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잠긴 시계

기다림은 시간이 쓰는 가장 느린 시

by 적적

기다림은 사건이 아니라 질감이다. 표면은 고요해 보이지만, 손끝으로 문지르면 미세한 결이 드러난다. 그 결은 일정하지 않아서, 어떤 날에는 종이처럼 얇고 어떤 날에는 겨울 외투의 안감처럼 무겁다.



시간은 그 위를 지나가며 문장을 남기지 않고, 대신 문장이 될 수 있는 흔적들을 흩뿌린다. 그래서 기다림은 완성되지 않은 언어에 가깝다. 아직 발음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침묵도 아닌 상태. 혀끝에 머무는 단어의 예감이 공기 속에서 맴돌며, 사라지지 않으려 애쓰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때 기다림의 시적 요소는 명확한 의미를 거부한다는 데 있다. 그것은 비유로 설명되지 않고, 비유가 되려다 멈춘다. 가령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다 중간에서 멈추는 순간, 그 불완전한 움직임이 하나의 구절처럼 남는다.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끌어당긴다. 기다림은 그렇게, 끝나지 않음으로써 풍부해진다. 무엇을 향하는지 분명하지 않은 방향성, 혹은 방향 자체를 잃어버린 채 유지되는 긴장. 그것이 기다림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기다림은 이런 사소한 움직임들을 과장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그래서 그것은 결핍이라기보다 과잉에 가깝다. 너무 많은 것들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지 않는다.



기다림은 더 이상 시간의 일부가 아니라, 시간을 변형시키는 어떤 상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물속에 들어간 시계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지 못하는 것처럼, 기다림 속의 시간은 기능을 상실한 채 다른 감각으로 전환된다.



그 전환은 감각의 재배열을 요구한다. 소리는 더 멀리서 들리고, 빛은 평소보다 더 오래 머문다. 사물의 윤곽은 흐릿해지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또렷해진다. 기다림은 이처럼 지각의 균형을 어긋나게 만든다.



어긋남 속에서 새로운 관계들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오래된 의자와 창문 틈 사이의 바람이 서로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연결될 때,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사물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대화로 변한다.

기다림은 어떤 의미에서는 수집이 아니라 방치다. 그러나 이 방치는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유보다. 의미를 확정하지 않으려는 의지, 혹은 확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



이때 기다림은 감정이라기보다 구조에 가까워진다. 감정은 변하지만, 구조는 유지된다. 기다림의 구조는 단순하다. 무엇인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속된다는 점. 그러나 이 단순함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착할 수도 있고,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미 도착했지만 인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가능성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동시에 유지된다. 기다림은 그 충돌을 제거하는 대신, 그것들을 하나의 상태로 겹쳐 놓는다. 그래서 기다림은 모순을 해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순을 그대로 견디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 견딤은 고통과는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무감각에 가까운 어떤 지속이다. 감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유지되어 더 이상 자극으로 인식되지 않는 상태.



이 상태를 다른 언어로 바꾸면, 기다림은 ‘지속되는 미완성’이다.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나지 않고, 끝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형태를 바꾼다. 그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분명했던 대상의 윤곽이 점점 흐려지고, 결국에는 그 대상이 무엇이었는지조차 불확실해지는 순간. 기다림은 그 흐려짐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형태의 불확실성을 만들어낸다.



그 불확실성은 불안과는 다르다. 불안은 어떤 결론을 향해 가지만, 기다림은 결론 자체를 유보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방향이 없다.



방향이 없다는 것은, 동시에 모든 방향을 포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모순적인 상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감각적으로는 분명히 느껴진다. 마치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을 때와 떴을 때의 차이가 사라지는 순간처럼, 경계가 흐려진 상태.



기다림은 결국 어떤 도착을 전제로 하지만, 그 도착은 점점 덜 중요해진다. 중요한 것은 도착이 아니라, 도착을 향해 열려 있는 상태 자체다. 이 열림은 닫히지 않기 때문에 유지된다. 닫히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열려 있지도 않다는 뜻이다. 반쯤 열린 문, 혹은 열릴 가능성만을 가진 문. 기다림은 그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방식이다.


어느 순간, 그 문이 실제로 열렸는지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기다림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구조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완성은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미세하게 변형되는 상태, 고정되지 않은 균형. 어떤 것은 이미 지나갔고, 어떤 것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서 의미는 계속해서 생성되다 멈춘다. 혹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계속된다.



기다림은 여전히 쓰이고 있는 시에 가깝다. 다만 그 시는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고, 심지어 쓰는 주체조차 명확하지 않다. 문장은 완성되기 직전에 흩어지고, 의미는 도달하기 직전에 미끄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태가 지속된다. 그것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종류의 잔여이며, 사라지지 않는.



흔적처럼 남아 있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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