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찌르는 표현들
서랍 속에서 가장 작은 물건은 대개 가장 오래 남는다. 클립이나 단추, 그리고 이름 모를 금속 조각들. 그중에서도 안전핀은 유난히 단단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얇은 몸체를 둥글게 말아 스스로를 가둔 채, 끝은 예리하게 숨겨두었다. 열리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그러나 한 번 펼쳐지면 반드시 무언가를 관통해야만 닫히는 구조. 어떤 말들은 그와 닮았다. 겉으로는 둥글게 말려 있으나, 안쪽에는 늘 날이 서 있다.
가령 “괜찮다”는 말은 침대 밑으로 밀려 들어간 양말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집 안 어딘가에서 계속 냄새를 풍긴다.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어딘가 괜찮지 않다는 전제가 생겨난다. 그 말은 타인의 손을 잡는 대신 자기 살을 한 번 찌르고 난 뒤에야 나오는 피의 색을 닮았다. 마치 안전핀이 천을 고정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피부를 확인하듯이.
말은 고정하려는 본능을 가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치마를 붙들기 위해 안전핀이 필요한 것처럼, 관계도 어떤 금속성의 단단함을 원한다. “변하지 말자.” “영원하자.” “언제나 네 편이야.” 이런 말들은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셔츠의 단추처럼 서로를 세게 두드린다. 소음은 크지만, 바깥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고요하다.
식탁 위에 올려둔 사과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갈변한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은 변색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말은 과육이 아니라 껍질이기 때문이다. 껍질은 광택을 유지하고, 속은 물러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껍질을 닦는다. 닦인 말은 더욱 단단해지고, 단단해질수록 그 안의 물컹함은 숨을 곳을 잃는다. 그때 어떤 이는 말의 끝을 더 날카롭게 다듬는다. 찌르기 쉬운 형태로.
버스 창문에 이마를 기대면 체온이 남는다. 잠시 후 그 자리에 다른 이가 기대면, 남겨진 온기가 어쩐지 민망해진다. 말도 그렇다. “걱정 마.”라는 말은 누군가의 이마 자국처럼 투명한 흔적을 남긴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속에는 이미 걱정이 들어 있다. 걱정을 밀어내기 위해 그 위에 더 두꺼운 문장을 덧붙이는 동안, 말은 점점 금속성의 무게를 갖는다.
안전핀은 스스로를 닫기 위해 한 번은 반드시 열려야 한다. 그 순간의 불안정함. 벌어진 틈 사이로 날이 드러나는 찰나. 말도 그렇다. 고정된 표현은 한 번쯤은 불안하게 흔들렸던 과거를 갖고 있다. “나는 괜찮아.”라는 문장은 처음에는 떨림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반복되면서 떨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윤기가 난다. 윤기는 오래된 칼날의 광택과 닮았다.
비 오는 날 빨랫줄에 걸린 셔츠는 천천히 무게를 얻는다. 물을 머금은 천은 아래로 처지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옷핀 하나가 떨어진다. 말이 떨어지는 순간을 본 적이 있다. 단단하다고 믿었던 약속이 느슨해지는 소리. 그 소리는 작지만 오래 남는다. 떨어진 핀은 땅에 닿으며 아주 미세한 금속음을 낸다. 그 음을 들은 사람은 다음부터 더 많은 핀을 준비한다.
어떤 이는 하루에 세 번씩 “괜찮다”를 사용한다.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그 말은 칫솔처럼 규칙적이다. 그러나 칫솔이 닿지 않는 어금니 뒤편처럼, 말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그곳은 늘 약간의 피 맛이 난다. 말은 피를 멈추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피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겨울 코트 안주머니에는 종종 작은 핀이 들어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단추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언제나 약간의 긴장을 동반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리 고정해 둔다. 관계도 그렇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미리 찔러둔다. “난 상처받지 않아.”라는 말은 상처가 생기기 전, 이미 그 자리에 작은 구멍을 내어둔다. 구멍은 보이지 않지만, 그곳으로 찬 공기가 스며든다.
