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넣을수록 또렷해지는

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감각과, 대신하지 않는 선택

by 적적


문이 닫히는 소리는 늘 조금 늦게 도착한다. 이미 손잡이를 놓아버린 이후에야, 금속이 프레임에 부딪히는 얇은 울림이 공기를 건너온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돌아서고, 누군가는 그 소리를 붙잡기 위해 문틈에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방해는 대개 이처럼 미세한 지연에서 비롯된다. 늦게 도착한 감각이 앞선 결정을 붙잡으려 할 때, 이미 끝난 움직임은 다시 시작된 것처럼 흔들린다. 타인의 이별은 대부분 그 지연을 포함하고 있다. 끝났다는 사실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이 겹쳐진 채, 서로를 오인한다. 늦게 도착하는 소리와 이미 떠난 발걸음 사이에 어떤 해석도 끼워 넣지 않는 태도, 그 틈을 자신의 말로 채우지 않는 태도.



어떤 이별은 냄새로 남는다. 오래 사용한 향수의 잔향이 베갯속에 박혀 있어, 세탁을 거듭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종류의 것. 손을 넣으면 사라질 것 같으면서도, 손을 넣는 순간 더 또렷해지는 냄새. 타인의 이별을 방해하는 방식 중 가장 교묘한 것은 이 잔향을 대신 맡아주려는 시도다. 괜찮다며, 곧 사라질 거라며, 혹은 더 좋은 냄새로 덮어버리겠다는 약속으로. 그러나 냄새는 덮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층을 이루며 더 복잡한 형태로 남는다.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후각에 개입하지 않는 일,



그가 맡고 있는 것을 그의 방식으로 끝까지 맡게 두는 일이다. 불쾌함조차도 타인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일. 그것은 무심함과 닮았지만, 무심함과는 다른 종류의 주의다. 개입하지 않기 위해 더 세심하게 거리를 재는 감각.



비가 오던 오후,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린다.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방울들이 어느 순간 서로를 만나 더 큰 방울이 되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옆으로 비켜 흐르기도 한다. 이별의 장면은 종종 이 물방울의 궤적을 닮는다. 서로를 향해 흘러가던 두 흐름이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합쳐지지 않는 순간.


그때 누군가는 유리를 닦아버리고 싶어 한다. 흐름을 다시 시작하게 하려는 듯, 혹은 그저 더 이상 보지 않기 위해. 그러나 닦아버린 자리에는 흐름이 사라지는 대신 흔적만 남는다. 불균질 한 얼룩, 이전의 움직임을 증명하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 타인의 이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흐름을 닦아내지 않는 일이다. 그저 유리 너머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 어떤 흐름은 만나지 않고 끝난다는 사실을, 설명 없이 받아들이는 일.



위로라는 이름으로. “괜찮아질 거야”라는 문장은 미래를 앞당겨 현재를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직 괜찮지 않은 상태를 통과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이미 도착한 상태를 강요한다. 타인의 이별을 방해하는 말은 대부분 이와 같은 시간의 압축을 동반한다. 슬픔이 제 속도로 흐르지 못하도록, 어떤 결론을 서둘러 배치한다.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을 늘어뜨리는 일이다. 결론을 유보하고, 상태를 유지하게 두는 일. 말하지 않음이 말하기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는 순간을 견디는 일. 그 침묵이 불편하게 느껴질수록, 개입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더 또렷해진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은 감각이 들 때, 사람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진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 충동을 통과시키는 대신, 잠시 붙잡아 두는 것.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때로 자기 존재를 희미하게 만드는 기술이기도 하다.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도 이미 서로의 좌표에서 벗어난 상태. 식탁 위에 마주 앉아 있지만, 시선은 서로를 통과해 다른 곳에 머무르는 순간. 이때 개입은 종종 물리적 제스처로 나타난다. 닿지 않는 곳을 억지로 이어 붙이려는 시도는, 닿지 않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 타인의 이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어긋남을 수정하지 않는 일이다.



접촉을 통해 거리를 없애려 하지 않는 일. 닿지 않는 상태를 그대로 두는 일. 그것은 냉정함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더 깊은 종류의 존중에 가깝다. 서로의 좌표를 다시 맞추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한, 외부인의 최소한의 예의.



이별은 종종 서사로 포장된다. 이유가 있고, 과정이 있으며, 결말이 있는 이야기로. 주변의 사람들은 그 서사를 정리하려 든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그러나 모든 이별이 서사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려는 노력. 하지만 이해는 때로 폭력에 가깝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 할 때, 그 사이에서 많은 것이 삭제된다.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를 유보하는 일이다. 알 수 없다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 질문을 던지지 않음으로써, 혹은 질문을 던지되 답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그 공백을 공백으로 남겨두는 일.



어둠 속에서 눈이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점차 형태가 드러나고, 결국에는 빛이 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이별 역시 일종의 어둠이다. 익숙했던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새로운 감각이 천천히 형성된다.



이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아직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눈에 갑작스러운 빛을 비추는 것과 닮아 있다. 잠시 더 잘 보이는 것 같지만, 곧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타인의 이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어둠을 존중하는 일이다. 적응의 시간을 빼앗지 않는 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통과할 수 있도록, 그 시간을 그대로 두는 일.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넘어지고, 누군가는 벽에 부딪히며,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 모든 움직임이 하나의 과정으로 남도록, 외부의 빛을 억지로 들이밀지 않는 일.



함께 사용하던 컵, 같은 모양의 칫솔, 우연히 발견된 영수증 한 장. 이별 이후, 이러한 사물들은 의미를 과잉으로 품게 된다. 타인의 이별을 방해하는 방식 중 하나는 이 사물들을 정리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버리거나, 치우거나, 혹은 반대로 더 붙잡아 두도록 설득하는 것.



어떤 이는 바로 버리고, 어떤 이는 오래 두고, 어떤 이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속도에 간섭하지 않는 일이다. 사물의 운명을 대신 결정하지 않는 일. 남겨진 것들이 스스로의 무게를 드러내도록,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도록, 시간을 허락하는 일.



비어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구조.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는 일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일. 그 시간 속에서만 드러나는 어떤 감각이 있다는 사실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어쨌든 허용하는 일.



손을 내밀지 않는 손, 말을 꺼내지 않는 입, 설명하지 않는 머릿속.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세한 긴장으로 채워져 있다. 언제든 개입할 수 있지만, 개입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지속적인 의식. 그 의식은 완벽하지 않아서, 때로는 미끄러지고, 때로는 불필요한 말을 흘려보내며, 때로는 이미 늦은 손짓을 하기도 한다.


그 곁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머무는 일. 그 애매한 위치에서, 어떤 소리는 들리고 어떤 소리는 끝내 도착하지 않는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여전히 조금 늦게 도착하고, 그 지연 속에서 무언가가 계속해서 시작되거나.



혹은 이미 끝나버린 채로 남아 있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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