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폐허가 되는 순간

너무 정확해서 더 이상 읽히지 않는 것들에 관하여

by 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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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종종 지나치게 정확한 순간에 숨을 거둔다. 단어들이 각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고, 오차 없이 맞물릴 때, 문장은 완성된 구조물이 아니라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다. 그 폐허는 놀랍도록 반듯하다. 먼지 하나 앉지 않은 표면, 흔들림 없는 문법, 누구나 같은 방향으로 읽어낼 수 있는 의미. 그것은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 읽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버려진 문장들은 늘 같은 장소에 모여 있지 않다. 어떤 것은 초안의 가장자리에서 밀려나고, 어떤 것은 한 번도 종이 위에 올라오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만 소실된다. 그 문장들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다. 문장으로 태어나지 못한 단어들의 결은 거칠고, 불완전하며, 서로를 향해 미묘하게 어긋난다.



정확한 문장은 대상을 고정시킨다. 그것은 어떤 풍경을 재현하기보다 봉인한다. 예를 들어, 창문 너머의 저녁을 “붉다”고 말하는 순간, 저녁은 붉은 것으로 고정된다. 그러나 실제의 저녁은 붉음과 동시에 식어가는 공기, 유리창에 맺힌 희미한 얼룩, 바닥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의 미세한 흔들림까지 포함하고 있다. 정확한 단어 하나가 그 모든 층위를 지워버릴 때, 문장은 하나의 색으로 굳는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기억은 언제나 불안정한 것에 머문다. 확정되지 않은 감각, 설명되지 않은 기분, 이름 붙일 수 없는 충동 같은 것들. 그러므로 명확함은 기억을 돕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의 가능성을 제거한다.


사람들이 어떤 문장을 지울 때, 그것은 종종 지나치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감정이 한 줄로 요약되었을 때, 그 요약은 감정을 닮지 않는다. 요약은 정리된 결과일 뿐, 경험의 질감을 포함하지 않는다. 경험은 늘 중첩되어 있다. 한 가지 감정이 다른 감정의 그림자를 끌고 들어오고, 그림자 속에는 또 다른 색이 묻어 있다.



문장을 다듬는다는 것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떤 제거는 문장의 생명까지 함께 잘라낸다. 불필요해 보였던 단어가 사실은 문장의 온도를 조절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작은 흔들림, 어색한 리듬, 약간의 과잉. 그것들은 문장을 살아 있게 만드는 미세한 결함이다. 결함이 사라진 문장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문장은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정지되어 있다. 정지된 것은 흐르지 않는다. 흐르지 않는 문장은 시간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 자리에 머문 채, 점점 더 투명해진다. 투명해진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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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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