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에 기억이 온다
어떤 기억은 문장을 갖지 못한 채 먼저 도착한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각의 형식을 취한다. 눈이 그 장면을 복구하기도 전에, 손이 그 사물의 윤곽을 더듬기도 전에, 냄새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는다.
젖은 종이처럼 얇게 겹쳐진 시간 위에, 조용히 스며들어 눌어붙는다. 그때의 공기는 유난히 느리게 흐르며, 폐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와 나가는 공기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 사이에 끼어든 냄새는 방향을 갖지 않는다. 앞뒤도 없이, 단지 퍼지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확산이라는 동사를 갖지만, 동시에 수렴이라는 결과를 남긴다. 흩어지면서 모이는 기이한 운동. 그 운동이 기억의 바닥에 가라앉는다.
어릴 적 집 안의 복도는 언제나 미묘하게 눅눅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시간대에만 살아나는 곰팡이의 얇은 층이 벽지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분명히 호흡을 나누고 있었다. 그 냄새는 단순히 불쾌하거나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정한 두께를 가진 시간의 직물이었다. 손톱으로 긁어내면 가루가 될 것 같지만, 동시에 단단하게 굳어버린 무언가.
그 냄새가 복도를 점유하고 있을 때,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지고, 공기 속에서 반사되는 방식이 달라졌다. 마치 소리조차 냄새의 밀도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그 복도를 지날 때마다, 설명되지 않는 기시감이 뒤따랐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겪은 것 같은, 혹은 이미 끝난 일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같은 착각.
오래된 나무 책상의 향이 지하철 플랫폼 위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 시간은 흐름을 포기한다. 앞과 뒤가 뒤섞이며, 사건은 자신의 위치를 재배치한다. 그때의 기억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의 공기 속에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잠시 동안, 현재는 비어 있는 방이 되고, 과거는 그 방의 주인이 된다.
책은 덮이고 잊히지만, 종이의 냄새는 손가락 끝에 묻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셔츠는 마르고 옷장에 걸리지만, 그 안에 남아 있는 향은 누군가의 체온을 연상시키며 다시 살아난다.
이렇게 냄새는 사물의 수명을 초과한다. 그것은 사물보다 늦게 사라지고, 때로는 사물보다 먼저 돌아온다.
기억이 냄새에 의해 점유된다는 말은, 결국 기억이 하나의 공간이라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 공간은 벽과 천장을 갖고 있지 않지만, 분명히 어떤 경계를 지니고 있다.
냄새는 그 경계를 통과하는 데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는다. 문을 열 필요도, 창문을 부술 필요도 없다.
이미 내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기억의 주인이 아니라, 그 안을 떠도는 방문자처럼 느껴진다. 냄새가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그 뒤에야 의식이 따라 들어온다.
의식은 빈자리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빈자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냄새는 공간을 촘촘하게 채워, 다른 어떤 것도 쉽게 들어올 수 없게 만든다.
이때 발생하는 미묘한 어긋남이 있다. 기억은 분명히 자신의 것인데,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낯설어진다. 냄새가 먼저 도착해 배치해 놓은 구조 속에서, 기억은 원래의 순서를 잃는다.
사건의 시작과 끝이 뒤바뀌고, 중요했던 장면이 사라지거나, 아무렇지 않았던 순간이 과도하게 부풀려진다.
기억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재배열된 풍경이 된다. 냄새는 그 풍경의 조명을 담당한다. 어떤 부분은 과도하게 밝히고, 어떤 부분은 완전히 어둡게 만든다.
그 빛과 어둠 사이를 오가며, 무엇이 실제였는지 판단하려 하지만, 판단은 늘 지연된다. 지연된 판단은 결국 포기와 비슷한 형태로 수렴한다.
어떤 날, 오래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금속과 먼지가 섞인 냄새를 맡는다.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등 뒤, 말하지 못한 문장, 닫히지 않은 문. 그 장면은 완결되지 않은 채 중간에서 멈춰 있다. 왜 그 장면이 선택되었는지, 왜 지금 이 순간에 떠올라야 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 장면은 분명히 어떤 요구를 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것을 끝내 달라는 요구, 혹은 끝내지 않은 채로 두어 달러는 요구.
그 요구는 모순된 형태로 존재하며, 어느 쪽으로도 쉽게 기울지 않는다. 냄새는 그 요구를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이지만, 동시에 그 요구를 강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기억과 냄새 사이에는 일종의 계약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계약은 명시되지 않았고, 조건도 불분명하다. 언제 호출될지, 무엇이 호출될지, 호출된 것이 얼마나 오래 머물지에 대한 규칙은 없다.
단지 반복되는 것은, 냄새가 먼저 도착하고 기억이 그 뒤를 따른다는 순서뿐이다. 이 단순한 순서가 모든 복잡함의 출발점이 된다.
순서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후의 모든 변형이 가능해진다. 순서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아마도 이런 식의 뒤틀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순서는 고정되어 있고, 그 고정됨이 오히려 모든 것을 유동적으로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냄새를 맡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탐색처럼 느껴진다. 공기 속을 더듬으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기억을 찾아내려는 시도. 그러나 그 탐색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몰랐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려는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는 계속해서 공기를 들이마신다.
미세한 입자들이 폐 깊숙이 들어와, 보이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표면으로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그것이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이미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인다.
기억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냄새는 그 재구성의 가장 은밀한 도구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으며, 정확히 설명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그것은 기억의 구조를 바꾼다.
종종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 아니면 냄새에 의해 변형된 결과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 구분의 실패는 불안이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안도에 가깝다. 모든 것이 정확하게 기억될 필요는 없다는, 혹은 정확하게 기억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종류의 느슨한 합의.
어디선가 아주 희미한 냄새가 떠오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낼 수 없지만, 분명히 이전에도 맡은 적이 있다. 그러나 언제였는지, 어디였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는 흐릿하다.
그 흐릿함이 오히려 또렷하게 느껴진다. 마치 선명함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발생하는 왜곡처럼. 그 냄새는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주변을 서서히 점유하고 있다. 공기의 밀도가 아주 조금 변하고, 호흡의 리듬이 미묘하게 어긋난다. 무엇인가가 곧 도착할 것 같은데, 동시에 아무것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상태. 그 사이에.
여백이 길게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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