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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감 Oct 22. 2021

뒷 그림자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는 마음

다정하게 끌어안은 형태를 좋아한다. 사람 간의 온도를 나누는 모습이다.


뒤로 길게 뻗은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뒷그림자는 자신의 존재조차 알릴 수 없다. 그저 묵묵히 누군가의 등 뒤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다. 그러다 가끔 빛의 각도가 달라질 때, 그림자의 주인이 걸음의 방향을 틀 때, 눈을 들어 시선을 줄 때, 뒷그림자는 자신의 모습을 조심스레 드러낸다.


너의 뒤에 내가 있었다고, 항상 함께 있었다고.


흔히 말하는 나이 들었다, 철들었다란 표현을 이제 조금은 이해하는 시기가 왔다. 온전히 독립한 지 1년 반, 직장을 다니며 부모님을 만날 때면 내가 이제껏 알 수 없었던 그들의 삶이 보였다. 자식의 뒷그림자로 조용히 자리하던 그 모습이.


왜 조금 더 빨리 자리잡지 못할까

나는 왜 부모님을 편히 쉬게 할 만큼의 능력이 없을까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매번 느낀다. 반가운 마음으로 시작된 만남의 끝엔 언제나 아릿한 찜찜함이 묻어난다. 이제는 나이 든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는데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뒷그림자를 마주할 때마다 아연해진다.




모든 것은 차곡차곡 쌓여야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단단히 엮인 경험의 층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는 사실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늘 앞서 내달린다. 그간 보지 못했던 장면을 볼수록,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낄수록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옴짝달싹 붙잡여 후회를 한다.


내가 조금만 더 세심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했다면,

내가 조금 더 지혜로웠다면...


그런 생각이 찾아올 때마다, 예견치 못한 뒷그림자를 발견할 때다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능력이 모자라 떠나보냈던 아이와 더 잘해주지 못한 나의 사람들에게. 혼자 꾹꾹 담아뒀던 말들을 조용히 뱉어낸다. 어차피 부치지 않을 편지이기에 혼자서 후회하고 혼자서 되뇐다. 앞으로 주어질 후회의 크기를 줄여보자고.


2019년 4월 30일 별이 됐다.

한해 한해 시간이 가고,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등에 짊어진 온전히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커져갈수록 보지 못했던 뒷그림자를 마주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그 그림자가 안타깝고 애잔해 자주자주 들여다보고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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