굴로 서 있어요. 한여름은 모든 걸 태울 듯 충만하죠. 계절들은 각자의 극점에 닿아 있어요.
하지만 봄만은 아직 자신의 얼굴을 갖지 못한 채 서 있어요. 차가움이 완전히 물러나지도 않았고, 따뜻함이 충분히 차오르지도 않은 상태예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 위에서 머뭇거려요.
그래서 봄은 명사라기보다 접두사에 가까워요. 완성된 계절이 아니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죠. 형태를 갖추기 직전의 숨이에요.
귀농한 친구의 사진 속 공기는 아직 서늘했겠죠. 비닐하우스 비닐은 바람에 얇게 울고, 논두렁 물은 햇빛을 받지 못한 채 탁하게 고였을 거예요. 동네 시선은 길게 머물지 않았겠죠. 흙은 손톱 밑으로 파고들어 검게 남았고요. 그가 말한 냉대는 아마 말보다 침묵에 가까웠겠죠.
환영받지 못한 몸은 자연스럽게 작아져요. 발걸음은 바닥을 더 오래 더듬고, 어깨는 안으로 말리고, 목소리는 스스로를 낮춰요. 숨소리조차 주변 온도를 살피죠.
그런데도 바짓단 아래 작은 꽃이 피어 있었어요.
그 꽃은 계절의 선언이 아니었죠.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표정도 아니고요. 다만 흙 속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와 있을 뿐이에요.
접두사는 앞에 붙어요.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뒤에 오는 말을 준비시키죠.
봄은 그렇게 사람 삶 앞에 붙어요. 봄이 붙은 시간은 연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열려 있어요. 아직 닫히지 않은 문, 굳지 않은 흙처럼요.
봄날 마을을 떠올려보세요.
논두렁에는 물이 얕게 고이고, 물 위에는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잔물결로 남아요. 비닐하우스 위에는 햇빛이 얇게 번져, 투명한 막을 한 겹 더 씌워요. 공기는 아직 차갑지만, 삽날이 흙을 가를 때마다 속에서 김이 오르죠. 겨울 품던 흙이 안쪽부터 조금씩 풀려요.
덜 익은 것들은 늘 불안해요.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 같고,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해 흔들려요. 풋사랑은 계산하지 못해 서툴고, 풋청춘은 확신 없어 자주 멈춰요. 그러나 그 서툼과 흔들림 속에서만 빛이 있어요. 완성된 사랑은 안정적이지만 더 이상 떨리지 않고, 완성된 여름은 풍요롭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죠.
덜 익은 상태는 미완이 아니라, 열려 있는 상태예요. 형태가 굳지 않았기에, 다른 모양도 받아들일 수 있죠.
경계에 서 있다는 건, 아직 한쪽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바짓단 꽃은 그래서 봄의 다른 이름처럼 보여요. 낡은 천 끝에서 피어난 작은 생명, 냉대와 흙먼지 사이에서 올라온 연둣빛. 바람이 스치면 금세 기울 것 같다가도, 다시 제 무게로 서 있는 잎이죠.
그건 거창한 희망이 아니에요. 다만 사소한 지속이에요.
아직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미, 아직 여기서 자라 볼 수 있겠다는 몸의 작은 결심이죠.
접두사는 작아요. 하지만 그 작은 말이 문장의 방향을 바꿔요.
봄은 완성의 계절이 아니에요. 아직 덜 익어 있어도 괜찮은 시간이고, 아직 어설퍼도 괜찮은 상태죠.
차가운 바람이 불던 날을 풋봄이라 부르면, 그날은 단순한 추위가 아니라 문턱이 돼요. 흙이 완전히 마르지 않았고, 바람이 여전히 옷깃을 파고들어도,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연둣빛이 몸을 밀어 올려요.
바짓단에 묻은 흙은 그대로 있고, 실밥은 여전히 풀려 있어요. 그 아래 꽃은, 더 크게 피려 하지도, 눈에 띄려 하지도 않은 채, 그저 조금 더 위로 자라요.
아직 덜 익어 있어도 괜찮은 시간.
아직 어설퍼도 괜찮은 상태.
그 아래에서 꽃은, 더 크게 피려 하지도, 눈에 띄려 하지도 않은 채,
그저 조금 더 위로 자라요.
작은 꽃은 피어날 수 있죠. 그 순간, 봄은.
우리들의 접두사가 되곤 하죠.
그냥 그렇다고...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