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극복되지 않는 것들의 이동경로
어떤 이별은 사건처럼 시작되지 않는다. 큰 소리도 없고 문이 세게 닫히는 일도 없다. 그것은 먼저 사물들의 표면에서 아주 미세하게 일어난다. 컵의 가장자리에 남은 입술 자국이 어느 날 갑자기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설거지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데도 유리의 투명함 속에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는 날이 있다. 관계도 가끔 그렇게 남는다. 이미 끝났는데도 사라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기억은 너무 평평한 단어다. 실제로는 조금 더 복잡한 움직임이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곤충들이 서로의 더듬이를 스치며 방향을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도 정확히 보지 못하지만 어딘가에서 계속 이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방 안의 공기에서 시작된다. 같은 방인데도 공기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창문은 닫혀 있는데 어딘가에서 아주 얇은 찬 기류가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분 탓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공기가 아니라 관계의 온도가 변하고 있는 중이다.
관계에는 온도가 있다. 그 온도는 체온보다 미묘하고 계절보다 느리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오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심지어 완전히 식어버린 뒤에도 아직 따뜻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손을 내민다.
이미 오래전에 꺼진 난로를 향해.
길을 똑바로 걷지 않는다. 직선보다 우회로를 더 좋아한다. 처음에는 부정으로 시작된다. 휴대폰을 몇 번이나 확인한다. 메시지는 오지 않지만 화면을 켤 때마다 아주 미세한 기대가 다시 만들어진다.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 반사작용에 가깝다. 몸이 오래 기억하고 있던 움직임.
그때 사람의 몸 안으로 조금 더 들어온다.
가슴 근처 어딘가에 작은 저장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머문다.
며칠이 지나면 슬픔은 장소를 바꾼다. 이번에는 발목 쪽이다. 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몸이 이전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중력을 잘 따른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단 몇 걸음 걷는 일도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이별 이후의 세계는 사소한 것들로 가득하다. 문득 거리에서 비슷한 향수를 맡는다. 정확히 같은 향은 아니다. 하지만 비가 온 뒤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맡던 냄새와 아주 조금 닮아 있다. 그 순간 사람은 잠깐 멈춘다.
공기가 접힌다.
누군가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시간의 표면이 아주 얇게 찢어진 것이다. 그 틈 사이로 과거의 공기가 잠깐 새어 나온다.
슬픔은 이런 틈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종종 극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단단한 단어처럼 들린다. 마치 어딘가를 넘으면 끝날 것처럼. 그러나 이별은 산이 아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습지에 가깝다. 한 발을 내디디면 발이 조금씩 빠진다. 빠져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다른 곳이 이미 젖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오래 걷지 못한다.
대신 오래 서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밤이 되면 슬픔은 목 뒤로 올라온다. 누워 있을 때 특히 분명하다. 잠은 오지 않지만 눈은 감겨 있다. 이미 수십 번 반복했던 장면들이 다시 나타난다.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어떤 문장은 더 길어지고 어떤 침묵은 더 오래 지속된다.
기억은 원래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더 아프다.
어떤 사람들은 이별 뒤에 방을 정리한다. 사진을 치우고 물건을 버린다. 작은 장례식 같은 의식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떤 물건은 끝내 버리지 못한다.
오래된 티켓 한 장.
책갈피.
고무줄이 조금 늘어난 머리끈.
그것들은 특별히 중요한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의미가 크면 정리하기 쉽다. 의미가 애매하면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은 애매한 곳을 좋아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슬픔은 언어 속으로 이동한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름을 덜 말하게 된다. 대신 다른 표현을 사용한다.
그때.
예전에.
어떤 사람.
이름은 조금씩 흐려진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다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수 버튼 옆에 붙은 광고 문구를 읽다가 문득 떠오른다.
아무 이유 없이.
슬픔은 이런 쓸모없는 경로를 잘 알고 있다.
어떤 밤에는 꿈이 개입한다. 꿈속에서 그 사람은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도 한다. 꿈은 현실보다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깨어난 뒤 몇 초 동안은 무엇이 실제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 짧은 혼란 속에서 슬픔은 잠깐 숨을 쉰다.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은 해결사가 아니다. 시간은 긴 복도에 가깝다. 감정들이 그곳을 지나간다. 어떤 슬픔은 빠르게 걸어간다. 어떤 슬픔은 중간에 의자를 끌어다 놓는다.
그리고 잠깐 앉는다.
어떤 사람들은 몇 년이 지나도 같은 복도에서 서성인다. 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방향이 아주 조금씩 계속 바뀌고 있을 뿐이다. 이별 이후 사람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같은 카페에 가고 같은 음악을 듣는다. 그것은 회복이라기보다 좌표를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예전에 세계가 있던 자리.
하지만 좌표는 이미 조금 이동했다. 그래서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낯선 곳에 도착한 느낌을 받는다.
슬픔의 마지막 이동은 의외로 평범하다. 그것은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신호등 앞에서 서 있고, 전철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 동안 아주 조금씩 희석된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어떤 잉크는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 컵 바닥 어딘가에 아주 얇은 색이 남는다. 거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잊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다른 상태로 이동했을 뿐이다.
슬픔이 더 이상 슬픔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
가끔 창문을 열어 두었는데도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밤이 있다. 공기가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완전히 정지한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아주 느린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움직임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다만 가끔, 이유 없이 어떤 이름이 떠오른다. 그 이름은 이제 질문도 아니다. 대답도 아니다.
다만 아직 어딘가를 향해 천.. 천.. 히 이동하고 있는 방향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