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방향을 만드는 흐릿한 흔적들
https://www.youtube.com/watch?v=V7WtZRYFipk&list=PLlPzqLiDlqjfyXPXsK4-Qi2boeiS6-6GG&index=9
무심히 고개를 드는 순간, 이미 지나간 것들의 잔열이 미세하게 되감기며 스스로를 드러낸다. 설명할 수 없는 타이밍, 그러나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감각. 문득은 그렇게, 이해를 건너뛰고 인식으로 곧장 들어온다.
어떤 입구는 형태를 갖추지 않는다. 그것은 문이 아니라 기류에 가깝다. 눈꺼풀의 떨림과 목 안쪽의 건조함이 맞물리는 순간, 오래된 장면 하나가 불완전한 색으로 부상한다. 그 장면은 완결된 기억이 아니라, 기억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디테일들이 오히려 선명하다.
접힌 종이의 질감, 어딘가에 부딪히고 난 뒤의 둔한 울림, 계절을 특정할 수 없게 만드는 온도의 애매함. 이때 문득은 기억을 호출하지 않는다. 기억이 스스로 밀려 나와 현재의 표면을 얇게 덮는다. 덮인 표면은 원래의 얼굴을 잃지 않으면서도, 잠시 다른 얼굴을 가진다.
문득이 도착하는 방식에는 규칙이 없다. 다만, 반복을 피하는 습관이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감정으로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모든 조건이 조금씩 어긋난 지점에서, 그것은 더 정확해진다. 어긋남은 오차가 아니라 진입로다. 어제의 길을 오늘 다시 걷지만, 발의 압력과 시선의 각도가 달라지는 순간, 전혀 다른 입구가 열린다.
그 입구는 크게 열리지 않는다. 겨우 한 사람의 생각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그러나 그 좁음이 오히려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틈을 통과하는 동안, 몸은 약간의 결함을 받아들인다. 그 결함은 방향을 바꾸지 않지만, 방향의 의미를 바꾼다.
어떤 사물은 문득을 보존하는 데 능숙하다. 예를 들어, 오래된 유리컵의 입구에 남아 있는 미세한 흠집. 그것은 손가락이 스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스치는 순간, 그 흠집은 단순한 흠집이 아니게 된다. 그 위로 지나갔던 시간의 층위가, 서로 다른 온도와 압력으로 겹쳐진 흔적이, 손끝의 신경을 통해 현재로 번역된다. 번역은 완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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