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았다는 오해(LD1)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장례는 끝났다

by 적적

이별은 언제나 대량으로 발생하는 재난처럼 기록되지만, 실제로는 아주 적은 수만이 죽는다. 나머지는 살아남는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호흡이 이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기를 삼키게 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폐는 여전히 부풀지만 그 안의 기압이 달라지고, 말은 여전히 입을 통과하지만 단어의 온도가 바뀐다.



사람들은 이별을 겪은 뒤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미묘하게 변형되었는지 오래도록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은 느리게 작용하는 독과 닮아 있다. 어떤 독은 몸을 쓰러뜨리지 않고, 대신 자세를 바꾸게 만든다.

남과 여라는 두 개의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열린 두 개의 시간대가 있었다. 그 시간대는 겹쳐졌다가 다시 갈라지며 기묘한 간섭무늬를 남긴다. 이별이란 결국 간섭무늬의 해체다. 함께 걷던 골목은 여전히 같은 길이지만, 발걸음의 간격이 달라지면서 공간의 밀도가 변한다. 길 위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데도 자꾸만 발이 걸린다.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남아 있는 관성이다. 관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을 앞으로 밀어낸다. 밀려나는 동안에는 살아 있다는 느낌보다 끌려간다는 감각이 더 강하다.


누군가는 말했다. 모든 사랑에는 치사량이 있다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수치를 끝까지 확인하지 못한다. 아주 소수만이 완전히 붕괴한다. 나머지는 중독과 회복 사이의 불확실한 지대에서 오래 머문다. 이별의 초기 증상은 미열과도 비슷하다. 밤마다 이불속에서 체온이 달라지고, 아침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는다. 식어버린 체온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늘 책임을 찾으려 한다. 책임을 찾는 행위는 상처를 치료하는 대신 의미를 붙이는 일에 가깝다. 의미는 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서히 흡수되는 색소다.



어떤 카페에서는 아직도 두 개의 컵이 나란히 놓여 있다. 손잡이의 방향이 어긋난 채 굳어 있는 장면은 마치 중단된 문장처럼 보인다. 문장은 끝나지 않았는데 독자는 책을 덮어버린다. 남겨진 단어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뻗지만, 종이의 마찰력에 막혀 움직이지 못한다. 이별 이후의 시간은 늘 이런 식으로 정지와 흐름이 동시에 일어난다. 시계는 가고 있지만, 그 소리는 귀에 닿지 않는다. 대신 어딘가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만 또렷해진다. 물은 끝내 바닥을 적시지만, 젖었다는 사실은 늦게야 드러난다.



사람들은 서로를 떠난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많은 방식으로 타인을 통해 숨 쉬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상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상대의 리듬으로 걷고 있었다는 사실. 리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은 그것을 기억한다.



이별은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근육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근육은 쉽게 잊지 않는다. 오래 사용한 습관은 감정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반복된다. 마치 이미 고장 난 자판을 계속 두드리는 타자수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 회선을 향해 문장을 보낸다. 문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무음의 신호음만 길게 늘어진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유를 찾으려 하면 더 멀어진다. 그 멈춤은 사건이 아니라 잔향이다. 잔향은 원래의 소리를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한때 존재했다는 공기를 남긴다. 사람들은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자신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살아남았다는 위안은 종종 패배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패배는 끝이 아니라 형태의 변경이다. 어떤 패배는 사람을 더 가볍게 만들고, 어떤 승리는 발목에 납을 매단다.



이별을 겪은 남자는 갑자기 창문을 자주 열기 시작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여자는 밤마다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다. 음악은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다만 기억의 윤곽을 흐리게 만든다. 흐려진 윤곽은 새로운 의미가 스며들기 쉬운 표면을 만든다.



그 표면 위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다시 조립한다. 조립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한두 개의 나사가 남는다. 남겨진 나사는 주머니 속에서 부딪히며 작은 소음을 낸다. 그 소음은 불안이 아니라 생존의 증거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특별한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눈빛의 속도가 다르다. 그들은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결론은 이미 한 번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신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상태란 확정되지 않은 문장, 아직 닫히지 않은 문이다.

문은 완전히 열리지도, 완전히 닫히지도 않은 채 흔들린다. 흔들림 속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바람은 방 안의 먼지를 천천히 움직인다. 먼지가 움직이는 동안 사람들은 잠시 안도한다. 아직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아직 견딜 수 있다고.


이별의 반수치사량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종류의 숫자다. 대부분은 죽지 않지만, 예전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는 임계점. 그 임계점 이후의 세계에서는 사소한 것들이 더 선명해진다. 유리잔의 금, 벽지의 주름, 계단의 높낮이. 사람들은 그 세부 속에서 자신을 붙잡는다. 붙잡는 동안 놓쳐버린 것들의 이름은 점점 발음하기 어려워진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은 서서히 사라진다. 사라짐은 잔혹하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계절이 바뀌듯, 숨이 바뀌듯.



어느 저녁, 특별한 사건 없이도 문득 깨닫는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위안이 아니라 조건이 되었다는 것을. 위안은 한때 필요했지만 이제는 공기처럼 희미하다. 공기는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들이마셔진다. 들이마시는 동안 사람들은 여전히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낀다. 어지러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별의 남은 농도다. 그 농도 속에서 남과 여는 각자의 속도로 걸어간다. 서로 다른 방향이지만, 같은 기압 아래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멈춰 있고, 누군가는 이미 멀리 갔지만, 구별은 점점 중요하지 않다.


상태만이 남는다.


조금 기울어진 채로.


죽은 줄도 모른 채로.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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