어떤 말들은 서로를 꿰맨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을, 서로 다른 표정을 하나로 묶는다. 안전핀으로 급히 수선한 옷은 어딘가 어색하다. 천의 결이 맞지 않고, 금속이 밖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어색함을 모른 척한다. 말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붙들어두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지면 금속은 더 차가워진다. 말도 밤에는 다른 질감을 갖는다. 낮에 사용한 “괜찮다”가 밤에는 조금 더 무겁게 느껴진다. 그 무게는 베갯속 솜처럼 고요하지만, 머리를 누른다. 눌린 자리에는 자국이 남는다. 아침이 되면 자국은 사라지지만, 말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다. 닫힌 채로.
유리잔에 금이 가면 물을 담을 수 없다. 그러나 말에 생긴 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금이 간 말은 더 자주 사용된다. “믿어.”라는 말은 이미 여러 번의 의심을 통과했기에 반짝인다. 그 반짝임은 깨지기 직전의 유리처럼 위태롭다. 위태로움은 종종 단단함으로 오해된다.
골목길 모퉁이에서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꿀 때, 치맛자락이 휘날린다. 그 순간 누군가는 가방 속을 더듬어 핀을 찾는다. 말도 그렇게 꺼내진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돌풍 앞에서, 준비된 문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준비된 말은 안전하다. 안전하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움직이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한 번 찌르는 절차가 필요하다.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작은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말이 사용된다. 그러나 말은 때로 간격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항상”이라는 단어는 마치 굵은 핀처럼 두 사람을 단단히 묶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천을 과하게 잡아당겨 주름을 만든다. 주름은 시간이 지나면 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교복 자락에 달린 이름표는 늘 반듯했다. 그 뒤편에는 작은 핀이 숨어 있었다. 이름을 달기 위해, 누군가는 옷감을 찔러야 했다. 이름이 붙는 순간, 몸은 조금 덜 자유로워진다. 말도 이름과 같다. 붙여진 순간, 움직임은 줄어든다. 그러나 이름 없는 상태로 남겨두는 것은 또 다른 불안을 낳는다.
카페 창가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의 입 모양이 보인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말이 오가는 리듬은 읽힌다. 어떤 입술은 자주 닫히고, 어떤 입술은 길게 열린다. 닫힌 말은 짧고 단단하다. 열린 말은 길고 느슨하다. 안전핀 같은 말은 대개 짧다. 짧은 문장은 깊이 들어간다. 깊이 들어간 문장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비밀은 종종 금속 냄새를 풍긴다. 오래된 핀을 손에 쥐고 있으면 손끝에 묘한 향이 남는다. 그 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비밀로 해.”라는 말은 이미 공기 중에 퍼진 금속성의 냄새를 감추지 못한다. 감추려 할수록 냄새는 또렷해진다.
말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날을 숨긴다. 그러나 숨긴 날은 여전히 존재한다. 누군가 무심코 그 말에 손을 대면, 작은 상처가 난다. 상처는 금세 아물지만, 아문 자리에는 얇은 흉터가 남는다. 흉터는 피부보다 단단하다. 단단함은 다시 말이 된다.
어느 날 서랍을 정리하다가 녹슨 핀을 발견한다. 한때는 번쩍였을 금속이 붉게 변해 있다. 녹은 천천히 번진다. 말도 그렇다. 오래 고정해 둔 표현은 어느 순간 색이 변한다. 그 색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사용한다. 찌르는 힘은 예전보다 약해졌지만, 습관은 여전하다.
창문을 닫지 않은 채 잠들면, 새벽 공기가 방 안으로 스며든다. 이불 가장자리가 살짝 들린다. 그 틈을 막기 위해 또 하나의 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들린 가장자리를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무엇인가를 고정하려 한다. 흔들림은 불안하니까. 불안은 말로 덮을 수 있으니까. 덮는 순간, 말은 다시 자신을 찌른다.
그리고 아침이 오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듯 보인다. 닫힌 핀, 다림질된 셔츠, 단정한 문장들. 그러나 어딘가에는 여전히 작은 구멍이 남아 있다. 그 구멍을 통해 바람이 드나든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천을 미세하게 흔든다. 흔들림은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속은 그 자리를 지키며 빛난다.
빛나는 것은 언제나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단단함은 때로 가장 연약한 방식으로 유지된다. 스스로를 찌르는 구조. 찌름을 견디며 닫힌 고리. 말은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의 옷깃을 붙들고 있다. 풀리지 않기 위해.
조금 더 깊이 파고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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