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인생 안에서
그때의 서로에게 각자의 역할이 있었던 것 같아.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 그러다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며 그간 내가 느꼈던 서운함을 고백했다. 치킨을 뜯으며, 맥주를 마시며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꿈꾸던 우리가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을 때 나는 우리가 마치 다른 시공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내가 노력하고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그가 떠나버린 것만 같아 서운함과 외로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 누군가를 원망하게 만들었다. 연락을 잘하지 못하는 모든 변명이 핑계로만 들리던 때였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서로의 인생 안에서, 시기에 따라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게 애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살기 바쁘다는 이유가 핑계나 변명이 아니라 진실임을 안다. 살아가면서, 한 살씩 먹어가며 오래된 인연과 옅어지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면서 나를 지나간 모든 관계들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님을 안다. 서로의 한 시절을 나눴던 이라면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