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문장, 하나의 기울기

문장은 견딜 수 있는 방향으로만 나온다

by 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3XDW1BWn6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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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시작될 때 이미 방향을 가진다. 그것은 종종 문장의 앞머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밀려오는 어떤 압력에 의해 정해진다. 숨이 들이마셔지기 전의 공기처럼,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로 존재하는 의지, 혹은 의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미세한 기울기.



사람은 그 기울기 위에 서 있다. 발바닥은 평평하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주 조금 기울어진 세계를 딛고 있으며, 그 기울기만큼 생각은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은 시간이라기보다 문장의 결이다. 시간은 그저 그 결을 따라가는 얇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어떤 문장은 끝을 예감한다. 끝이 먼저 있다는 사실은 종종 무시되지만, 그것은 문장의 구조를 지탱하는 숨은 골격과 같다. 말해지지 않은 종결이 먼저 존재하고, 그 종결을 향해 단어들이 배치된다.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이미 닿아 있는 지점을 향해 뒤늦게 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출발은 실제로는 지연된 인식이며, 도착은 언제나 먼저 있었다. 그래서 방향은 선택이라기보다 발견에 가깝다. 발견은 종종 선택의 언어로 위장된다.



사람이 내뱉는 문장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방향의 결과물이다. 견딜 수 없는 방향은 애초에 문장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혀는 특정한 형태만을 허용하고, 입술은 특정한 진동만을 통과시킨다. 그 제한이 곧 개성이라 불린다. 개성은 선택의 산물이 아니라, 배제의 잔여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먼저 쌓이고, 말해지는 것들은 그 사이의 틈을 비집고 나온다. 틈은 언제나 불균등하다. 그래서 문장은 비대칭적으로 태어난다.



어떤 사람은 짧은 문장을 산다. 그 문장은 빠르게 닫히고, 빠르게 사라진다. 끝이 선명하기 때문에, 반복 없이도 충분히 완결된다. 그러나 그 선명함은 종종 깊이를 포기한 결과이기도 하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끝나지 않는 문장을 산다.


쉼표와 접속사, 괄호와 부연이 끝없이 이어지며, 종결은 계속해서 유예된다. 유예된다는 것은 단순히 미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가능성에 노출된다는 의미다. 그 노출은 피로를 동반한다. 피로는 방향을 흐리게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방향을 감지하게 만든다.



방향은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층적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방향과, 그 아래에 숨어 있는 미세한 방향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겉의 방향은 사회적이며, 설명 가능하다. 아래의 방향은 설명을 거부한다. 설명하려는 순간 사라지거나, 다른 형태로 변형된다. 그래서 어떤 삶은 설명할수록 멀어진다.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설명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포기한다는 말조차 이미 설명의 일부이기 때문에, 완전한 포기는 불가능하다.



문장은 항상 무엇인가를 놓친다. 완전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장이 아니다. 완전함은 정지 상태를 의미하고, 정지는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어는 결핍 위에서만 작동한다. 사람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말하지만, 말하는 순간 다른 결핍이 생겨난다. 그 연쇄는 멈추지 않는다. 멈춘 것처럼 보이는 순간은 단지 감각이 둔해진 상태일 뿐이다. 둔해짐은 평온과 자주 혼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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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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