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추위를 지나 이름이 된다.
‘꽃샘추위’라는 말을 가만히 입안에서 한 번 굴려보면 묘한 냄새가 나요. 아직 피지 않은 것의 냄새말이죠.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하늘은 얇은 유리판처럼 맑은데, 그 투명한 막 안쪽 어딘가에서 분홍이랑 흰색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눈으로 본 건 아닌데도, 이미 본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 있죠.
사전에서 ‘꽃’을 찾으면 식물의 번식 기관이라고 적혀 있을 거예요. 건조하고 정확한 문장이죠. 그런데 ‘꽃샘추위’ 속의 꽃은 그렇게 얌전히 정의 속에 앉아 있지 않아요. 거기 있는 꽃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대신해서 먼저 와 있는 기척 같아요. 추위의 목덜미를 붙잡고 “이제 그만 물러나라”고 속삭이는, 그런 예고편 같은 존재죠. ‘꽃샘’이라는 말도 가만히 뜯어보면 재미있어요. 사실은 “꽃을 시샘하는”이라는 긴 문장을 꾹 눌러 접어 넣은 거잖아요.
겉으로는 두 음절뿐인데, 그 안에 동사도 들어 있고 감정도 들어 있어요. ‘샘하다’는 질투한다는 뜻이죠. 차가운 공기가 꽃을 질투한다는 발상, 겨울이 봄을 못마땅해한다는 상상. 언어는 이렇게 계절을 사람처럼 만들어버려요. 자연을 인간의 감정으로 번역해 버리죠. 그러니까 여기서 꽃은 그냥 식물이 아니에요. 아직 피지도 않았는데 이미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린 존재죠.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질투를 유발하는 것. 생각해 보면, 그 자체로 꽤 대단한 일이에요. 이쯤 되면 문법도 조금 흔들려요. 명사는 원래 사물을 고정하는 장치잖아요. 이름 붙이고, 붙잡아두는 역할. 그런데 ‘꽃샘추위’의 꽃은 고정되기를 거부해요. 관형어처럼 뒤의 추위를 꾸미는 것 같다가도, 어딘가 서술어의 그림자를 길게 끌고 다니죠. “꽃을 시샘하는 추위.” 이 긴 문장이 압축되면서 문장은 사라지고 관계만 남아요. 말은 짧아졌는데, 오히려 장면은 더 또렷해지죠.
봄이 오기 직전의 골목을 떠올려보면 그래요. 아스팔트는 아직 밤의 냉기를 붙들고 있고, 가로수 가지는 마른 손가락처럼 허공을 긁고 있죠. 그런데 그 끝에 작은 혹들이 매달려 있어요. 꽃눈이죠. 잘 보이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가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무언가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요.
꽃은 실재라기보다 예감이에요. 사람들은 여전히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지만, 옷깃 사이로 설명하기 어려운 가벼움이 스며들죠. 기온은 그대로인데, 마음의 체감온도는 조금 달라져요. 꽃은 피지 않았는데도 이미 공기를 바꿔놓고 있어요. 존재하기 전에 먼저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게 꽃이라는 말의 이상한 힘이에요.
‘꽃’을 품은 단어들은 대체로 기다림을 닮아 있어요. 꽃망울은 터지기 직전의 숨을 참고 있고, 꽃눈은 껍질 안에서 계절을 세고 있죠. 꽃소식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 같아요.
지금 발음되지만, 사실은 조금 뒤를 가리키는 말들. 꽃은 늘 지금보다 약간 늦게 도착하죠. 바로 그 간격이 사람을 붙잡아요. 사람은 이미 지나간 것보다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더 오래 매달리잖아요. 피어 있는 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피기 전의 꽃은 마음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어요. 상상은 늘 실제보다 과장되죠. 그래서 아직 피지 않은 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꽃길’이라는 말도 그래요. 현실에서 꽃잎이 흩날리는 길을 걷는 날은 많지 않죠. 그런데도 누군가의 앞날을 축복하면서 “꽃길만 걷자”고 말해요. 그때의 꽃은 바닥에 깔린 물질이 아니라 시간 위에 펼쳐진 기대예요. 꽃은 현실이라기보다 약속에 가까워요.
하지만 기다림이 항상 보상받는 건 아니죠. 꽃샘추위가 길어지면 꽃은 늦게 피거나 상해버리기도 해요. 기대가 길어질수록 실망도 함께 자라요. “꽃 같은 시절”이라고 말할 때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가리키죠. 피어 있는 순간은 짧고, 대부분은 피기 전이거나 진 뒤예요.
절정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소멸의 예고예요. 그래서 꽃을 품은 말들은 늘 양가적이에요. 설렘이랑 불안이 같이 들어 있어요. 기대와 예감이 동시에 작동하죠. 꽃샘추위 속의 꽃도 그래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사라질 운명을 함께 품고 있어요. 시작과 끝이 한 몸처럼 붙어 있는 단어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괜히 하늘을 올려다보게 돼요. 분홍빛이 어디선가 번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보이지 않는데도 더 또렷해요. 부재가 상상을 자극하니까요.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죠.
‘꽃’은 명사지만, 사실은 작은 서사의 씨앗 같아요. 뒤에 오는 말을 단순히 꾸미는 게 아니라, 그 말의 시간을 바꿔버리죠.
‘꽃샘추위’의 추위는 그냥 늦게 남은 겨울이 아니에요. 봄의 문턱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저항이에요. 그러니까 이 추위는 실패가 아니라 전환의 증거죠. 언어는 늘 이런 식으로 계절을 견디는지도 몰라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먼저 불러내고, 이미 지나간 것을 꽃에 빗대죠. 두 음절 안에 시간을 접어 넣어요.
꽃은 피지 않았는데도 이미 말속에서는 흔들리고 있어요. 그리고 그 흔들림이 가장 또렷해지는 순간이 바로 지금 같은 때죠. 꽃을 시샘하는 추위. 추위를 밀어내는 예감.
그 사이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서성이죠. 기다리다가 꽃을 보기도 하고, 기다리다가 계절을 놓치기도 해요. 그래도 또다시 말해요. 꽃이라고. ‘꽃’을 품은 말들은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요. 어떤 해에는 꽃을 제대로 보지 못하더라도, 말은 다시 그 두 음절을 꺼내요. 꽃. 짧고 둥근 소리죠. 입술을 오므렸다가 터뜨리는 발음. 그 작은 파열 속에서 뭔가가 미세하게 흔들려요.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어요. 계절이 밖으로.
비집고 나오고 있죠.
그냥...그렇다고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