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이름의 표면

서로의 요철을 오래 만지는 일이다

by 적적


손가락 끝으로 오래된 동전을 문지르면 미세한 높낮이가 느껴진다. 이미 수많은 손을 거쳐 지나온 금속의 표면은 닳아 평평해진 듯 보이지만, 가까이 대면 아직도 아주 작은 요철이 남아 있다. 처음에는 서로의 표면이 또렷하다.


어디가 튀어나와 있고 어디가 파여 있는지, 마치 새로 주조된 동전처럼 분명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분명함은 마모된다. 마모된다는 말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높낮이가 다른 방식으로 감각된다는 뜻이다.



당신이라는 이름은 바로 그런 요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처음 만났을 때의 표면은 유난히 선명하다. 말의 억양, 눈을 잠깐 피하는 습관, 컵을 내려놓을 때 생기는 작은 소리까지도 서로의 표면에 새겨진다. 두 개의 다른 물체가 처음 맞물리려 할 때, 그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마치 기어의 톱니가 서로를 시험하듯 천천히 돌아가며 맞닿는 순간처럼. 맞아 들어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연히 만들어진 굴곡이 정확히 다른 굴곡을 찾아 들어가는 일. 그 순간 사람은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아주 얇은 두려움이 생긴다. 이 맞물림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대부분의 관계는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는다. 조금 비껴간 채로 돌아간다. 그래서 소리가 난다. 삐걱거리는 금속음 같은 것.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소리 덕분에 관계는 오래 지속된다. 완벽한 맞물림은 마찰을 잃는다.



마찰이 없는 기어는 생각보다 빨리 멈춘다. 인간의 관계 역시 너무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때 오히려 위험해진다. 어딘가 어긋난 채 돌아가는 구조가 더 오래 버틴다. 어떤 날에는 상대의 요철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분명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는데, 이제야 보이는 것들. 말 끝에서 희미하게 묻어나는 냉기,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무표정, 웃음 뒤에 남아 있던 아주 작은 침묵. 그런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확대되어 보인다.



확대경 아래 놓인 먼지처럼. 사람은 그 순간 깨닫는다. 서로의 표면은 처음부터 이렇게 울퉁불퉁했구나. 다만 처음에는 그 요철이 서로에게 기쁨의 신호였을 뿐이다. 요철은 언제나 양면적이다. 맞아 들어가는 순간에는 환희를 준다. 그러나 같은 구조가 언젠가는 균열의 출발점이 된다. 맞물림은 동시에 걸림이기 때문이다.



어떤 톱니는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어떤 톱니는 서로를 멈추게 한다. 관계의 마모는 바로 그 멈춤에서 시작된다. 아주 미세하게,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로. 한 번 닳기 시작한 표면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 복원되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기억이다. 기억은 놀랍도록 매끄럽다. 현실보다 훨씬 매끄럽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기억 속에서만 서로에게 정확히 맞물린다.


실제의 표면은 이미 다른 모양으로 변했는데도. 어떤 밤에는 오래된 대화를 떠올리게 된다. 별 의미 없어 보였던 문장들이 갑자기 다른 의미를 띤다. 말의 요철이 시간이 지나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때 깨닫게 된다. 사람의 말은 항상 두 개 이상의 표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하나는 들리는 표면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천천히 닳아 나타나는 표면이다. 마모된 관계에는 독특한 질감이 있다.



처음의 관계가 유리처럼 반짝였다면, 오래된 관계는 바닷가의 조약돌 같다. 수없이 부딪히고 씻기며 둥글어진 표면. 그런데 조약돌을 자세히 보면 여전히 작은 균열이 남아 있다. 마치 시간이 완전히 지우지 못한 기억처럼. 사람은 그런 표면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동안 굴린다. 이유는 잘 모른다. 아마도 그 촉감 속에서 어떤 위로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위로라는 것은 완전히 맞물리는 순간에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맞물리지 못한 채 계속 돌아갈 때 생긴다. 서로의 요철이 정확히 맞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위로다. 완벽한 일치는 종종 침묵을 낳지만, 약간의 어긋남은 계속해서 말을 만들어낸다. 관계가 마모된다는 말에는 종종 슬픔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마모는 어떤 의미에서는 기록이다. 부딪힘의 기록. 지나온 시간의 흔적. 금속이 닳는 방식은 그것이 얼마나 오래 돌아갔는지를 말해준다. 어떤 관계의 표면에는 시간의 궤도가 남아 있다.



그것은 때로 상처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증거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관계가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끝나는 것은 표면의 한 종류일 뿐이다. 다른 표면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억 속에서, 말의 잔향 속에서, 혹은 아주 사소한 물건 속에서. 예를 들어 오래된 컵 하나. 그 컵의 가장자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철이 남아 있다. 입술이 닿았던 자리. 그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사람은 종종 가장 닳아버린 관계에서 가장 큰 위로를 느낀다. 아마도 그 관계는 이미 많은 마찰을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감정은 너무 새것일 때 오히려 불안하다. 아직 아무것도 닳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면이 지나치게 매끈하면 손가락이 미끄러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관계를 오래된 가구에 비유한다.



처음에는 반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손이 닿는 부분만 조금씩 닳는다. 팔걸이, 문고리, 서랍의 가장자리. 사람의 손이 반복해서 닿은 자리만. 그 닳음은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마치 그 자리에 시간이 쌓여 있는 것처럼. 당신이라는 이름도 아마 그런 표면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익숙한 요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낯선 굴곡.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미 닳아버린 자리. 같은 이름이지만, 서로 다른 표면을 가진다. 어떤 관계는 끝내 맞물리지 못한다. 그러나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도 않는다. 어딘가에서 계속 스치며 돌아간다. 아주 느린 속도로. 때로는 서로를 밀어내고, 때로는 잠깐 맞물렸다가 다시 어긋난다. 그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존재한다. 사람은 가끔 그런 상태를 떠올린다.



완전히 가까워지지도, 완전히 멀어지지도 않은 상태. 마치 두 개의 톱니가 아주 천천히 돌아가며 서로의 표면을 조금씩 닳게 하는 장면처럼. 그 장면 속에는 이상하게도 고요한 위로가 있다. 어쩌면 위로라는 것은 바로 그런 상태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맞물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서로의 요철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상태.

어떤 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가 난다.

아주 미세하게. 무언가.



아직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

사진 출처> pinterest

화요일 연재
이전 19화안전옷핀처럼 고정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