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이미 지나간 뒤였다

손끝이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사라진 것뿐이라는 사실

by 적적




얼굴을 만진다는 것은 허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허락은 언제나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때로는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 속에서 뒤늦게 확인된다. 손끝은 그 모호한 허락을 전제로 움직인다.

전제는 확인되지 않은 채 유지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가능성을 안고 있는 접촉은, 그래서 더 신중해진다. 신중함은 속도를 늦추고, 속도가 늦춰지면 감각은 세밀해진다. 세밀해진 감각은 더 많은 것을 포착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것을 놓친다. 포착과 놓침은 서로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공존한다.


피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숨기지 않는다. 숨긴다는 것은 의도를 필요로 하지만, 피부는 의도를 갖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스며들 뿐이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그 시간의 얇은 막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흔적이 되고, 흔적은 기억의 표면에 부착된다.



표면은 평평하지 않다. 아주 미세한 기울기와 움푹한 자리들이 있어, 손끝은 그곳에서 잠시 머문다. 머무름은 곧 선택이 되고, 선택은 결국 왜곡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손끝이 기억하는 얼굴은, 사실 그 얼굴이 아니라 머물렀던 시간들의 지도에 가깝다.



어떤 얼굴은 쉽게 기억된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잘못된 기억이다. 선명함은 기억을 속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잘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 오히려 오래 남는다. 손끝이 더듬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그 윤곽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갱신된다.



갱신은 손끝의 고집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습관이다. 얼굴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형되는 하나의 제안처럼 존재한다. 손끝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저 반복해서 검토할 뿐이다. 검토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명확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모호하다. 어쩌면 그것은 검토가 아니라 망설임의 지속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손은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본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손은 본다기보다 번역한다. 번역은 언제나 원문을 배반한다. 손끝이 읽어낸 얼굴은 원래의 얼굴과 닮아 있으면서도, 결정적인 부분에서 어긋난다.



오류가 아니라 필연이다. 왜냐하면 손끝은 표면을 따라 움직이지만, 기억은 그 움직임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재구성은 선택과 삭제를 포함한다. 삭제된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가장 깊이 개입하고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방식은 언제나 설명하기 어렵다.



얼굴의 윤곽은 선이 아니라 압력으로 기억된다. 손가락이 닿을 때의 미세한 저항, 그 저항의 방향과 강도, 그리고 그 사이에 흐르는 공기의 두께 같은 것들. 그것들은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손끝은 그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아니, 놓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이미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받아들임은 인식보다 먼저 일어난다. 그래서 손끝이 기억하는 얼굴은 언제나 조금 늦게 이해된다. 이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도 의심스럽지만, 다른 단어를 찾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다.



얼굴을 더듬는다는 것은 사실 얼굴을 찾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라진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손끝이 닿지 않는 부분, 닿았지만 느껴지지 않는 부분, 느껴졌지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그 형태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떠오르고, 다시 사라진다. 사라짐은 부재가 아니라 변형이다. 변형된 것은 이전의 형태를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그 남음은 흔적이라기보다는 잔향에 가깝다.



기억은 언제나 몸의 일부를 통해서만 작동한다. 손끝이 기억한다는 말은, 사실 손끝이 기억의 조건이라는 뜻에 더 가깝다. 조건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다만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그 가능성은 때로 지나치게 넓어져서, 무엇이 실제였는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분간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확실성으로 남는다. 확실성은 내용이 아니라 상태에 속한다. 그래서 손끝이 기억하는 얼굴은 하나의 내용이 아니라, 지속되는 상태의 변주처럼 느껴진다.



얼굴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시선보다 느리게 도착하고, 언어보다 늦게 정의되며, 무엇보다도 손끝에 의해 가장 오랫동안 수정된다. 눈은 표면을 읽지만 손은 밀도를 더듬는다.



어느 날, 어둠 속에서 더듬어 본 얼굴은 빛 아래에서 본 것보다 더 또렷하게 남는다. 그 또렷함은 윤곽의 명확함이 아니라, 오히려 흐릿함의 정확함에 가깝다. 손끝은 결코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러나 틀리지 않는 방식으로 어떤 형태를 기억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얼굴이지만, 동시에 얼굴이 아니기도 하다. 마치 이름을 잃어버린 채 남아 있는 사람처럼.



어떤 얼굴은 손끝에서 미끄러진다. 그것은 피부의 문제라기보다, 기억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손끝은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움직이지만, 얼굴은 그 리듬을 거부할 때가 있다. 거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예상했던 지점에서 예상했던 감각이 오지 않을 뿐이다.



그 작은 어긋남이 전체를 흐트러뜨린다. 흐트러짐은 실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형태의 접근을 요구하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은 언제나 늦다. 늦음은 손끝의 속성이 아니라, 기억의 속성이다.



손끝이 기억하는 얼굴은 결국 하나의 불완전한 지도다. 그 지도는 길을 안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길을 잃게 만든다. 그러나 길을 잃는 순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난다. 드러남은 발견이 아니라, 잠시 허용된 시야에 가깝다.



그 시야는 곧 닫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닫힌 상태로 남아, 다음의 접촉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의식되지 않지만,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어쩌면 얼굴은 처음부터 손끝을 위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시선은 너무 빠르고, 언어는 너무 확정적이기 때문이다. 손끝은 그 둘 사이에서 망설이며, 망설임 자체를 하나의 형식으로 만든다. 그 형식은 설명되지 않지만,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달라짐은 축적되지 않고, 그때그때 소모된다. 소모된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라졌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딘가에 남아 있는 느낌이 지속된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얼굴을 더듬던 손의 감각이다. 그러나 그 감각조차 완전히 붙잡히지 않는다. 붙잡으려는 순간 이미 변형되기 때문이다. 변형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 아니라, 어쩌면 그 자체로 목적일지도 모른다.



손끝은 여전히 어떤 윤곽을 더듬고 있지만, 그것이 누구의 얼굴인지, 혹은 얼굴이 맞는지조차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다만 닿았던 자리와 닿지 못했던 자리 사이에, 설명되지 않는 간격이 남아 있고, 그 간격이 점점 더 또렷해지는 방향으로.



아주 천천히 기울어져 있을 뿐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