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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May 17. 2024

언어발달지연 아들의 ABA 수업과정 (1)

31개월 무렵,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진지하게 언어와 인지의 지연이 있는 것 같다 -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니까 - 진료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들었다.


34개월 즈음, 우리 아이는 괜찮을 거라고 애써 회피하다가, 국립재활원에서 베일리(?)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검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어, 인지 수준이 12개월 이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위기감을 느낀 나는 즉시 아동발달센터에 주 3회(언어치료 2회, 심리운동 1회) 수업을 신청하고, 언어 바우처를 받았다. 센터는 60개월까지 다녔으나 다이나믹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자연스러운 성장인지, 센터의 수업 효과인지 헷갈리는 정도. 장점은 바우처가 적용되어 저렴했다. 20만 원대에 12-15회 정도 수업이 가능했다.(한 달 기준)


시간이 흘러 5살이 되었고, 누나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면, 오며 가며 자주 보던 곳이라 금방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치원 적응을 아예 하지 못했다. 기다릴 줄도, 말할 줄도, 순서를 지킬 줄도, 눈치를 볼 줄도 몰랐던 아이를, 교사 1명 당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담당하는 일반 유치원에 보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다. 아이도 교사도 괴로운 한 달이 지나서야, 매번 한 발 늦는 엄마는 특수반-일반반이 함께 수업하는 통합 유치원을 찾았다.

4명의 아이를 3명이 돌봐주는 곳이었다. 방학도 초등학교만큼 길고, 방과후 활동도 신청자가 많아 들어가기 어렵지만, 일단 우리 아이를 맡아주는 곳을 찾은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 따른 것이었다.


올해 형님반으로 올라갔다. 6살이다.

초등학교로 올라가면 입학식 때 가만히 앉아있을까? 수업시간에 앉아있고, 조용히 할 수 있을까? 화장실을 혼자 갔다 올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발전속도로만 보자면, 모든 것이 의문이었고 막막하다.

그러다 유치원 친구의 부모가 ABA에 대해 알려주었다. 응용행동분석? 거북맘토끼맘 카페에서 자주 언급된 수업이라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비급여라 월 1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일단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해서 예약했다. 듣기만 하고 바꿀 생각은 없었다. 정보 습득의 차원이라고만 생각했다.


소장님에게 상담을 받고서는,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다니던 센터에서 크게 효과를 못 본 이유를 알려주셨고, 아이의 성향이나 문제 행동을 만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파악하셨다. 내가 회피형 엄마라는 것도 이미 감지하셨다. 기존의 센터에서 듣지 못했던 피드백이었다. 웬만한 사람의 의견은 죄다 삐딱하게 듣는 남편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설득당했다.

우리는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접었다. 나도 현실을 인지하려고 애썼다. 아직도 우리 아들은 금방 좋아질 거라는 생각, 내가 다른 엄마들보다 현명한 인간일 거라는 우월감이 틈틈이 비집고 올라오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로써 4회 차 수업을 듣고 있다.

1. 엄마의 양육 태도, 훈육법도 상세히 알려주셔서 집에서도 연습할 수 있게 친절히 알려주신다. 다음 주 수업 전까지 손으로 원하는 것을 가리키는(포인팅) 행동을 연습시키려고 한다.

2. 발성, 문제 행동 교정(지시 따르기, 착석, 폭력성 제어)을 도와주신다. 나의 태도도 바꾸고 행동 교정도 들어가고, 아이가 주변을 보고 모방하거나 눈치도 잘 보는 시기다 보니, 문제 행동을 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다림, 심심할 때 분위기 파악 못하고 소리 지르는 행동, 안 풀릴 때 던지고 때리는 행동, 발화 등 아직도 미션은 많지만…

3. 2회 차 수업 이후로 “엄마”를 자주 부른다. 똑바로 쳐다보고 부르는 건 아니지만, 엄마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고 싶다고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런 작은 말만으로도 엄마는 뭉클하다. 손으로 대상을 가리키면서 “피자”, “아빠” 등을 말하기도 했다. 눈 맞춤도 훨씬 길게 자주 하기 시작했다.


훗날 발전한 아들을 보고도 감사할 줄 모를 때 이 글을 읽고, 힘든 순간에도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혹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보호자에게 도움과 위안이 되기를.

하남 나무고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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