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며 스며드는 이해의 가장 느린 속도
https://www.youtube.com/watch?v=W-YD2Y8ojYE&list=PLKauI9wxG84m8Fp85oBwgFlYs-pHYltsu&index=9
문장은 종종 방향을 잃지 않는다. 방향을 잃었다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어떤 중심을 향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중심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중심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가까이 있어서 윤곽을 얻지 못한다. 오래 머무르는 글은 그 중심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읽는 이는 곧바로 빠져든다.
빠져든다는 말은 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자리에 머무르는 상태가 더 정확하다. 그 자리에서 점점 깊어지는 감각, 바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반복 없는 낙하, 그 낙하가 사실은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차리는 과정. 그것이 소용돌이다.
소용돌이치는 문장은 이해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를 유혹한다. 단지 그 유혹이 끝나지 않을 뿐이다. 하나의 문장이 의미를 건네는 동시에, 그 의미를 미세하게 흔들어 놓는다. 의미는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계속해서 변형된다.
단어들은 서로를 지탱하면서도 미묘하게 밀어낸다. 이 밀어냄은 충돌이 아니라 간격이다. 간격이 존재할 때, 문장은 숨을 쉰다. 숨을 쉰다는 것은 멈춘다는 뜻이 아니다. 멈추지 않기 위해서 잠시 머무는 일이다.
이러한 문장에서 핵심은 명확함이 아니다. 명확함은 오히려 탈출구가 된다. 읽는 이는 명확함을 통해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그러나 소용돌이치는 문장은 탈출구를 숨긴다. 숨긴다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애초에 출구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여러 개의 입구를 배치한다. 어느 입구로 들어가든, 결국 같은 중심으로 흘러들어 간다. 하지만 그 중심은 도달 가능한 장소가 아니라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상태다.
문장이 스스로를 설명하려 할 때, 이미 소용돌이는 풀린다. 설명은 바깥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반면 소용돌이는 안쪽에서 바깥을 향해 끊임없이 밀려나면서도 결코 바깥에 닿지 않는 운동이다.
이 운동 속에서 문장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점점 덜 확신하게 된다. 확신의 결여는 불안이 아니라 밀도다. 밀도는 의미를 응축시키고, 응축된 의미는 다시 분열한다. 이 분열은 파괴가 아니라 증식이다.
어떤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오래 머무르는 글은 방향을 갖지 않는다. 대신 기울기를 가진다. 아주 미세한 기울기,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정도의 경사. 읽는 이는 이 경사를 따라 미끄러진다. 미끄러짐은 이동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한 자리에 머물며 조금씩 다른 깊이에 닿는 경험이다. 같은 문장을 다시 읽었을 때 전혀 다른 문장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장은 변하지 않았지만, 읽는 이의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용돌이의 특징은 반복처럼 보이지만 반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표면에서는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점점 안쪽으로, 혹은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미묘한 이동은 의식적으로 감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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